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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Feb 18. 2022

그리움과 사랑의 관계

그리움의 끝은 아마 사랑이 아닐까요

 

 휴일의 아침은 늦잠으로 시작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보니 청명한 날씨가 인사를 건 듯했다. 이불속에 파묻혀 침대에 더 의지하고 싶지만, 때마침 울린 배꼽시계는 달콤한 휴식을 방해하기에 충분했다. 곧장 부엌으로 가 먹다 남은 찌개를 데웠다. 포글포글. 보글보글. 맛있는 소리와 구수한 향이 방안 가득 퍼졌다. 향을 따라 소소하게 차려 식탁 앞에 앉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밥상인데, 오늘따라 유독한 공기가 주변 잠식하고 있음을 느꼈다. 괜히 울적한 날인 걸까.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울 때가 있으니.



가족과 흩어져 지낸 지 어언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즐겼고, 한편으로는 사는 것에 지쳐 돌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 써서 안아주지 못한 것들이 손에 꼽지 못할 정도로 많았음을. 혼자 밥을 먹을 때면 불쑥 떠오르는 감정을 애써 음식물과 함께 삼켜내곤 했다. 그런 날이면 굳이 과거의 식탁을 떠올렸다. 둥글고 작은 상에 모여 앉아 옹기종기 밥을 먹던 가족의 모습을. 할머니는 밥을 실 때마다 늘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한번 주면 정 없어.' 산처럼 쌓인 밥은 할머니의 사랑과 비례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지금처럼 그리움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 옆엔 늘 종알 대며 자기 손보다 커다란 족발을 뜯고 있는 동생이 있었다. 두서없이 긴 말을 늘어놓을 때면 나는 늘 결론만 얘기하라고 성을 내곤 했다. 지금은 그런 내 모습조차도 가족과 함께하던 과거에 불과했다. 생각을 곱씹을수록 주변의 공기는 더욱더 쓸쓸해질 뿐이었다.



밥을 한공기도 비우지 못한 채 식사를 마쳤다. 그릇을 싱크대에 대충 버려두고는 어느새 오후를 맞은 창밖을 바라봤다. 한줄기 빛이 창을 타고 바닥으로 흘렀다. 홀린 듯 베란다로 향했다. 청명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밖에는 지저귀는 새소리와 시끌벅적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웅다웅 장난치며 뛰어다니는 길고양이가 보였다. 그런 고양이가 귀여운지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다. 어쩌면 나도 저 나이쯤에 멈춰 있지는 않을까. 외롭고 울적한 날에 울고 불고 소리치 아이는 아니더라도 가족의 부재에 과거의 환경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나이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결국은 같은 것을 그리워하리란 걸 다. 그리움이 없다면 행복한 과거도 없을 테니.



나는 그리움을 사랑으로 귀결시키곤 했다. 사랑이 없다면 그리움은 없 거라 믿기에 그리움의 끝은 늘 사랑이라 여겼다. 그래서 보여주기로 했다. 단순히 외롭다는 감정이 아닌 그 안에 있는 사랑만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보고 싶어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동생에게 '밥은 먹었어?'라는 문자를 보내면서도 쓸쓸한 마음만은 옮겨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아프지 않고 잘 지내면 됐어라는 마음만이 닿기를 바라며.


주위 사람들,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들마저도 나를 지치게 한다. 외로움은 삶이라는 공동체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분임을 깨닫는다.

People drain me, even the closest of friends, and I find loneliness to be the best state in the union to live in.

-마가릿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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