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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Oct 12. 2024

반달맞이

막둥이와 밤마실

한 주의 끝, 주말의 시작

칼퇴근하고 집에 왔다. 현관문을 여니, 고소한 라면 냄새가 솔솔 풍긴다.


집에 누구 있어요?  이게 무슨 냄새예요?


막내가 있을 걸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고 묻는다. 막내는 배가 고파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고 말한다. 나는 잘했다고 안아준다. 속으론 피곤했었는데 마침 잘됐다 생각하고, 얼른 씻고 눕는다. 퇴근 후 침대는 언제나 달콤하다. 한 30분 무념무상에 빠져 있는다. 내 몸 충전기가 깜박깜박 불을 밝히며 충전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막내는  옆에 꼭 붙어있다. 한번  껴안아준다. 오늘치 막내에게 줄 애정포인트도 이렇게 충전. 돌고 도는 에너지 순환 시스템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금세 방전되는 탓에 수시로 안아주어야 한다.


오늘 밤에 엄마랑 데이트하고 싶은데~
엄마랑 밤에 나가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럼 그렇지. 소도 기댈 곳을 보고 눕는다고 오늘이 금요일인지 알고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못 이기는 척 그러자고 한다. 실은 내가 더 좋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한 움큼 약도 챙겨 먹는다. 휘리릭 설거지하고 막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수줍은 반달맞이

반달맞이

1층 현관문을 나서자 보름달 빵을 반으로 자른 듯, 매끈한 반달이 환하게 우릴 맞이한다. 반이어도 충만한 빛, 밝은 모습으로 우릴 맞이하는 그런 저녁빛이 살갑다.


걷는 내내, 막내의 수다는 조잘조잘 그칠 줄 모른다. 오늘의 데이트 코스는 노래방과 치킨강정이란다. 특별히 엄마 의견을 받아들여 인생네컷은 빼주었다고 하면서. 웃음이 나오지만 꾹 참고 노래방도 빼주면 안 되냐고 애원했지만 단호박이다. 절대 안 된다고. 결국 알겠다고 항복하고 말았다.



은근슬쩍 미술관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전시, 시청에 마침 미술전시를 하고 있다는 현수막을 보고는 은근슬쩍 같이 보자 말해본다. 그녀는 단호하게 No!. 그래도 기다려주겠다는 말에 신이 나서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간다. 갈대와 파도가 주요 테마인 그림전시, 유화로 거칠게 표현한 갈대와 파도가 멀리서 보니 영락없는 자연 그대로다. 작품에는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는 매정한 딸의 눈치를 보느라 초고속으로 관람하고 말았지만 잠깐의 관람만으로도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



본격적인 데이트 시작



 드디어, 첫 번째 데이트코스, 닭강정. 3500원짜리 한 컵을 들고 세상 행복한 표정이다. 오물오물 씹어먹는 표정이 귀여워 사진 한 장 찰칵 찍고 저장.



다음은 노래방, 막내는 능숙하게 자신이 원하는 테마방을 고르고 40분짜리 5,000원을 결제하라고 나에게 손짓한다. 시키는 데로 고분고분 세상 착한 엄마가 된다.  욕실로 꾸며진 노래방 볼풀 욕조에 퐁당! 그녀는 고민 없이 아이브의 신곡을 첫 곡으로 선택, 바로 열창을 시작한다. 그 사이 엄마는 센스 있게 그녀의 애창곡, 아이브의 노래를 주르륵 미리 예약해 둔다.


그녀의 애창곡 예약이 끝났으면 이젠 내 차례. 제목도 가수도 가물가물하니 인기차트 선택, 순서대로 훑으면서 애창곡을 한 곡 씩 골라 예약해 둔다. 잔나비, 김범수, 이은미, 이기찬... 요즘 노래도 몇 곡 넣었지만 결국 음정도 박자도 다 엉망진창, 역시 오래 듣던 옛 노래가 좋다.



일 년이면 되니 돌아올 수 있니
기다리란 말도 하지 않는 거니
아파서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말 못 하는 나를 이해해 줘
시간이 지나면 나아야 하잖아
단 하루라도 잊혀야 하잖아
아파서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말 못 하는 나를 이해해 줘
언제까지라도 널 사랑할게

-이기찬, <감기>-


못 이기는 척 노래방에 가놓고는 내가 더 열심히 부른다. 진지한 표정에 고음에 제스처에  누가 보지도 않는데도 노래 부르기에 심취해 있다. 만족스럽게 40분을 즐기고 나니, 막내가 날 보며 한 마디 한다.


근데 엄마는 노래방 싫다면서
막상 오면은 엄청 신나보이드라.



 막내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결국 그럴 거면서 가기 싫다고 움직이기 싫다고 뭉그적거리만 했으니 막내 눈에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겠다.


축 쳐진 몸과 마음에 다시 에너지를 찾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다시 걷는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위치에서 날 보며 반달이 말을 건다.


그래. 잘했어.
웃는 거야, 웃으면 또 살아져.
오늘도 고생했어.


edited by 권수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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