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되고 하루 만에 1천 명 넘는 직원들이 알아버린 나의 화려한 인사발령. 이전에는 인사발령 공지 한 번 뜰 때마다 수십 명씩 리스팅 되어 있길래, 나도 그럴 줄 알고 조용히 묻혀 가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나의 이름만 떡하니 하나 떠있었다. 부끄럽게..
조직개편이 있었다. 직장인 4년 차, 이제는 너무 익숙한. 이전 회사에서도 숱하게 겪은 조직개편과 자리이동 덕분(?)인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이직해서도 이렇게 노선이 바뀔 줄 몰랐다.
(1) 어느 회사에서든 조직개편은 흔한 일이고
(2) 특히 마케팅 조직은 더욱 그렇다
이제는 내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박힌 공식들. 개인의 니즈나 커리어보다 회사의 사업 방향과 재정 상황이 우선이 되어 조정되는 빈번한 조직개편은, 아쉽지만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해가 되면서도 아쉽다. 어쨌든 컨텐츠 마케팅을 하던 우리 팀은 사라졌고, 나의 소속은 바뀌었다.
온라인마케팅 → 브랜드영업
약 3년 간 쌓아왔던 마케팅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고, 영업인이 되었다. 영업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내가 새로 합류한 조직은 “아울렛 상품의 온/오프라인 물량과 매출을 관리"한다. 영업과 마케팅이 세부 직무에 따라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만, 내가 하던 마케팅과 내가 하게 될 영업은 접점이 거의 없다.
다시 영업인으로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직무 전환한 걸 후회하지는 않을까? 묻는다면 사실 확신은 없다. 하지만... 이 선택이 나한테 "터닝포인트"가 될 것임은 확신한다. 더 연차가 많아지기 전에, 나중에는 절대 할 수 없을 이 경험(직무전환)을 통해 그동안 묵혀왔던 아래 고민들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다.
(1)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중에 최선"이 과연 마케팅일까?
(2) 마케팅이 "나랑 맞기나 한 걸까?"
(3)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마케팅을 좋아했지만, 그런 나의 선호도와 별개로 '내가 오래 잘할 수 있는 일인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마케팅에서 중요한 '변화와 트렌드를 매번 빠르게 따라가고 진정 즐길 수 있는 사람인가?'는 취미로 종종 하던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나의 취향 탐구가 아닌 대중의 취향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많이 달랐다. 회사 내에서 보다 쉽게 공격 대상이 되는 마케팅 조직, 그런 불안정한 조직 생태계에서 계속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열정과 의지가 충분한가? 자극추구 성향도 높지만 동시에 위험회피 성향도 높은 나 같은 애매한 성향의 사람이, 과연 그런 아슬아슬한 상황들을 오래 버텨낼 수 있을까?
일단 지금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해보자. 내가 어떤 일이랑 가장 잘 맞는지 취직하기 전에 알았다면 너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냥 다 부딪혀보면서 깨닫는 방법뿐이다. 한편으로는 과연 '가장 잘 맞는 일'이 있기나 한 걸까 물음표가 뜬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나도 계속 변하는데. 어쩌면 그냥 그 순간의 상황과 그 순간의 내가 원하는 것이 일치하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 정답이 없는 세상 속에서 계속 부딪히며 알아가야 하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지만 결국엔 다 자산이 되겠지.
당분간은 이제 '마케터'로 나를 소개하는 것이 애매하게 되었지만,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내가 꼭 이뤄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이번 변화를 꼭 터닝포인트로 삼을 것. 결국 나는 마케터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님 오히려 영업이 나랑 더 잘 맞았던 건지. 꼭 답을 찾아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