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매일경제)
"이직을 고민 중입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좋은 회사에 가고 싶어요." "워라밸은 없고, 부서 사람들은 자발적 노예들입니다." 최근 대기업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MZ세대들은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되는 기업'(36.6%)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또 한 취업 플랫폼 조사에서도 좋은 직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일과 삶의 균형(38.8%)이 1위에 올랐다. 흥미로운 점은 두 조사에서 금전적 보상은 모두 두 번째로 중요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은 필수인 셈이다.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기업들이 다양한 제도나 리더십 변화를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지원하고 있는데, 여전히 혼란과 오해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균형이 50대50을 의미할까? 그렇지 않다. 우리 모두 상황이 다르고, 삶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균형'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에서 직업적 성취감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낸다. 반면 어떤 이는 일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일은 나쁘고, 삶은 좋은 것이므로 무엇보다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균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일과 삶의 기계적인 형평이 아니라 삶의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완전히 잠식하거나 고갈시킨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둘째, 균형은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적절한 불균형이 필요하다. 균형은 상황에 따라, 인생의 계절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우선순위 설정 등을 통해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기면 균형은 무너져버리고, 우리는 다시 균형을 찾기 위해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균형이 아니라, 일에서도 삶에서도 건강하게 발전하는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 유명한 컨설턴트인 마커스 버킹엄의 말이다.
셋째, 균형이 느슨함이나 편리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재택근무를 하면서 근무시간 중에 운동을 하거나 식사 준비를 하는 등 다양한 '일 이외의 일'을 할 수 있다. 또 당장의 과제를 미뤄둔 채 잠깐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점을 재택근무의 장점이라거나 일과 삶의 균형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균형과 편리함, 균형과 느슨함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것을 균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업무가 쌓이고, 마감일이 다가오는 스트레스는 물론 산만함 때문에 업무의 질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상사가 알아차리기도 한다. 그래서 실제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며 실적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 압박을 받기도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된
직장 찾는 젊은 직원들
휴식·여가만큼 성취감 중시
리더가 분명한 목표 제시않고
지적 일삼으면 성장판 닫혀
업무 몰입시킬 동기부여를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리더의 역할
심리학 연구 주제 중에 재미와 의미라는 개념이 있다. 먼저 재미는 즐거움을 뜻한다. 그리고 행복은 즐거운 경험과 즐겁지 않은 경험, 긍정적 정서와 부정적 정서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의미는 단순히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진정한 잠재력 실현을 향한 노력이라고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주말을 희생하며 일하는 것 등은 힘들지만 성취와 보람과 의미를 경험하면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도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미와 즐거움이 주는 행복도 있지만, 의미에서 느끼는 행복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리더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첫째, 리더들은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구성원들의 기대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현재 리더들에게 일은 단순한 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과 직장은 자신의 핵심 정체성이자 삶의 중심축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과거 30년이 일 중심의 사회였다면, 이제 일과 삶의 균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가 되었다. 따라서 농업적 근면성과 양이 중요했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업무의 효율과 질을 중심으로 한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일의 의미, 목적, 방향성 그리고 기대하는 결과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요즘 젊은 직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하지 않나? 파편화된 업무분장으로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장님이 된 것 같은 구성원들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내가 하는 일이 조직의 목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래서 나의 존재가 어떤 의미나 가치를 갖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 결과 '시키면 시키는 것만, 수동적이고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사람들은 성취와 인정이라는 의미를 찾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의미가 필요한 존재다. '시시포스에게 돌을 굴리는 약간의 이유만 주어진다면 게으름을 피우기보다는 돌을 굴리는 선택을 할 것이다.' 시카고대학의 크리스토퍼 시 교수의 말이다.
셋째, 구성원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해야 한다.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동기 세 가지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다. 자율성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일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다. 유능감은 '내가 맡은 업무를 통해 인정받고 있으며,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는가'이며, 관계성은 '리더나 동료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인가'의 문제다. 리더 자신의 경험을 한 번 떠올려보시라. 시시콜콜 지시하는 상사, 빨간펜 선생님이 되어 지적하는 상사와 함께 일했을 때와 믿고 맡겨 주고, 인정과 지지를 보내주었던 상사와 함께 일했을 때 각각 어떤 심정이었는가? 나는 구성원들에게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을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과 삶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통합된 실체다. 일은 일이고 삶은 별개라는 이분법적 생각으로 각 영역에서 부분최적화를 이루고 싶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일이 고통인데 인생이 재미있고 의미 있기 어렵고, 인생이 고통인데 일이 재미있고 의미 있기 어렵다.
"사람이란 어떤 한 분야에서 잘못 행동하면서, 다른 분야에서 올바른 행동을 보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불가분의 전체이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이다.
이 글은 작가가 매일경제신문(툭하면 '빨간펜' 든 상사 … 워라밸 갈등 키운다 [트라이씨 기업심리학] - 매일경제 (mk.co.kr), 2024.7.11)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