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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Nov 15. 2024

숨구멍

중년의 진로수업

구멍이 점점 뚜렷이 보인다면 환영할 일이야. 이제야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본다는 거니까. 이젠 받아들여. 네가 너의 구멍을, 네가 너를. 지금 너의 문제는 구멍이 났다는 게 아니라 구멍이 나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신은 그렇게까지 대책 없는 구조로 인간을 설계하지 않았거든. 인간의 영혼은 벽돌담이 아니라 그물 같은 거야. 빈틈없이 쌓아 올려서 구멍이 생기면 와르르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들처럼 구멍이 나서 '무엇'이 새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거야. 바로 그 '무엇'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가. 그렇게 조금씩 영혼이 자라는 거지.
  사람의 영혼은 자랄수록 단단해져. 구멍이 난 채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오히려 그 덕에 더 잘 살 수 있어. 정말이야. 믿어도 좋아.

<유선경(2023), 구멍 난 채로도 잘 살 수 있다, 사랑의 도구들, 콘택트, 101p>



가슴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날이 있다.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느낌 

사람들의 말은 흩어져 날아가고

덩그러니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그런 날 나는 구멍 안으로 들어간다.

앨리스가 땅 속 구멍으로 한 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안으로 한없이 침잠해 들어간다.

바닥으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나를 좀 꺼내달라고

여기는 어둡고 무섭다고 외치지만

듣는 이가 없다.


삶은 때때로

잘못 들어간 터널이나

검은 굴 속 같은 미로를 만나기도 한다.


소리치며 울

누군가 꺼내주겠지만

어리석은 나는

당장 그 어둠을 뿌리치고자

기어이 움직이고 만다.

컴컴한 굴 속을, 깊은 터널을 더듬더듬 걷고 엉거주춤 기어간다.


사방으로 막힌 벽에 미련한 삽질을 반복하다가 결국은 뚫고 기어나가고 만다.


누군가는 밤새워 술병을 비우고 

누군가는 한 사람을 괴롭히고 

누군가는 엄한 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하면서

그 구멍을 메우려 안간힘을 쓰지만

난 미련한 삽질만 반복한다.

그냥 두면 될 것을


마음에 구멍이 생기면 

차라리 바람이 드나들게 내버려두자. 

채우려 말고

감추려 말고



꽉 찬 헐떡이기보다는 

그저 구멍을 드러내고

긴 숨 한번 크게 내쉬고 쉬었다 가자.


참으로 바보같은 나는 그 구멍이 숨을 쉬게 하는 분수공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채우려고 애쓰며 사는 완벽함 삶이 때때로 멈추고 비워내는 허술함보다 못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깨닫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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