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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Jan 08. 2023

내 마음속 들꽃, 전원일기


3년째  하루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어김없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티브이를 켜고 전원일기를 시청하는 일이다.

전원일기만 하루 종일 방영해주는 채널들이 있다. 그 채널들을 돌려가며 80년대의 전원일기를 보다가 다시 다른 채널로 돌려 2000년대의 전원일기를 본다.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리모컨 하나로 넘나들며 몇 년째  나는 전원일기를 보고 또 보고 있는 중이다.

어릴 적 내 기억 속 전원일기는 희미하다.  살면서 전원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시골에 계시는 가족이나 친척들도 없었기에 나에게 전원일기는 그저 일요일 아침에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볼 게 없어 그냥 틀어 놓는 드라마였었다.

그랬던 내가 전원일기가 종영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시험공부를 하듯 1088회에 달하는 전 회차를 몇 차례 정주행하며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빠져 그들의 삶을 매일 시청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원일기 배우들을  다른 방송에서 마주치게 되면  마치 어릴 때 헤어진 이웃을 만난 듯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가도 그들의 얼굴에 새겨진 세월의 흐름에, 새댁역할을 하던 배우가 할머니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에  시간이 야속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 시간 동안 변해버린 내 모습은 생각지도 않고 말이다. 이처럼 그들은 이제 나에게 그저 극 중 캐릭터가 아닌  내 어린 시절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웃의 이모, 삼촌, 언니, 오빠,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드라마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 속 양촌리의 사계절은 뚜렷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도시의 계절보다 더 빠르게 돌아온다.

20여 년에 걸친 전원일기 속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바라보며 나는 '저 꽃이 필 때쯤이었으면 4월쯤 방영했겠구나', ' 9월쯤에 저 꽃이 피는구나'  라며  그 시절, 그 계절을 추측하고 상상한다.

극 중 인물들이 발길 닿는 길목 곳곳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꽃들을 알아보는 것 또한 나에게 소소한 재미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드라마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시골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이겠지만  나에게는 생생한 식물도감인 것이다.



들꽃이 유난히 눈에 띄었던, 기억에 남는 회차가 있다.  보라색의 공작초가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계절의 이야기이다.  공작초가 보통 9월에 개화하니 드라마도 아마 가을 중순쯤 방영됐었을 것이다.

김회장댁 첫째 며느리 은영이의 그해 가을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힘겨웠었던 것 같다. 늘 성실하고 온화한 미소로 자신의 자리을 묵묵히 지키는 그녀가  그 회차에서는 무기력하고 어둡기만 하다.  이유 없이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고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가족들을 당황시킨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은영에게 찾아온  이유 없는 슬픔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그 시절 4년제  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그녀가 시골에서 할머니,  부모님을 모시는 장남의 아내가 되어 불평불만 없이 자신을 지운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면서도 슬프기도 하다. 틈틈이 책을 읽고 좋아하는 글쓰기도 하지만 늘 같은 일과 속에서  은영에게 지워지는 것은 맏며느리라는 책임감뿐인지라 그 회차 속 은영이의 우울감과 고독감에 나도 동화되어  그녀가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이선희의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를 들으며 서럽게 우는 장면에서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힘겨워하는 은영을 가족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위로하려 한다.

옆집 복길할머니도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시할머니도 직접 건너와 울고 있는 은영에게 음식을 건네며 은영을 안아준다.  그리고 그 시절 꼬꼬마 였었던 둘째 조카 수남이가 큰엄마 은영에게 들판에서 꺾어온 보라색 공작초 한 다발은 건네는데  급하게 꺾어온 수남이의 작은 손에 들려져 있던  공작초 한 더미 속에서 그녀가 그들에게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도 헤아릴 수 없을 것만 같은 내 슬픔을 누군가가 헤아려주고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을 것들을 주며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그것만으로도 은영은 자신이 살아온 길이 무모하고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언젠가 슬픔에서 헤어 나왔을 때 깨닫게 될 것이다.


몇 년째 매일같이  전원일기를 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했던 나에게도 수남이의 작은 손에 들려있던 보라색 공작초 한 다발이 큰 위로가 되었다. 몇십 년 전 속 드라마의 한 장면이 나의 오래되고 고질적인 어둠을 희석시켜주는 듯했다.  가을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에  흐드러져있는 드라마 속 공작초 한아름이 은영의 외로움을 안아 주는 듯했다.   


전원일기를 보고 있으면 고전 수필 한편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수필 속 이야기에서 내 모습도 우리 부모님의, 친구들의 모습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전원일기가 들려주는 삶의 메시지가  현재의  내 삶 속으로  관통되어  최근 몇 년간,  마음이 힘들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전원일기를 시청하는 시간만이 나에게 유일한 위로와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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