아이들과의 안면도 바다 여행은 2016년도부터였다. 애견카페 오픈 후 이듬해부터 아이들과의 여행은 계속됐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2박 3일 동안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놀아줘도 이 알 수 없는 허전함은 뭘까? 바다였다. 아이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여행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했던 우리는 유독 서해안 안면도 바다를 좋아했다. 오래전 글 동기들과 우연히 들른 안면도 장삼포 해수욕장에서 경이롭고 몽환적인 일몰을 경험한 후로 나는 우리 가족들과 수시로 안면도를 찾았다. 애견카페를 시작한 이후 치열한 자영업자의 삶을 사느라 그토록 좋아하던 바다를 까맣게 잊고 살았던 우리들. 일 년에 한 번씩 아이들과 동행하는 평창 애견 펜션이 우리의 유일한 해방구였고 물론 그것만으로도 좋았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바로 광대하고 드넓은 엄마의 품처럼 따뜻한 바다를 아이들에게 안겨주기로 한 것이다.
서해안 일몰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난생처음 일몰을 마주하는 강아지들.
아무도 없는 안면도 바다를 누비는 아이들.
대형견들과 놀아주려면 체력은 필수다!!
항상 붙어 다니는 우애 깊은 애견카페 대형견 삼 남매.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바다사랑견 달봉이.
삼식이가 양쪽 십자인대 수술을 한 해를 제외하고 우리 가족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노느라 몹시 흥분하기 때문에 우리 두 자매가 아이들을 케어하기엔 힘이 달린다. 그래서 대형견 3마리를 포함 총 6마리 아이들을 케어해줄 시간이 되는 전 현직 아르바이트생들과 그리고 우리를 도와줄 몇몇 단골손님들과 동행했다. 애견카페를 하기 전 여행도 항상 행복했지만 자영업을 하면서 힘들게 시간을 내 떠나는 여행은 유독 달고 귀한 시간이었다. 2박 3일 동안 순간순간 일분일초도 우리한테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즐긴다. 바다를 처음 마주한 날 난생처음 눈부시게 빛나고 드넓은 바다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미친 듯이 뛰어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작은 강아지들인 코코, 수달, 봉구는 바다를 무서워해 모래사장에서만 놀지만 대형견인 달봉이 삼식이 솜이는 바다만 보면 이성을 잃고 헤엄치며 물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두세 시간 동안 신나는 바다수영을 마치고 해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바다수영에 푹 빠진 대형견 세 마리는 도통 바닷물에서 나오질 않는다. 더 놀고 싶어 하는 대형견들을 어르고 달래서 해변으로 데리고 나오면 달봉이가 아쉬운 표정으로 바다를 한번 보고 우리를 한번 물끄러미 바라본다. 소금물에 절여지고 모래투성이가 된 개구쟁이 달봉이는 이 순간 세상에서 불쌍한 강아지 눈빛으로 우리들의 심장을 후벼 판다.
" 일 년에 한 번인데... 좀 더 놀면 안 돼요?!"
이런 달봉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좀 더 일찍 좀 더 자주 바다에 데리고 와주지 못한 것에 대해 한동안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나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가슴 한켠이 먹먹해진다. 애견카페를 하는 우리들보다 좀 더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보호자를 만났으면 이토록 좋아하는 여행을 맘껏 하며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더 놀게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잠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또 한바탕 아이들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모래투성이의 여섯 마리 강아지들을 씻기고 말리는데만 서너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모래뿐만이 아니라 소금기까지 철저하게 제거해야 하기에 바다수영 후 강아지들 목욕은 평소보다 힘이 든다. 목욕 후 말리는 것도 전쟁이다. 특히 삼식이와 달봉이 털 말리는 동안 숙소는 폭설처럼 휘날리는 털들로 난장판이 된다. 바다에서 돌아온 후 씻지도 못한 채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아이들을 씻기고 말리다 보면 어느덧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게 끝이 아니다. 어마어마하게 빠진 털과 모래들로 엉망이 된 숙소 구석구석 치우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강아지들 씻기고 숙소를 말끔하게 청소한 후에야 우리도 겨우 샤워를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해질 무렵 씻고 나오면 정말 기진맥진해진다. 진이 빠지다 못해 잠시 정신줄을 놓고 한동안 패닉 상태가 된다. 그러다가 여행지에서의 싱그럽고 신선한 저녁 공기가 우리들의 혈관을 타고 온몸에 흐르면 우리들의 에너지는 재충전된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이러고 넋 놓고 있는 시간이 없다. 일분일초도 아까운 우리는 먼저 아이들의 저녁식사를 챙긴다. 예전에는 여행 올 때 닭가슴살을 삶아서 아이들에게 사료와 주곤 했는데 요새는 집에서 갓 만든 화식을 여행지에서도 아이들에게 급여한다. 하루 종일 잔디에서 뛰어놀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목욕까지 마친 아이들은 꿀맛 같은 저녁밥을 먹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진다. 뽀송뽀송해진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우리는 여행지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기며 밤이 깊어질 때까지 수다 삼매경에 빠져든다.
여섯 마리 애견카페 강아지들과일 년에 한 번씩 가는 여행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큰 의미가 있다. 바쁜 자영업자의 삶 게다가 하루 종일 지하 애견카페에서 강아지들 똥오줌 치우고 케어하고 방문하신 손님 응대하고 기껏 해봤자 카페 옆 도림천에서 산책이 고작인 우리 자매의 삶에서 인간 김수지 김세진을 위한 시간은 거의 없다. 애견카페를 시작하고 아이들과 함께 출퇴근하면서 친구들과 술집에서 소주 한잔 해본 적이 없고 영화일을 하고 싶었고 영화를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애견카페를 하는 동안 영화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가끔씩 강아지들을 놀이방 맡기고 영화관에 가는 보호자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영화관 전체에 배어있는 그 고소하고 달콤한 팝콘 냄새가 그립고 객석에 앉아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하기 전 그 설렘이 가끔씩 너무 그립다. 자영업자에다가 이제는 노견이 된 여섯 마리 강아지들의 보호자 삶은 이렇게 인간관계의 끈도 끊어지게 했고 문화적인 결핍을 해소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극한 노동에 시달리는 삶으로 점철되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피폐해질 듯했던 우리의 삶을 아이들의 존재가 그 결핍을 채워줬고 웃음을 줬고 열심히 살아야 할 의미와 동기부여도 선물해줬다. 이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다시 글 쓸 엄두도 못 냈을 거고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십 년이 넘게 강아지란 이 어메이징 한 존재들과 함께 하면서 받은 위로와 깨달음은 상상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그토록 행복해하는 여행을 고작 일 년에 한 번씩 밖에 해 줄 수 없는 현실에 너무 미안하고 자괴감이 들지만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좀 더 자주 그것도 바다여행을 선물해주려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 부족한 엄마들에게 항상 힘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얘들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