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뽀개기
유난히도 무더웠던 기나긴 여름이 지나가고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점퍼를 찾아 입는 가을이 드디어 왔다. 좋은 날, 차를 타고 외출하는 날이면 습관처럼 창밖을 보곤 한다. 계절마다 바뀌는 나무들이며 강, 높은 건물 그리고 펄럭이는 현수막 등등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요즘은 지역축제 홍보현수막이 많이 보인다. 다들 짧고 좋은 시기를 놓칠세라 앞다투어 행사를 하는 걸까.
예전에는 종종 표를 사서 록페스티벌이나 콘서트를 가곤 했다. 직접 경험을 좋아하는 나는 휴대폰으로 녹음된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약 2%가 부족했다. 10만 원이 훌쩍 넘는 입장료가 부담되긴 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과감히 투자하곤 했었는 데 이게 웬일인가. 마침 근처 지역행사 현수막에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이 딱! 공연 장소가 멀지 않아 차려입을 것도 없이 운동복 비람에 어슬렁어슬렁 행사장소로 걸어간다.
축제. 1. 구로 G페스티벌
지역축제의 포스터는 군더더기 없이 출연진과 날짜만 간단하게 보여준다. 자칫 촌스러운 포스터지만 출연진의 이름, 사진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첫날, 토요일엔 남편, 막내, 나 셋이서, 일요일엔 친한 지인과 함께 산책 겸 안양천길을 걸어 축제 장소를 찾아간다. 마침 바람도 불고 꽃도 피어서 걷기엔 더없이 좋다.
북적북적 푸드코트에 끝이 보이지 않는 테이블과 의자들 사이를 뚫고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치킨 한 상자를 사서 테이블에 앉는다. 바삭한 튀김옷에 짭조름한 고기살이 씹힌다. 배를 채우고 공연장 쪽으로 걸어간다. 벌써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 오후부터 시작된 행사여서 7시가 넘어 날이 어둑해지니 무대 위 화려한 조명이 더욱 빛난다. 어, 그런데 다음 초대가수가 박남정! 20대를 같이 했던 친근한 스타다. 반가운 마음에 객석 끝 스탠딩으로 공연 볼 준비를 한다.
왜 난 이리 널 그리는 걸까
왜 네 모습 보이지 않는 걸까
너는 내 마음을 알고 있겠지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가사가 튀어나온다. 아직도 여전한 가수의 흥겨운 춤과 발재간에 나도 덩달아 몸을 들썩이며 박수를 친다.
지금은 걸그룹 스테이시 시은의 아버지로 더 알려진 그, 나이 60세 스타의 무대는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 하지만 나이는 못 속이는지, 노래 한 곡을 완창하고 가쁜 숨을 내쉬며 좀 쉬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의 그런 모습에 반가움과 왠지 모를 서글픔이 교차한다.
DJ 댄싱타임
가수 박남정의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흩어진다. 의자객석은 텅 비고 무대 앞 스탠딩석으로 사람들이 이동한다. 어느새 강한 비트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빨간색 의상을 입은 한 쌍의 DJ가 무대 위로 뛰어 올려온다. 남자는 랩을 여자는 춤을 춘다. 막내는 내 손을 잡아당겨 막무가내로 무대앞쪽으로 다가간다. 그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무대를 구경하고 손을 흔든다. 방송댄스가 취미인 막내에겐 꿈만 같은 강렬한 무대였을 거다. 그 열광의 무대를 나도 섞여 신나게 놀았다. 어느새 9시가 넘은 시각,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서있을 수 없을 때까지 놀다가 휘청거리며 돌아왔다는.. 왜 어르신들이 젊어서 놀라고 했는지 백분 이해했던 시간.
축제 2. 페스티벌 광명 2025
또 하나의 기다리던 축제는 광명 페스티벌, 우리 집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곳에 마련된 무대다. 해마다 했던 축제지만 이번에는 최애가수 자우림의 출연한단다 기대가득! 푹 쉬다가 체력분배를 위해 저녁 6시 30분쯤 김밥 한 줄을 싸가지고 공연장 앞으로 간다. 먼저 와 있는 아들의 제보로 적당한 타이밍에 무대 앞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평소 이곳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닌데 축제의 힘은 강했다. 10년 넘게 사는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인 건 처음 봤다.
6차선 도로를 꽉 메우고 뒤로도 줄줄이 꽉 채운 사람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이 다 나온 모양이다. 드디어 자우림이 무대에 출연, 그러나 밴드 공연이라 준비할 게 많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30분 정도 흘렀나. 보컬 김윤아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첫 곡이 시작되었다. 강한 스모키화장, 야리야리한 체구, 그 곁을 지키는 두 명의 기타리스트가 어느새 무대를 장악한다.
깊고 어두운 노래부터 밝고 팔짝팔짝 뛸 만큼 신나는 노래에 관중을 쥐락펴락하는 진행 멘트까지 척척해내는 그녀,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매료되고 카랑카랑 내지르는 고음에 압도된다. 어디서 이런 고품격 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을까.
집 앞까지 찾아온 복지혜택
갈수록 세상이 힘들고 어렵다고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주민자치센터 헬스장은 다둥맘이면 공짜로 이용할 수 있고 지역 도서관이나 평생학습원에서는 무료로 신청할 수 있는 양질의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가끔 유명한 작가나 연예인, 학자들의 강연도 신청만 하면 들을 수 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집 앞에서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널려있다. 지난달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 <방구석 미술관>의 조원재 작가님을 도서관 도서관 강당 1열에 앉아서 볼 수 있었다.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동네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의 건조한 관계 속에서 문화, 예술, 인문 등을 접할 수 있도록 애쓰는 지자체의 노력은 더욱 빛난다. 인*타 팔로우 시장님의 피드에서 별처럼 빛나는 시민관객들의 사진을 퍼왔다. 문화로 축제로 사람들을 엮고 만나고 지나치게 되면 낮아진 관계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지 않을까. 가을의 문턱에서 복작이는 사람들 틈 속에어 왠지 모를 온기를 느끼고 뜨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