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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10. 2024

누군가는 우리의 '버팀목'이다

우리는 죽은 자에게 빚진 채 살아간다

3년 전 정원에 은목서를 심었다. 은목서는 그 은근하고 진한 향은 말할 것도 없지만 거실을 적당히 가려준다(작년 10월 경 처음으로 꽃망울을 터트린 목서 꽃이 내뿜는 향기는 잊을 수가 없다. 달콤하고 매혹적인 향을 가까이 맡기 위해 코를 꽃에 가까이 대는 바람에 톱니처럼 날카로운 가시에 찌르기도 했다). 또 1년 반 전에는 정원 중앙에 청단풍나무를 심었다. 단풍나무을 밖에서 보면 집이 가려 답답하게 보이겠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집 안에서 바라보면 제법 운치를 풍기고 기품을 유지하며 전체적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한 여름 땡볕을 견디지 못하는 화초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최근에는 단풍나무 아래 제법 큰 바위 두 개를 놓아 해가 긴 여름의 해름 녘에 걸터앉아 차라도 마시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을 요량이다. 


최근 날이 풀린 화창한 봄날의 햇볕을 맞으며 정원에서 일을 하다 갑자기 은목서와 단풍나무에 세워놓은 버팀목(木)이 눈에 띄었다. 버팀목은 각목으로 세운 삼각형 모양으로 산 나무 중앙에 완충 역할을 하는 헝겊을 두껍게 둘러치고 끈으로 감아 묶어놓았다. 많게는 3년의 시간이 지난 채 빛이 바랬다. 새로 심은 나무가 반듯하게 뿌리를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만 앞섰지 버팀목의 존재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냈다. 매일 수십 번도 더 보는 정원이지만 왜 그런지 버팀목은 눈밖에 났다. 무관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각목으로 둘러친 버팀목은 굵은 철사로 묶여 산 나무가 혼자서도 버틸 수 있도록 묵묵히 지탱하고 있었다. 아, 사람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저자의 마음을 복효근 시인은 <버팀목에 대하여>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이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을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산 나무를 버텨주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은 나무로 만든 버팀목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에만 관심을 두었지 그 생명을 살도록 만든 죽은 나무는 관심밖이었다. 산 나무를 살릴 목적으로 사용된 버팀목이라는 수단과 방법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다. 필요할 때는 사용하고 용도가 끝나면 팽개쳐버리는 '토사구팽'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유가 되는가.


우리 인간에게 최고의 버팀목은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어버이(부모) 일 것이다. 평소에는 자녀도 버팀목으로서 어버이의 존재감을 제대로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와 영영 이별을 하고서야 두 분이 얼마나 대단한 버팀목이었던가를 깨닫게 되었다. 가끔 섬(島)에 혼자 버려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부모를 잃은 자녀가 '고애자(孤哀子)', 즉 어버이가 모두 돌아가셔서 외롭고 슬픈 자식이라고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시인의 말이 백번 맞다. 그러나 죽는다고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다. 죽은 나무가 산 나무를 살리는 버팀목이 되는 것처럼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절대' 혼자되는 법은 없다. 아니 혼자서는 '잘' 살 수 없다. 한자 사람 인(人)의 모양도 서로 등을 받쳐 주는 형상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버팀목이고, 누군가가 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니 살아갈 수 있다. 죽은 뒤에도 누군가의 버팀목이 된다고 생각하면 생과 사는 이별이나 분리가 아닌 셈이다. 죽지만 살아있는 존재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윤회(輪廻)란 이를 뜻함인가. 산 나무가 죽은 자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 죽은 자에게 빚을 진 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자명해진다. 산 나무를 바쳐준 버팀목이 오랫동안 말없이 묵묵히 버티면서 저자에게 던져준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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