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는 교감(交感)을 "서로 접촉하여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정의한다. 쌍방의 접촉이 선행되고 결과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의 움직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우리가 '교감을 나누다'라고 할 때 그 교감이 반드시 서로 간의 접촉을 필요로 할까 싶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접촉하지 않고서도 미루어 헤아리거나 짐작하며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본다. 주변에 특히 세상을 오래 살아본 사람들은 맨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뭣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원하지를 알고 대처하는 것을 본다. 눈만 봐도 안다고 하는 말이 괜히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교감능력을 조금 더 가지고 있나 보다. 필자는 초등 6학년부터 인근 도회지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청소년기 학창 시절에는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가서 부모님이 해주신 따뜻한 밥에 영양보충도 하고 농사일을 거드는 것이 하나의 생활패턴이 되었다. 그때는 교복을 입고 다녔는데 어머니가 숯불을 채운 무쇠다리미로 각을 세운 교복을 입고 쌀이며 반찬을 어깨에 메고 손으로 들고 차를 타면 교복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칼날 같은 주름은 무뎌지고 만다. 그것도 속상한데 운이 따라 좋아하는 여학생을 만나면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지만, 그 여학생에게 필자가 일주일 분량의 식량을 나른는 짐꾼으로 보일까봐 더 속상했다. 지금은 아득한 옛날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 같지만 필자를 성장시키고 내면을 담금질한 소중한 유산이다. 필자가 그 시절을 생각하며 이은상의 '가고파'를 즐겨 부르는 이유다.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눈곱 뜰새 없이 바쁜 농번기에 시골집을 가면 부모님은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필자는 가방을 던져놓고 계곡 아래에 만들어놓은 샘터에서 시원한 물을 주전자에 담아 설탕을 집어넣어 곧장 밭으로 향했다(70년대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쭈그리고 앉아 풀을 매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주전자물을 내놓는다. 해야 할 목표가 있는 어머니는 그 물을 마시자마자 일을 계속하신다. 종일 허리 펼세 없이 호미질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뒤에서 보면서 가슴이 울컥했다. 필자가 철이 비교적 일찍 든 것은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 할 일을 똑바로 잘해야겠다. 말썽 부리지 말고 부모님의 마음만은 편하게 해 드리자'라고 다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가 누님에게 한 말씀을 전해 들었다. "밭에서 풀을 매다 철현이가 가져온 설탕물을 먹고 허기를 넘겼고 무엇보다 어지럽던 머리가 가라앉았다." 필자가 왜 설탕물을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렸는지에 대한 생각은 잘 나지 않는다. 과학적인 원리나 이치를 따지기 전에 '어머니는 얼마나 더울까? 얼마나 목이 탈까?'를 생각하다 찬물을 생각했고 그 물에 단맛을 내면 더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이 돼 본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람은 오후 4시경이 되면 당이 떨어진다고 한다. 대체나 오후 4시경에 필자의 방문을 노크하면서 "혹시 초콜릿 있어요?"라고 묻는 선생님도 계셨다. 우연이지만 어머니는 늦은 오후 시간에 당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특히 더운 여름 땀으로 수분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필자에게 교감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 설탕물을 마시다 보면 그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교감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뭘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치 상대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자유롭게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교감을 잘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은 역지사지가 아닐까 싶다. 내가 상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면밀하게 따져보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솔 메이트(soul mate)라는 말이 있다. 서로가 똑같은 영혼을 가진 것처럼 생각이 잘 통하는 사람이다. 사자성어로는 교감지기(交感知己)라고 한다.
필자는 대학원 지도교수가 들려준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50대까지는 열심히 논문을 쓰고, 60대에는 책을 써라.' 돌이켜보면 필자는 비교적 지도교수의 말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60이 되어 인문학에 심취했고 지금까지 일곱 권의 책을 집필했다. 필자가 봐도 대견하다. 굳이 그럴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찾자면 교감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의 교감, 자연과 우주와의 교감, 그리고 나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교감. 그리고 그 교감능력을 북돋아주고 드높여준 분은 바로 나의 부모님이시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부모님과 무형의 교감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필자에게 교감작용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최고의 무형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