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매일경제)
“파편화된 업무분장으로 코끼리 다리 만지는 장님이 된 느낌이예요.” (대기업 A책임)
“상사들은 일은 시키지만 권한은 주지 않아요. 그러니 시키는 것만 소극적으로 하는 거죠.” (B책임)
한국 사회가 처음 경험하는 저성장 시대에, 다양한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이 충돌하는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지난 30년 동안 작동하던 조직관리 방식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그래서 ‘과연 앞으로도 우리 회사는 돈을 벌고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가?’에 대해 리더들의 고민이 깊다. 회사는 구성원들에게 좋은 직장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복지를 제공하고 수평적 소통 같은 좋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회사나 일에 대한 구성원들의 몰입이 나아졌다고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고도 성장기에는 회사의 성장이 개인의 성장과 거의 동일시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활 대부분을 회사에 바치고, 상사의 지시에 순응하면, 회사의 성과와 성장에 대한 열매를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자신에 대한 충성인 셈이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저성장기 회사의 성장은 개인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고, 회사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는 괴리가 심해졌다. 회사에 대한 충성이 개인의 성공적인 삶을 보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의 마음은 회사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워크는 나쁘고 라이프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나, 가능하면 적게 일하고 여가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현명한 직장생활의 기준이 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딜레마, 워라밸과 성장
2023년 모취업포털사이트에서 MZ세대 직장인 1,114명을 대상으로 중요한 직장생활 키워드에 대해 조사한 결과 1위는 높은 보상(31.0%, 복수응답), 다음으로 나 자신의 성장(29.4%), 저녁이 있는 삶(20.7%) 순이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36.6%)이 가장 많이 꼽혔다. 또 2022년 485명의 젊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직에 대한 조사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경험을 배울 수 있는 기회(60.2%, 복수응답)’, ‘커리어 관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53.4%)’이라고 응답했다. 이렇듯 젊은 세대 직장인들은 회사보다 자기 자신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단순 명확하다.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거나 일이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그 결과 회사 내에서뿐만 아니라 채용 시장에서 몸값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우리보다 직장생활을 느슨하게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절반은 맞고 절반은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 입장에서 보면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거나 미래의 가치를 높이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차라리 일과 삶의 균형이라도 확실하게 챙기자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저성장기에 접어들며
젊은 직장인들 미래 불확실
회사보다 자기 자신에 집중
회사는 일의 가치 보여주고
구성원 개인의 성장 지원을
회사나 일에 조금 더 몰입하게 하려면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조금 더 일에 집중하게 하려면
첫째, 파편화된 과제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가치와 연결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일의 의미와 목적을 최대한 분명하게 이해시키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리더들의 역할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짜 일 vs. 진짜 일’의 저자 브렌트 피터슨은, 직원들의 73%는 자신이 하는 일이 회사의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53%는 자신이 하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92%의 직원들이 작년보다 올해 더 많이 일했다고 응답했다고 하는데, 이는 거의 모든 직원들이 작년보다 더 많이 일은 하고 있지만, 정작 업무의 목적이나 의미도 모른 채 상사가 시키는 일을 ‘해치우고’ 있는 셈이다. 구성원들은 일이 많은 것도 불만족스럽지만, 의미 없는 일 또는 목적을 알 수 없는 일이 더 불만족스럽다.
또 퍼듀대 심리학과 교수인 윌리엄스는 여러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소속감, 자아존중감, 통제감 및 의미있는 존재감을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욕구로 꼽았다. 그리고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사고 능력이 저하되고, 불안이나 무가치함 그리고 무력감을 느끼는 등 사회적·심리적 기능이 손상된다고 했다. 일에 대한 의미와 목적이 공유되고, 그것이 어떤 가치와 연결되는지 이해하는 것은 바로 네 가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일과 직장에 대한 만족감을 경험하게 만든다.
둘째, 주 40시간의 근로계약이 아니라 심리적 계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심리적 계약이란 회사와 구성원 서로가 상대에 대해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가에 대한 주관적인 기대와 믿음을 말하는데, 개인의 성장, 공정한 보상과 피드백을 기대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거래모델로서 심리적 계약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계약이 유효하려면 리더들의 업무 전문성과 효율적인 관리 역량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즉 비전, 방향성, 목표 같은 큰 그림을 보여주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수평적, 탈권위적, 합리적 소통을 통해 업무 지시를 명확히 하고 친절한 피드백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자율성을 부여하고, 책임과 권한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리더들은 업무 시간이 아니라 업무의 질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재택근무, 유연근무 같은 다양한 형태의 근무 방식이 확산되면서 더 이상 물리적으로 시간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셋째, 위의 두 조건과 함께 일을 통해 구성원의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직장에서 성장의 핵심은 일하는 능력, 즉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리더들은 다양한 문제해결 과정을 통해 구성원 스스로가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 조성을 해주어야 한다.
젊은 직원들이 생각하는 좋은 회사가 단지 자유롭고 편안한 소통, 자율적인 복장과 근무환경, 다양한 복지와 충분한 여가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일을 통해 성취감을 경험하고,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고, 자신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기쁨을 기대할 수도 있다. 리더들에게 더 다양한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글은 저자가 24년4월 11일 매일경제(https://www.mk.co.kr/news/business/10986926)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