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 중 시기적절(時期適切)과 시의적절(時宜適切)이란 말이 있다. 같은 듯 다른 말이다. '시기'적절은 글자 그대로 시기에 방점을 둔다. 시기적절했다고 말할 때는 어떤 일이나 조치가 적절한 '시간'에 수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대했던 시간에 맞춰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한다. 시기적절 앞에 '매우' 또는 '특히'와 같은 수식어를 사용하면 시기적절의 효과를 더 높이는 경우가 된다. 예를 들어, "그의 조언은 '매우' 시기적절했으며, 우리는 그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시기적절은 결국 타이밍과 관련된다.
'시의'적절은 상황이나 요구에 방점을 둔다. 시의적절하다고 말할 때는 어떤 일이나 조치가 주어진 '상황'이나 '요구'에 맞게 적절하게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 논문은 매우 시의적절하다"라고 평가받는다면 논문의 내용이나 성격이 교육적, 정책적, 맥락적 상황 등 현재의 상황이나 요구에 맞게 적절하게 기술되었다는 의미다. 종합하면, 시기적절이 시간의 적확성에 방점을 두면서 상황적인 요소를 고려한 표현이라면, 시의적절은 상황이나 요구를 우선적으로 강조하면서 시간적 측면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하고 있다. 매사에 시간과 시의가 적절하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올여름 시기적절과 시의적절의 단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할 수 있는 두 가지 경험을 했다. 한 가지는 마을 형들이 천 평 규모의 밭에 심었던 브로콜리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일화다. 브로콜리는 샐러드, 수프, 스튜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며 뛰어난 항산화 효능을 가진 채소로 평가받고 있다. 브로콜리는 가뭄을 이겨내고 잘 자랐다. 문제는 브로콜리를 수확한 뒤 판매하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지인을 통해 판매하는 데도 한계에 부딪쳤다. 다행히 인근 광역시 외식업체와 섭외가 되어 납품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다. 업체에 주문을 받아 상품 가치가 있는 브로콜리를 선별하여 포장하여 배달했다. 아뿔싸.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다수의 브로콜리에서 벌레가 나와 폐기처분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브로콜리를 재배, 수확, 마케팅을 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첫째, 형들은 브로콜리를 심고 키우는 과정에 필요한 관련 지식과 유의 사항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는 듯했다. 환경친화적인 재배를 하겠다는 의지는 높았지만, 농약을 하지 않은 대신에 병충해를 예방할 특별한 대안을 마련해두지 않았다. 농촌에서 작물을 직접 재배해 보면 이해할 수 있지만, 대규모로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에 따라 농약을 얼마나 자주, 얼마만큼 하느냐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농약으로 재배한 작물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저농약 작물은 있어도 무농약 작물은 없다. 물론 소규모로 작물을 재배한다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관리가 가능할 것이지만, 이런 경우는 가족 단위의 먹거리에나 해당할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브로콜리의 판로에 대한 사전 수요처를 정하지 못했다. 농촌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작물은 농협공판장을 통해 공급되지만, 중간 유통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는 농협이 제시하는 가격과 생산자가 기대하는 가격 차이가 크면 거래가 성립하지 않고 생산자는 별도로 판로를 뚫어야 한다. 농협은 농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농산물 중간 유통기관으로서 농협은 농민들의 기대를 반드시 반영하지 않는다.
결국 브로콜리 재배 과정에서의 병충해 예방과 출하 시기에 문제가 있었다. 형들은 처음으로 브로콜리를 재배하다 보니 작물의 특성과 출하에 따른 유통 네트워크 형성과 유의 사항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준비를 하지 않았다. 친환경을 강조하여 농약을 하지 않았지만, 농약 대신에 병충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안이 부재했다. 브로콜리 전문업자에게 문의해 보았더니, "출하 전후에는 삼사일 간격으로 농약을 해야 한다"라고 귀띔해 주었다. 또한 출하 시기를 결정하는 데 한 발 늦었다. 외식 업체가 밭을 둘러보러 왔을 때만 해도 브로콜리의 상품가치가 만족스러웠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병충해가 전염되어 폐기 처분해야 했다. 브로콜리의 특성과 출하에 따른 시기적절한 대안과 행동이 없어 인건비와 종자비도 건지지 못하고 갈아엎어야 했다. 시기와 시의가 적절하지 못한 결과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다.
또 다른 경험은 고구마 재배와 관련된 일화다. 형들과 함께 마을에서 1km 이상 떨어진 대로에 인접한 밭주인의 부탁으로 작물을 심었다. 주인은 밭에 작물을 심지 않고 놀리게 되면 잡초가 웃자라 땅인지 맹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는 것을 우려하여 작물을 심길 바랬다(요즘 농촌에는 노는 땅이 많다. 땅은 있는데 농사지을 사람이 태부족이다). 약간 경사가 진 밭의 토양은 황토 진흙으로 배수가 잘 되지 않았다. 이런 토양 환경에 적합한 작물을 고민하다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는 대표적인 구황식물로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다. 고구마는 가뭄을 이겨내고 뿌리를 내려 새순을 틔우며 잘 자라는 듯했다.
고구마순을 식재하고 달포가 지난 뒤였을 것이다. 주변의 고구마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대로변의 고구마밭을 가보았다. 고구마는 보이지 않고 성인 키보다 높이 자란 잡초만 보였다. '무질서한 세상이란 이런 모습이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구마를 찾기 위해 밀림을 형성한 잡초를 제치고 장화 신은 발을 내디뎠다. 고구마 덩굴은 잡초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어렵게 찾아낸 고구마 덩굴은 줄기가 가늘고 덩치도 작았다. 잡초의 위세에 눌려 기가 죽었고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잡초 제거를 제때 하지 못한 탓에 고구마가 들어서야 할 자리에 잡초가 주인인양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주객전도(主客顚倒)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밭이다 보니 평소 자주 상태를 살피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잡초를 제거하지 못한 탓이었다.
농사는 시기와 시의가 적절해야 하는 대표적인 직업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농사는 토양, 위치, 배수, 햇볕, 온도, 바람, 수분 등 자연적, 환경적, 지리적인 복합적 요인이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시기와 시의를 적절하게 맞춰야 하는 고난도의 종합예술이다. 시기와 시의에 맞춰 파종이나 식재를 해야 하지만, 이후에 돌보야 하는 절차와 과정은 훨씬 더 민감하다. 프랑스의 생물과학자 뷔퐁(1707~1788)은 '자연은 고정화된 독립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되는 드라마틱한 조합체다'라고 보았다. 한마디로 자연을 곧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動詞)로 규정했다. 쉬지 않고 변하는 것이 자연의 본질이다. '변화'를 본질로 하는 자연이란 무대에서 작물을 짓는 일은 그 변화를 존중하고 그 변화에 맞춰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인간이 자연의 변화무쌍에 적응하는 것은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농부들은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논밭을 한 바퀴 돌고와서 아침을 먹는다. 밤새 안녕은 사람에게만 적용하는 인사가 아니다.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라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닐 것이다. 농사에 스파트팜이 도입되고 드론이 하늘을 날며 농약을 하지만, 여전히 곡식은 농부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쌀미(米)'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팔(八)과 팔(八)을 합한 글자로 이루어졌다. 쌀 한 톨에 농부의 손이 여든여덟 번 가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브로콜리와 고구마 농사를 해충과 잡초에 빼앗긴 뒤에 가슴이 미어졌을 형들을 위로하며 시기적절과 시의적절의 교훈을 다시 새겨본다.
오경아. (2024). 조선일보. <일사일언 자연은 살아있으니 '動詞'>.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