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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온 뒤 행복지수 Feb 13. 2022

우리는 또다시 살아가고 사랑하고

식물엔 자신이 없다. 행운과 함께하는 사랑이라는 꽃말에 혹해서 구매한 청페페와 을지로입구역에서 데려온 하트 다육이를 작년부터 부적 다루듯 키우는 중이다. 처음으로 식물 영양제를 종류별로 사보고, 화분을 갈아주고, 달력을 동원하고, 예쁜 말을 들으면 더 잘 자랄까 싶어 페페야 - 라며 말도 걸어보는데, 어째 자꾸만 시들해져 간다. 잎이 툭 떨어질 때면, 부적이 저래서 내 연애가 망해간다며 죽어가는 식물 탓을 하는 나는 정말 이상하고도 나쁜 사람이다. 하트 모양의 반이 노랗게 쪼그라든 다육이를 보면서, 새삼 사랑을 주는 일은 실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그 대상이 식물이든, 타인이든, 자신이든 간에. 식물의 식도 모르는데 사랑과 관련된 꽃말을 가진 화초와 하트 모양의 선인장을 사들인 건, 나는 아직도 사랑이 어려워서인가 보다.


너 자신을 사랑하는 걸 잊지 마. 아침밥 챙겨 먹는 것도 잊지 말고.


어느 여름밤 그의 작별인사. 더운 날씨에 이마와 두 손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도 서로를 못 놓아주던 밤, 어딘가 내 마음을 투시하는듯한 그의 마지막 인사에 늦은 시각까지 잠을 뒤척이던 기억이 난다. 그럴게. 잊지 않을게. 대답이 애석하게도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어려워 잠을 청하지 못한 그 고요한 새벽이 기억이 난다. 머리와 마음이 좀처럼 포개지질 않아 애먼 이불에 몸을 포개던 밤이.


세상은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노래, 책, 영화, 그림 등이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는 양상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중요하고도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혹은 첫걸음마를 땐 순간, 아니면 그 보다 훨씬 전인 엄마 뱃속에서부터 사랑을 받아본 사람들인데, 받은 그 사랑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려 스스로에게 내줄 것이 하나 없을까. 깨진 항아리에 물이 담기지 않는 것처럼, 마음 어딘가에 균열이라도 나버린 걸까. 그 균열 틈으로 받은 사랑이 새어나가기라도 한 걸까. 살아간다는 건 그 균열을 다시 메워가는 걸까.


생명력이 강한 페페는 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다시금 새 잎을 돋는다. 언제 노랳냐는듯, 자그마하게 흙 사이로 힘껏 자라나는 페페의 잎에서 생의 의지가 보인다. 문득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쓰러져도 다시 자라난다는 걸 느낀다. 넘어져도 기어코 일어나서 다시 살아가고 사랑하던 우리처럼. 그러고 보면 살아가고사랑하고의 발음과 모양, 그리고 사랑사람이란 단어가 서로 닮은 건, 사람은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또다시 살아가고야 만다. 사람은 또다시 사랑하고야 만다. 서로 닮은 자음과 모음, 말할 때의 입모양과 그 입에서 비슷하게 새어 나오는 날숨을 두 손으로 꼭 간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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