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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ul 04. 2024

앗싸. 시험 끝났다~!!

대한민국에서 (영어) 교사로 살아남기

앗싸!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이것은 시험이 끝난 중3 아들의 샤우팅도 아니고 고1 큰 딸의 외침도 아니다. 현직 23년 차 교사인 내가 치는 소리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그간 힘들었던 목통증이 가라앉고 속이 쓰리고 소화가 안되던 증상도 사라졌다. 이렇게 시험은 시험을 치르학생에게도 그것을 준비하는 교사에게도 어머어마한 스트레스를 다. 교사의 스트레스는 시험 한 달 전부터 시작된다. 실은 학기 초, 평가계획 때 부터지만, 본 게임은 4주 전부터다.



시험 4주 전,

시험범위를 확정해야 한다, 진도 확인, 공휴일과 각종 대회나 교육일정으로 빠지는 수업시간이 있나 고 정확한 일정으로 수업 들어가는 전 반의 진도와 가르칠 내용을 확정하고 모든 반을 똑같은 시간으로 똑같은 내용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담당한 반 이외에 다른 두 반을 담당하는 선생님과도 범위와 시험 문항수와 배점을 상의해야 하고 몇 일간의 조율 끝에 아이들에게도 최종 공지 한다.


시험 3주 전,

시험문제를 출제한다. 각 단원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과 단어, 문법항목을 정리하고 그에 맞는 문항을 개발한다. 지난 2~3년간의 기출문제를 확인하고 동일한 형태의 문제는 제외해야 하고 100% 순수 창작물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뻔한 내용의 정해진 교과서의 제한된 분량 안에서 매번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문제가 뒷 문제의 힌트가 되거나 이미 다룬 내용을 또 묻게 되는 경우도 있고, 비슷한 형태나 문제로 물을 수밖에 없는 내용도 있다. 며칠간의 고민과 고립 끝에 가르친 내용을 골고루 묻는 문제를 1차 초안으로 완성한다.


시험 2주 전,

영어교사가 모두 모여 교차점검한다. 문제에 오류가 없는지, 선행학습한 내용이 있지는 않은지 담당학년이 아닌 문제지로 서로 교차해서 문제를 검토한다. 매의 눈으로 잡아낸 오류들은 즉시 수정하고 보완한다. 파파고, 뤼튼, 챗GPT까지 동원해서 문법성을 검증하고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총 동원해서 충고하고 제안한다. 언어다 보니 비문일지라도 실제로 그것을 구어체에선 쓰고 있지는 않는지, 명백한 비문이 맞는지 더블체크 해야 한다. 그리고 무한 편집지옥으로 빠져든다. 보기 좋은 문제지를 만들기 위해 글자수와 여백, 간격등을 확인한다. 그리고 정답에 오류는 없는지 답지가 한 번호에 몰려있지는 않는지도 꼼꼼히 체크한다. 철자와 마침표, 문항번호와 배점도 올바로 적혔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모든 과목의 문제지를 점검하는 부서에 제출함으로써 1차 마감이 된다.


시험 1주 전,

교감, 교장 선생님의 최종 점검 후, 승인이 나면 이제 인쇄하는 일이 남았다. 등사기 이용방법을 다시 배우인쇄용지와 원안지를 넣고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수백 장의 시험지가 제대로 인쇄되는지 확인한다. 혹시나 용지가 끼지는 않는지, 음영처리가 잘못되어 번짐이 있지는 않은지, 그림이 뭉개지거나 안 보이지는 않는지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분철한다. '학년~반'이 적힌 큰 봉투에 시험지와 OMR카드를 세어서 작은 봉투에 넣고 큰 서류 봉투를 봉인한다. 잠금장치가 된 큰 캐비닛에 시험지가 담긴 박스를 넣고 캐비닛을 잠그고 세콤 보안장치를 가동하면 비로소 시험준비가 완료된다.


시험 1일 전,

벌써 보고 고치기를 수십번 반복해서 시험지를 보기만 해도 속이 미슥거릴 지경이다. 그래도 혹시나 놓친 것이 있지는 않은지 인쇄된 시험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오류없는 시험지가 세상에 존재하길 바라면서~


시험 당일

시험시작종이 울리고 시험출제자인 교과 담당교사는 담당한 학년의 교실 복도에서 대기한다. 혹시나 뒤늦게 발견된 오류나 학생들의 질문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 긴 복도를 수시로 순회하고 기다린다. 학생들이 시험을 무사히 끝낼 때까지. 드디어 종료령이 울린다. "휴. 살았다." 한 숨 돌리고 답지를 각반 꽂이함에 넣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러 복도로 나간다.


선생님 너무 어려워요.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없었어요.

샘, 저는 100점이에요!!

샘, 이게 뭐예요.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요.


온갖 반응과 피드백이 오고 가는 가운데 혹시나 모를 오류나 민원이 있지는 않은지 민중의 동태를 살피고 실망한 아이들은 위로해 주고 잘 본 친구들은 칭찬해 준다. 그리고 퇴근시간까지 기다린다. 혹시 모를 민원에 응하기 위해서. 긴긴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별다른 일없이 무사 퇴근을 하면 기나긴 시험기간의 긴장이 일순간에 풀린다. 몽롱한 해방감을 느끼며 집으로 가는 그 길이 오늘따라 왜 그리 긴지. 경력이 쌓여도 시험을 수십 번을 봐도 언제나 되풀이되는 시험기간의 긴장은 적응이 안 된다. 집에 들어와 칼칼한 라면 한 그릇 끓여 먹고 멍하게 앉아있는다.


아이들은 왜 갈수록 시험에 민감해지는 건지.

왜 점수로 판가름되는 시험이 더 많아지는 건지.

점수로 울고 웃는 아이들을 보는 게 나는 왜 괴로워지는 건지.

아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데 교과서를 벗어난 영어를 언어를 이야기를 문제를 시험으로 내면 왜 한결같이 어렵다고 하는 건지.

시험이 아이들의 사고력을 키우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생각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생각을 더욱 가두고 있는 건 아닌지, 답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시험은 나도 이렇게 싫은데 아이들은 얼마나 싫을까. 일단 오늘은 복잡한 생각의 문을 닫고 잠을 청해 본다.


모두 다 애썼어요.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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