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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 환자지만 전은 부칩니다

새 시대 새로운 명절나기

by 화요일

해마다 명절이 간소화되는 건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닐 거다. 몇 년 전 허리디스크가 터지고 나서 차례를 지내는 대신에 성당 미사를 같이 보기로 했다. 이렇게 하게 된 지 3년쯤 되었을까. 우리 집 추석은 조금 달라졌다.


전통시장, 들썩이는 추석의 맛

차례는 안 모셔도 명절마다 시장엔 간다. 시장에 가야 명절을 보내는 기분이 느껴진달까. 발 디딜 틈 없는 시장을 휘젓고 다니며 사냥하듯 먹거리를 사모으면 왠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신이 난다. 싱싱한 새우, 팔딱팔딱한 꽃게에, 기름진 전의 향기, 맛보라며 송편을 잘라 건네는 떡집 상인의 인심까지 명절 대목 시장이라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번에는 축산물, 수산물을 일정금액 구입하면 상품권을 주는 행사가 있어 그런지 시장은 더욱 활기 넘쳐 보인다.



소원음식을 말하시오.

명절엔 식구들에게 소원음식을 하나씩 접수받아 그 음식만 해서 먹는다. 아빠는 골뱅이 소면, 아들은 등갈비, 큰 딸은 꽃게, 막내는 오색꼬치전이다. 해야 할 음식리스트가 있지만 시장에서는 그보다 항상 더 많이 풍성하게 사서 온다. 나의 픽은 갓 만든 뜨끈한 두부, 겉절이 김치, 그리고 순대다. 열심히 장을 보고 집에 오면 뜨끈한 두부를 꺼내 조금스레 썰어낸다. 그 위에 간장 조금, 참기름 휘~두르고 깨소금 살살 뿌려낸다. 거기에 겉절이 김치를 올려 먹으면 너무 맛난다. 입가심으로 쫄깃한 색색 송편, 한 두 개 집어먹으면 금상첨화, 저녁은 따로 안 먹어도 될 만큼 든든하다.



선수 두 명 입장, 전 부치기 전 돌입

배불리 먹은 1,2호는 든든한 일꾼이 되어 전 부치기 선수로 출전한다. 식탁에 신문지를 깔고 커다란 전기팬을 꺼내 경기준비를 한다. 큰딸은 동그랑땡 반죽을 고추에도 넣고 깻잎에도 넣어 준비한다. 달걀물을 입혀 전을 부치는 건 아들 2호가 담당한다. 지글지글 전부 치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꽉 찬다. 나는 재료를 준비하고 치우고 명령하는 감독, 물론 선수들이 감독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진 않지만 어쨌든 한 시간 만에 오색꼬치전까지 뚝딱 만들어냈다.

명절전부침, 임무완료


한 끼에 가지만

아침에 생선 전을 부쳐 아침밥을 먹고 점심에는 동그랑땡을 부쳐서 점심을 먹었다.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한 끼를 맛있게 먹기 위해 준비하는 심플한 밥상, 바로 먹을 만큼만 해서 그 자리에서 맛있게 먹는다. 치우는 건 아빠와 큰 아이들이 돌아가며 하고~



틈틈이 찜질은 필수

연휴 전부터 어깨와 목, 허리와 다리가 뻐근하고 쑤시고 저렸다. 노는 것도 쉬는 것도 안 아파야 가능하기에 연휴 전에 정형외과에 가서 야무지게 치료를 받았고 연휴 끝쯤에 또 진료예약을 해두었다. 집에서는 밥 먹고 치우고 잠시 쉬다가 찜질을 한다. 아침에는 허리, 점심때는 목, 저녁에는 다리를 집중적으로 마사지하고 찜질도 한다. 몸을 살살 달래 가며 써야 길고 오래 건강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저녁은 꽃게탕으로

통통한 꽃게 네 마리를 냉동에서 꺼내두었다. 아침, 점심에 전을 먹었더니 시원하고 얼큰한 맛이 생각난다. 콩나물과 무를 썰어 넣고 푹 끓여 먹어야겠다. 진짜 보름달만큼이나 풍성한 추석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내일은 또 뭘 해 먹을까?


다들 보름달만큼이나
풍성하고 편안한 연휴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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