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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Sep 17. 2024

<빅토리>가 빅토리했다

[영화리뷰]영화<빅토리>와 내 인생의 히스토리

반가운 90년대 레트로 감성

최근 유행했던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나 영화 <써니>처럼 레트로 감성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또 나왔다. 그것은 <빅토리>. 응팔(응답하라 1988)의 덕선 역할을 맡았던 혜리가 주인공이다. 영화에 나오는 노래도  통큰바지 패션도 입술선과 눈썹을 강조해 그린 화장법까지 모두 익숙하다. 영화 <빅토리> 속,  히스토리도 한번 꺼내볼까.


1999년 거제, 서태지가 대세

그 시절 오락실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보았던 댄스배틀 기계 펌프, DDR.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운동화 바닥까지 닿는 길이로 질질 끌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거제의 한 오락실에 두 명의 고등학생이 등장, 하나는 필선(혜리), 또 하나는 미나(박세완),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펌프 기계의 발바닥 화살표를 정확히 맞추는 것은 물론 둘의 찰떡 안무로 서태지의 <하여가>를 멋지게 완성한다. 오프닝으로 손색없는 장면이다. 


서태지가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나도 고등학생이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서 장기자랑을 하던 때 최고 중의 최고는 단연 서태지의 춤을 춘 친구들이었다. 제목은 <난 알아요>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떼창으로 노래가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따라 불렀다. 지금도 그 숨 막히는 무대를 잊을 수가 없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 그 이유를
이제는 나도 알 수가, 알 수가 있어요

사랑을 한다는 말을 못 했어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어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그 미소는 너무 아름다웠어

난 정말 그대, 그대만을 좋아했어
나에게 이런 슬픔 안겨주는 그대여
제발 이별만은 말하지 말아요
나에겐 오직 그대만이 전부였잖아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를 정말 떠나가나요?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는 지금 울잖아요



교실 콘서트의 열기를 아시나요?

춤꽤나 추는 학교의 날라리, 필선과 미나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학교를 1년 더 다니는 언니들이다. 그 사건으로 댄스부실을 기고 지금은 화장실 문을 잠그고 연습하는 신세.  치욕스러움을 떨치고 연습실을 되찾고자 서울서 전학 온 세현이를 영입해서 치어리딩부를 만든다. 그러나 최소 인원이 9명은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각 반을 돌며 신입회원을 구하기 위한 홍보용 댄스 공연을 보여주는데 그 첫 번째 곡이 듀스의 <나를 돌아봐>이다. 교실 책상을 뒤로 다 밀고 친구들이 다 열광하는 가운데 춤을 추는 두 친구의 모습이 지난 시절 나의 추억을 소환한다.


중학교 시절 나는 노래에 푹 빠져 살았다. 팝송은 노래가사를 들리는 대로 한글로 써서 따라 부르고, 가수 이승환, 이문세, 이승철, 이상은, 변진섭, 신승훈의 유행가 가사를 다 외워서 따라 부르곤 했다. 그중에서도 이승철의 <소녀시대>를 잘 불렀다. 어느 날 점심시간,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교실 앞에 서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대걸레 막대기를 마이크 삼아 들고는 교실 앞 뒤를 뛰어다니며 종횡무진 열정적으로 불렀었다. 그때의 열기는 내 기억 속에서만은 영화 속 필선과 미나의 교실 댄스비슷했었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고 열광의 도가니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선생님 한 분이 갑자기 교실 뒷문을 열고 호통을 치셨다.


아니, 이게 뭐야. 왜 다들 난리들이야?


그 순간, 나는 부리나케 도망쳐 나왔고 그 교실에 있던 친구들은 단체기합을 받았다. 그런데 눈물 나게 고마웠던 건 누가 노래를 불렀냐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누구도 내가 불렀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고 또 미안다. 정말 의리로 똘똘 뭉친 멋진 친구들. 그 시절 친구들  은 지금도 <누렁까마귀> 계속 만나 변함없는 의리를 과시하며 같이 늙어 가고 있는 중이다.


터보의 <트위스트킹>

대학교 1학년 풋풋했던 우리, 한 학년이 딱 10명뿐이었다. 매년 가을엔 학술제를 했었는 데, 각 학년별로 장기자랑을 했었다. 대학 3학년때였나. 남자애들 몇 명은 군대를 가고 7~8명이 모여 터보의 <트위스트킹>에 맞춰 안무를 짜서 연습을 했었다. 그 당시에도 나는 쓸데없이 열심이었다. 그거 잘한다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애를 썼는지. 시큰둥한 친구들을 꼬셔서 열정적으로 연습하고 기어이 공연을 했다. 그 노래의 가사와 안무까지도 고스란히 기억난다.


바바바 everybody dance
춤을 춰봐 모든 걸 잊고
세상 속에 답답했던 일
벗어버려 소리 높여봐
고함을 질러버려
Everybody dance
세상살이 걱정하지 마
음악 속에 몸을 맡긴 채
Twist king, yeah



밥은 꼭 챙겨 먹는 그녀 그리고 나

아빠랑 둘이 사는 필선, 총각김치를 손으로 집어 맛깔나게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엄지와 검지로 큼지막한 총각무를 집어 한 입 베어 물고 손에 묻은 양념까지 쪽쪽 빨아먹는다. 화가 나도 슬퍼도 절대 밥은 남기지 는다. 아빠가 직장에서 맞고와서 불쌍하게 말을 해도 속상한 마음에 울먹거려도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더 달라는 그녀.


나도 그렇다. 밥 먹는 것에 진심이고 챙겨 먹는 것이 보약이라 믿는 찐 밥순이.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져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밥 먹고 힘을 내 아빠 병간호를 했었고 내가 허리디스크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서도 침대 기둥을 붙잡고 서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국에 밥을 말아먹었었다. 아이 셋을 낳고도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밥하고 국하고 반찬도 해서 먹이는 열혈 엄마다. 미련스럽게도 성실하게 끼니를 챙기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밥을 먹어야 슬픔도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은 주인공 필선과 많이 닮았다. (몸매도 닮으면 좋으련만...)


다만 내게 없었던 건, 자신감


기회는 또 와.
내가 그만큼 매력적이니까


억울하게 패싸움의 모든 책임을 떠안고 학교를 떠나 서울로 상경한 필순이. 걸그룹 오디션을 코앞에 앞두고 돌연 거제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이런 좋은 기회는 없을 거라며 막아선 친구에게 그녀는 당돌하게 말한다. 기회는 또 올 거라고, 내가 충분히 매력적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한다. 축구팀의 인기스트라이커 동현이가 쭈빗쭈빗 다가와 사랑고백을 하려할때도 그녀가 먼저 "니, 내 좋나?" 하며 벽에 밀고 공격적으로 먼저 표현하는 그녀였다.


필선에겐 있지 20대 나에겐 자신감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멋진 남자를 만날 거라는 확신, 나를 온전히 받아주고 이해해 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 나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내게 없었다. 결혼 전까지도 이렇다 할 연애 한번 못하던 겁쟁이였다.


필선이 악에 받쳐 자퇴를 외칠 때도 낯선 서울서 오디션을 받을 때도 그녀의 눈에서는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걸그룹 오디션도 포기한다. 친구들과 시작한 치어리딩을 멋지게 끝내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기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신감은 무언가를 할 용기도 주지만 포기할 용기도 준다. 결국 스스로를 믿는 단단함만 있으면   어떤 힘든 것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그녀에게서 배운다.


추석연휴에는 <빅토리>를

영화는 시종일관 웃음과 감동을 넘나 든다. 코미디영화처럼 가볍지만도 않고 로맨스나 드라마처럼 신파로만 흐르지도 않는다. 주인공 필선의 캐릭터처럼 밝고 쾌활한 이미지가 전체 영화의 결을 잘 이끌고 나간다. 자칫, 우울해지기 쉬운 명절 연휴에 즐겁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한 영화 <빅토리>를 선택한 건 참 잘한 일이었다. 덕분에 내 추억의 몇 조각도 소환해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거리도 만들었다. 게다가 같이 영화를 본 초4짜리 막내도 정말 재밌었다 하니 세대통합도 이루어 낸 셈. 정말 <빅토리>가 빅토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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