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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ug 04. 2024

우리는 누군가의 꽃받침이다

인류 역사는 꽃받침의 역사

'꽃받침'이란 꽃의 구성 요소 중에서 가장 바깥쪽에 꽃잎을 받치고 있는 보호 기관의 하나이다. 꽃받침이 없다면 꽃잎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고 꽃을 피우지 못할 것이다. 박노해는 시인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말한다. "맨 처음 말하거나 최후에 말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꽃받침'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궁금하다. 임성구 시인의 <꽃받침>을 감상해 보자.


오로지 그댈 위해 이 한 몸 바치리다

온몸이 짓물러도 달 보는 마음으로

그대를 환하게 피우리다

어여쁜 나의,

금(錦)이여!


꽃받침은 꽃피울 대상을 위해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존재다. 꽃받침은 온몸이 짓물러도 목숨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조국이든 아니면 이루고자 하는 꿈이든... 꽃받침을 사람에게 비유하면 어떤 존재일까? 부모야말로 꽃받침의 전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자식들은 그 꽃받침을 딛고 꽃을 피운다. 부모라는 꽃받침을 딛고 핀 꽃, 즉 사람꽃(人花)이 가장 예쁘다고 하던가. “꽃이 곱다 해도 사람꽃만 하랴”는 말이 괜히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갓난아기의 눈에 눈을 맞추며 그의 티 없이 맑고 환한 웃음을 보라. 갓난아기의 얼굴은 꽃 자체다. 놀라운 사실은 그 사람꽃에게 특유의 향긋한 향기가 난다는 것이다. 저자도 갓난아기의 정수리 부분에서 나는 향기를 자주 맡았던 경험이 있다. 그 향기는 부모와 자식 간의 탄탄한 연결고리라는 느낌과 함께 특별한 유대감을 느꼈다. 일본 과학자들은 갓난아기 머리 냄새에서 31종의 구성성분을 밝혀냈는데, 15종은 어머니의 양수(羊水, 태아를 보호하며 출산할 때는 흘러나와 분만을 쉽게 한다) 향을 구성하는 물질이고, 나머지 16종은  아기 고유의 냄새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를 밝혀냈다. 연구팀은 "막 태어난 아기는 냄새를 통해 자신을 지켜달라는 신호를 보호자에게 보낼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성서 속에서 한 아기를 두고 다툰 두 엄마에 대한 솔로몬의 판결도 갓난아기의 향 냄새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친모 앞에서는 민망스럽다 할 것이다. 갓난아기에서 발산하는 냄새 신호는 개미가 발산하는 페르몬처럼 모성애와 부성애를 자극하는 강력한 향이다. 부모가 갓난아기를 보호하는 꽃받침이라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시(詩)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사유(思維)라는 두꺼운 얼음을 깬다. 시의 엄청난 파괴력이요, 위대성이다. 그 얼음 파편이 시어(詩語)라고 하면 파편을 모아놓은 것은 한 편의 시에 해당한다. 임성구 시인의 <꽃받침>만 해도 그렇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꽃은 꽃받침에 의지하고 있다. 꽃받침은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꽃이 자리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꽃받침이 없는 꽃은 없고 그런 꽃은 존재할 수도 없다.  시인은 꽃받침을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으로 재탄생시켰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꽃받침이다. 단지 그 대상을 누구라고 특정 짓지 앉을 뿐이다. 꽃받침이 될 대상이 있다는 것만큼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 아니 우주의 역사는 그 꽃받침의 헌신과 희생이 있기에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꽃받침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존재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신적, 사상적, 신앙적 꽃받침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예수는 기독교인의 꽃받침이고 부처는 불교인의 꽃받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꽃받침이다. 꽃받침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사람다움의 예시다. 꽃받침의 대상이 된 누군가는 그 꽃받침을 잊지 말자. 욕심을 부려본다. 저자가 꽃받침이 되는 누군가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길........



임성구. (2024). 고함쳐서 당신으로 태어나리. 서울: 천년의 시작.

최소라. (2019). YTN. [과학본색] ① 보호 욕구 자극하는 '아기 냄새'의 비밀.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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