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보름에
흐린 달
비로소
너는 온전한 원으로 나타났다
구름에 가리어진 채
빼곡한 빛으로 너는 떠올랐다
별, 해, 그림자가
가렸다가 지나가고
서로의 앞을 기웃거리다
왔다가 갔다가
그리고 사라진다
스치고 엇갈리는 것들 속에서
하나지만
매일 다른 모양으로 너는 태어난다
오늘은 왠지
흔들리는 너의 빛이 서글프다
죽을힘을 다해 빛을 내고도
새벽녘이면
눈부신 태양에 자리를 내주고
황홀한 빛이 세상을 점령하면
홀연히 형태를 감추며 물러나고 마는
어스름 밤이 깃들면
가드다란 빛으로 슬그머니 나타나
외로운 나그네의 밤길을 비추고
어두운 골목길, 가녀린 소녀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에 맞춰 걸으며
퇴근길, 고단한 남자의 지친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던
차라리 달빛이었던 나는
밝음으로 통통거리지는 못했어도
여린 빛으로 어둠에 틈을 내주는
등대처럼 살고 싶었을까
문득,
서러움에 훌쩍이던 날에는
화려한 빛만 따르는 이들이 야속하더라
그래도
어느 밝은 날
제멋대로 내리쬐는 빛에 눈이 부셔 피하고 싶은 날,
작아지는 슬픔에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
가는 빛으로 나를 위로해 주던
너의 여린 온기를 나는 기억한다
흐린 빛이어도
가리워진 존재여도
기울어져 반쪽이어도
한 번도 사라진 적은 없었던 너
이제야
온전한 원형으로 빛을 내는 너는
물색없이 드나드는 구름의 침입에도 아랑곳없이
흐린 날의 어스름에도 원망도 없이
그윽한 빛으로 스치는
모든 것을 그저 안아주고 있구나
누가 뭐라든
여전히
그대로
누구도 길도 잃지 않게
여린 빛을 모아 비추어주었던
너
오늘만큼은
온전한 너를 기억할 거라고
떨리는 손으로 흐린 빛을 붙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널 위해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