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가의 꽃 Dec 07. 2022

빨강 장미의 진심

 

가로수의 앙상한 나뭇가지와 회색빛 하늘의 도시가

12월만큼은  곳곳이 붉게 물들고 반짝거린다.

평소에는 붉은 꽃들을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왠지 연말이 되면 나도 모르게 빨강 장미에  손이 자주 간다.

연말 특유의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들뜨다가도 빨강 장미를 다듬고 있다 보면 어느새  그의 클래식함과 엄숙함에  빠져  진지해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누군가에게 깊은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  빨강 장미만큼 그 진정성을 표현하기에 좋은 꽃은 없는 듯하다

빨강 장미는 세련된 고백을 노련하게 전하고 싶을 때도 혹은 서툴지만 마음만은 온전히 표현하고 싶은 순수한 고백을 대신때도  손색없는 꽃으로 ,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이 매우  꽃이다.


꽃을 사본 적이 거의 없어 큰 용기를 내고 꽃집 문을 여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수줍게 건네는 첫 한마디가  "빨강 장미 있나요?"이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처음 사본 꽃이 바로 빨강 장미였었다

중학교 2학년, 부모님 결혼기념일 선물을 위해 용돈을 모아 학교 근처 화원에서 빨강 장미 100송이가 들어간 꽃바구니 배달을 주문한 적이 있다.

아마도  빨강 장미는 그 시절 15살 소녀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꽃 중 가장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꽃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빨강 장미는 내 생애 첫 꽃이 되었고 엄마에게 또한  평생 동안 기억에 남는 가장 크고 아름다웠던 생애 첫  꽃바구니였었다고 하신다.


하지만 그 후 성인이 되고 꽃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빨강 장미를 다시 구입한 적은 없다.

왠지 그때는 빨강 장미는 너무 전형적이어서  오히려 촌스러운 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때였었다.


결혼을 하고 일 이년이 지난 12월의 어느 날 집으로 빨강 장미와 흰 안개꽃 그리고 곰돌이 인형이 들어 있는  플라워 박스가 배송되어 왔다. 남편이 서프라이즈로  보내준 기념일 선물이었다.


전형적인 안개꽃 속  빨강 장미의  자태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취향을 그동안 이렇게도 몰랐나 하는 야속한 생각이 들다가도 너무나도 선명한 붉은빛의 장미가 마치 속이 다 드러나 보이는 남편을 보는 듯해  순수해 보이기도 하였다. 후일담으로는 본인 눈에는 제일 이뻐 보여  분명 나도 좋아할 것 같아서 골랐다고 하는데  그 후로는 나에게 무조건 먼저 물어본 후 구입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동안의 남편의  어느 선물들보다 신혼 때 보내준 그 빨강 장미 박스가 종종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남편의  마음이 그대로 새겨져 있던 장미를 떠올리면  아직도 괜스레 웃음이 난다.


 추운 겨울날 빨갛게 언 손으로 빨강 장미 한 다발을  꼭 쥐고서 늦게 까지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던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와 만옥이의 첫 만남 장면은 아직도 그 드라마의 베스트 장면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 속 빨강 장미 한 다발이 어느 화려한 꽃다발보다 정봉이의 진심과 설렘을 만옥이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었듯이  전형적이고 흔하디  흔한 꽃이기도 한  빨강 장미꽃은 오히려 전형적이기에 더 깊은 울림과 진심을 전달해 줄 수 있지 않나 싶다.



빨강 장미는 이처럼 다른 꽃들보다 조금 더 진심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본 꽃이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처음 받아보는 꽃이 될 수도

누군가에는 첫사랑 고백을 위한 꽃이 될 수도

있는 이 순수하고 진지한 빨강 장미는

특히나 연말인 지금 더욱더 빛을 발하는 꽃이다.


올해가 가기 전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면

다른 어떤 꽃보다 진심인 빨강 장미 안에 누구보다 진심인 내 마음을 담아 전달해보면 어떨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문과도 같은 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