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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11. 2024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매월 24일은 '부부가 서로 사과하는 날'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한국사과연합회에서는 10월 24일을 ‘사과데이’로 정했다. 사과가 많이 나는 계절인 10월에 ‘둘이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과일 마케팅 전략이지만 사과의 음과 훈훈한 휴머니즘을 곁들인 멋진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사과(謝過)하기가 쑥스러워 과일 사과(沙果)를 건네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경우도 본다. 사과는 언제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것일까? 사회적 영향력이 큰 명사의 사례를 드는 것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사과를 제대로 하는 인사로 정평이 난 인사가 있다. 그는 사과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재임: 2009~2017)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던 2008년 5월, 미시간 주 자동차 공장 방문을 동행 취재한 여기자에게 '스위티(sweetie)'라고 부르는 실수를 했다. "후보님, 미국의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을 어떻게 도울 생각인가요?"라는 여기자의 질문에 오바마 후보는 "잠시 기다리세요. 쉬위티"라고 말한 뒤 즉답을 피했다. 여기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한 것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오바마가 여기자에게 '스위티'라고 한 말이었다. 스위티는 주로 연인 간이나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에 부르는 말이다. 대통령 후보가 여기자에게 친근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그냥 넘길 수도 있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성희롱에 해당하는 엄청난 실수다.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벌어진 이런 유형의 실수는 자칫 상대 후보로부터 약점을 잡히거나 유권자로부터 정치적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입을 수 있는 엄청난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다. 오바마 후보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오바마 후보는 곧바로 잘못을 깨닫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여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하려고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버락 오바마입니다. 두 가지 사과할 일이 있어 전화했습니다. 하나는 당신의 질문에 답을 주지 못한 것인데, 무척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중략) 두 번째는 당신에게 '스위티'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이는 저의 나쁜 말버릇일 뿐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실수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게 전화 한 번 주세요. 다음에 디트로이트를 방문할 때, 제 홍보팀을 통해 당신에게 보답할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오바마 후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추후 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진정한 사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위기관리 리더십이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인간관계에서 잘못을 한 사람이 사과를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를 보게 된다. "사실 그런 뜻이 아니라..."라는 서두를 꺼내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변명을 섞어 구렁이 담 넘듯이 두리뭉실 얼버무리는 식의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무조건 '미안하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사과에도 기술(정석)이 필요한 법이다. 첫째, 잘못(과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의 잘못을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실패한 사과는 이렇게 운을 떼든가 마무리를 한다. "제가 어떤 잘못을 했든…"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만일 실수가 있었다면…" "당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까 하는 말인데…" "크게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 "피해를 주었다니 유감입니다" 등이다.  둘째, 진심으로 후회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 즉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경청하고 피해를 준 데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셋째, 변화된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잘못의 배경을 밝히는 해명 단계이다. 해명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가해자에게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해명이 정직하지 않거나 오만하거나 교묘하게 피해 가려고 하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상투적 변명을 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마지막 넷째는 피해자가 입은 물적, 정신적 피해를 갚는 것이다. 사과의 백미(白眉)는 피해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적절하게' 보상하느냐에 달려있다. 적절한 보상이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보상이 가해자의 생각과 피해자의 기대가 엇갈리게 되면 피해자에게 상처를 덧나게 하거나 부정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과의 기술은 인정, 후회, 해명 그리고 보상이다. 오바마 후보의 경우는 적절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오바마 후보는 진정성 있는 사과, 잘못에 대한 책임과 해명 그리고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대안 제시까지 사과의 정석을 따르고 있다. 오바마 후보가 여기자에게 사과한 것은 공인으로서 대통령 후보와 언론을 대표하는 기자 사이에 벌어진 사례라면, 국가차원에서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어떻게 사과하는가를 보여준 적절한 사례가 있다. 미국 정부의 부끄러운 역사는 무엇이고 그 역사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과했는지 살펴보자.


매독 치료제가 없었던 1930년대 초 미국 연방 보건부는 앨라배마 주 터스키기에서 흑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매독의 영향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무료 진료를 대가로 매독에 걸린 경험이 있는 흑인 남성 399명을 연구대상으로 등록시키면서 '나쁜 피(bad blood)'에 대한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흑인들에게 매독 감염 사실을 알리지도 치료도 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매독 환자가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자연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관찰하였다. 생체실험이었다. 1972년 내부 고발자와 언론이 실체를 폭로하면서 심각한 연구윤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28명이 매독으로 죽고, 100명이 매독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이들 부인 중 40명이 감염되었고, 19명의 자녀가 매독균에 감염된 채 태어났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잘못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는 뒷전이었고 보상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무마시키려고 했다. 1979년 연방의회에서 이 생체실험에 대한 반성과 미국의 연구윤리에 대한 기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벨몬트보고서가 나왔을 뿐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임상 연구는 인간에 대한 존중(Respect for person), 선행(Beneficence), 그리고 공정(Justice)의 원칙에 따라 수행되어야 한다. 벨몬트보고서는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하는 연구자들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의 대가로 얻은 교훈이다. 


1997년 5월 빌 클린턴(재임: 1993~2001) 행정부는 생체실험 65년 만에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을 백악관에 초청하여 공식 사과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가 나치의 유대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대학살이나 일본군의 생체실험 등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했던 비인간적, 비윤리적인 만행에 대해 강력하게 비난했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수치스럽고 곤혹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특히 터스키기 사건은 국제 간의 문제가 아닌 오로지 미국 내에서 벌어진 국내 문제가 아니던가. 그 오랜 세월 자국민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생체실험에 대해 정부 차원의 사과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과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어떻게 사과했는지 살펴보자.


"미 합중국 정부는 심각하게 , 뿌리 깊이,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습니다. 이는 모든 시민들에게 청렴하고 평등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약속에 대한 위반입니다. 우리는 이제 침묵을 깨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제 진실이 아닌 다른 쪽으로 돌리던 것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여러분의 눈을 쳐다보고, 국민들을 대신해, '미 합중국 정부가 한 일이 부끄러운 것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깊은 유감을 느낍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국가가 저지른 부끄러운 과오를 드러내고,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그는 국가의 도덕적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설명했다. 더 나아가 그는 추가적인 보완책도 발표했다. 터스키기에 있는 국립의료생명윤리센터에 기금을 지원하고, 소수민족 학생들을 위한 생명윤리장학금을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사과할 것인가에 대한 사례를 외국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축구는 국기(國技)라고 할 정도로 전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스포츠다(2020년 기준 대한체육회에 등록한 초중등, 대학, 성인 아마추어 선수는 전체 9만 6천여 명 중 축구 선수가 2만 4천여 명으로 무려 25%를 차지할 정도로 그 규모면에서 압도적이다). 많은 스포츠 종목 가운데 유독 축구를 전 세계 공통의 언어로 추켜세우기도 한다. 한국의 축구는 세계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을 지속해 왔으며 2002년 월드컵대회에서는 4강의 신화를 쓰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스포츠경기가 있었고 거국적으로 응원전이 펼쳐졌지만 월드컵 경기 당시 서울시청 광장을 가득 메운 길거리 응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멋진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높여주었고 한국이 자랑스러웠던 순간이었다. 11명의 축구대표 선수들이 대한민국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역사적 사건이었다.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축구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더 감정이 몰입되는 매력이 있다.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 경기는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이기느냐, 어떻게 지느냐이다. 2023년 4월 26일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와 축구경기를 했는데 경기 과정은 물론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과 함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3세 이하(U-23) 국가대표팀은 2024년 파리올림픽 남자축구(23세 이하) 아시아 최종예선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와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객관적 전략에서 인도네시아 축구는 우리나라 축구와 비교하기 민망한 변방의 축구다. A대표팀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도 한국은 23위, 인도네시아는 134위다(언론에서는 인도네시아전에서 패배를 놓고 망신을 넘어 참사로 '한국 축구의 치욕의 날'이라고 성토했다). 스포츠 경기의 승패는 출전 선수들의 컨디션, 감독의 전략과 전술, 선수들의 사기와 파이팅 그리고 응원 등 경기 내외적인 복잡한 요소들이 작용하지만 그날 한국 축구의 패배는 밤을 꼬박 새우며 응원했던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그 비난의 화살은 우리나라 축구 행정을 총괄하는 대한축구협회에 모아졌다. 


대한축구협회는 2024년 2월 국가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한 뒤에도 협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거나 감독, 코칭 등 코칭스태프의 구성, 연령별 선수 자원 확보, 선수 개별 관리, 선수 운영 체계 등 대대적인 개혁을 실행하면서 시스템적 변화를 꾀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일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대표팀의 황선홍 감독을 U-23 국가대표팀 임시감독으로 임명했다.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에 대한축구협회에서 발표한 사과문이다.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 실패에 대하여"


오늘 열린 2024 AFC U-23 아시안컵 8강전 패배로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된 것에 대해 축구팬, 축구인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10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위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축구 대표팀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저희 대한축구협회에 총괄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향후 선수와 지도자 육성, 대표팀 운영 체계를 면밀히 검토하고 개선 방안을 찾아내 더 이상 오늘과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당면 과제인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을 잘 마무리 짓고, 계속 이어지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좋은 경기로 국민 여러분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대한축구협회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합니다.


2024. 4. 26.

 

대한축구협회



사과문에 따르면 사과의 정석이라고 하는 '진정성 있는 사과', '잘못에 대한 책임과 해명' 그리고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대안 제시'에 대한 모양새를 내고 있지만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두리뭉실한 사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과의 주체도 대한축구협회라는 기관이지 그 책임자인 협회장도 아니다. 이것은 사과문이라기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입장문이다. 문제가 발생한 뒤의 개인이나 기관에서 낸 사과문을 읽게 되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겠구나 방향을 잡을 수 있는데 판에 박힌 입장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를 두고 공허한 사과라고 하는가. 미숙한 축구협회의 운영에 버금가는 미숙한 사과다. 우리나라 국민은 관대함과 아량이 많은 민족이다. 일등이 꼴찌에게 질 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 경기의 의외성이고, 그 의외성이 관전자나 시청자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가 패배 후에 낸 사과문은 국민의 마음을 충분히 얻지 못했다. 진심 어린 해명도 책임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헛발질을 하고 '똥볼'을 차고 말았다. 우리나라 축구의 위상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찾을 수 없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잘못을 범하게 된다. "실수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신의 몫이다(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잘못을 어떻게 인정하고 피해자와 어떻게 화해하느냐이다.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사과는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와 피해자가 수용하는 도량의 함수관계가 아닐까 싶다. 매일 사과를 하나만 먹어도 몸에 좋다고 한다. 매일 사과를 먹는 것처럼, 우리는 매일 자신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며 사과할 일이 없는가 곱씹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과할 일이 있다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사과의 기술 첫 단계는 잘못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쿨하게' 인정하는 용기라는 것을 잊지 말자(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변명은 거짓말보다 더 나쁘고 더 추악하다. 변명이란 방어벽을 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패자는 사과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과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현대사회에서 사과는 리더의 언어로 부상했다. 리더가 잘못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한다면 모두 그의 용기를 우러러볼 것이다. 무엇보다 사과는 '실수와 용서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라고 한다. 제발 그 징검다리를 걷어차버리지 말자.  



김호, 정재승. (2021). 쿨하게 사과하라. 서울: 어크로스. 

라자르, 아론. (2004). 사과에 대하여. 윤창현 옮김. 서울: 바다출판사.

바티스텔라, 에드윈. (2014). 공개사과의 기술. 김상현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  

송지훈. (2024). 중앙일보. 구기, 여자핸드볼 빼고 전멸 ... 한국, 파리 금 목표 고작 5개.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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