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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나눠 쓰지 않는 아이들

by 화요일
엄마, 오늘 비 다 맞고 왔어요.
친구들이 우산을 안 씌워줘요.
ㅜㅜ ㅜㅜ ㅜㅜ



이번이 두 번째다. 초5 막내는 "ㅜㅜ " 가 가득한 문자를 몇 개나 보냈다. "아니, 무슨 친구들이 그래. 우리 막내가 속상했겠다." 얼른 아이 편을 들어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실은 나도 많이 속상했다. 날씨도 춥고 바람도 많이 부는 그런 날에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혼자 집에 왔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아침에 우산 챙겨가라고 말할걸 하는 후회와 동시에 혹시나 왕따를 당하고 있나하는 걱정이 따라온다, 오늘이 축제라 친구들과 열심히 연습하고 공연 나간다고 설레했던 아이였다. 그 정도로 친한 친구라면 우산정도는 나눠 쓸 수 있지 않나. 그건 또 별개인가. 알 수 없다. 상황을 알고 싶어서 바로 담임 선생님께 편한 시간에 연락해 달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못 보셨는지 이틀째 연락이 없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뜨끈한 콩나물 북엇국에 제육볶음을 휘리릭 해서 아이 앞에 내놓는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히 묻는다.


나: 근데 다른 애들은 우산 안 가져오면
서로 안 씌워줘?

막내: 응. 각자 써.

나: 그래? 근데 너는 친구들이 우산 없으면 안 씌워줘?

막내: 난 당연히 씌워주지.

나: 근데 혹시 친구들한테 빌려달라고 말은 해봤어?

막내: 아니...



아이고. 그럼 그렇지. 같이 쓰자고 말은 안하니 애들이 그냥 지나쳤나보네. 이제야 이해한다. 우산을 같이 쓰자고 말도 못하는 아이가 답답하지만 내색하지않고 도움이 필요할 땐 누구에게든 용기있게 도움을 요청해야한다고 당부해둔다. 작은 우산도 사물함에 하나 넣어두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조금은 서운하다. 말은 안해도 친한 친구들은 우산 같이 쓰자고 먼저 말할 수 있지않나, 도움을 요청하지않으면 비를 홀딱 맞고 가는 친구를 봐도 그냥 외면해도 되는 건가. 갑자기 복잡해진다. 혹시나 고1 아들에게도 물어본다. 비가 갑자기 내리는데 우산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내 친구들은 막 놀리고
킥킥거리면서 그냥 가던데.
그런데 만약 (친구가) 우산이 하나 더
있으면 빌려주긴 해.




이게 뭐라고 모두가 생각하는 상식의 선이 달라진 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은 누구하나 비빌 언덕이 없으니 위기 대처 능력이 중요하다. 어찌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일인 데, 부모마음에 괜히 심각해진다. 아니, 내겐 조금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혹시, 그 집 애들은 비 오는데
우산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선생님들께 여쭤본다. 조금 고민하더니 "그냥 비 맞고 걸어오든지 그러는 거 같던데 집이 가까우니까" 다들 갸우뚱할 뿐, "친구들이랑 나눠 쓰던데"라고 속시원히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수업하는 교실 학생들에게도 묻는다.



얘들아. 집에 가는데 갑자기 비가 와.
근데 친구가 우산이 없어.
그럼 우산 나눠쓰니?

그 친구가 어떤 친구냐에 따라 다를 거 같아요. 친구가 씌워달라고 말하면 씌워줘요.
근데 (씌워달라고) 말안하거나,
싫은 얘나 모르는 얘는 아닐 거 같아요.




물론 모든 얘들이 다 대답을 한 건 아니지만, 몇몇 아이들은 조건부로 답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걱정이 된다. 우산 나눠 쓰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나. 퇴근길, 비가 오는 가운데 주차장에 가는 동료가 우산이 없으면 부탁을 하든 안 하든 우산을 펼쳐 곁을 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얘들은 다른 가보다. 몇주전에는 병원에 갔었다. 치료를 받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후드득 비가 쏟아졌다. 직원들은 고맙게도 선뜻 우산을 내어준다. 고마운 일이다. 이런 작은 친절은 내 또래의 어른들 사이에선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은 다른가보다.


버스 안에서도 안쪽자리는 비워둔 채로 모두 복도 쪽 자리에만 앉아서 나중에 타는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뜨악했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한 행동이지만 늦게 온 사람에겐 불편을 주는 행동, 불특정 타인에 대한 배려는 개인의 편의 앞에서 무색해진다. "내가 왜?"라고 정색하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과 개인적 친분을 가질 수 없고 친분에 의해서만 조건부로 선의를 베푼다면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도움이 필요한 타인에게 용기 내어 선의를 베풀다가 더 큰 곤경에 빠지거나 괜한 오해에 휘말려 힘든 상황을 겪게 된 사람들도 종종 있다. 혹시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국 각자도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아직은 친해지지 않은 잠재적 이웃이고 친구일 수도 있지않나. 그들을 위한 작은 배려와 친절은 미래의 나를 위한 적금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종종 종인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에게 아주 작고 사소한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 짐을 많이 들고 타는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 '열림'버튼을 눌러준다던가 바쁘게 가는 행인 떨어뜨린 이어폰을 주워준다던가. 어린아이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행동, 이런 일상의 작은 배려는 세상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와 같다. 위험과 곤경에 빠지는 상황이 항상 지인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 모르는 사람이라도 친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불편함에 먼저 도움을 주는 선의, 그 아름다운 용기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중학교 교실에서 서로 인사하고 배려하는 작은 행동을 가르쳐야 하는 것처럼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우산을 나눠쓰는 작은 친절을 가르쳐야하지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다음주에는 아이 담임 선생님께 한번 더 전화드려 봐야겠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는 우산을 나눠 쓰는 행동이 이상한 건지, 혹시 이 작은 배려 행동을 지도해 주실 수 있으실런지. 괜한 학부모의 오지랖이라고 욕먹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해봐야겠다.


#라라크루13기

#7-1

#우산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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