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콘서트는 계속 반복이었다. 같은 큐씨트로 장소만 변경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팀장님도 나를 사람 취급해 주었다. 하루는 일이 끝나고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팀장님이 “술 먹으러 갈래?” 라고 물어 보았다. 술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팀장님은 그냥 오지 말라며 혼자 술 마시러 가셨다. 다음날 선배들이 나한테 와서 말했다. “너 어제 팀장님이 술 마시자고 했는데 뭐라고 했어? 왜 안 왔어?” 나는 그건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술을 별로 안 좋아해서 안 갔다고 말하자 선배들이 이렇게 말했다. “정현아, 팀장님이 술 마시러 갈래? 라고 물어보는 건 너의 의사를 묻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가자는 거야.. 술을 못해도 일단 오긴 왔어야지” 나는 그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술 먹을래 라고 물어보는 게 그런 강요의 뜻이었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학교 졸업한 지 한 달도 안된 빠른 년생 열아홉 살. 당시 친구들과도 많이 안 마셔본 나이였고, 술과 사회 생활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던 나였기에 그렇게 당찬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게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술은 취향이고, 강요할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이라면 일단 따라갔을 것이다. 술자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첫걸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다음 번에 술 마실 때는 무조건 같이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선배들은 정말 착했고, 그런 선배들 말을 들어서 나쁠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해외 콘서트를 하는 건 몸이 익숙해지니 편한 일이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셔틀버스를 타고 콘서트장으로 가서 준비하고, 공연 시작하면 바짝 긴장했다가, 공연 끝나면 정리하고 호텔로 들어오면 됐고, 그 이후의 시간은 자유였다. 나와 선배들은 가끔 주변에 편의점을 가서 간식거리를 사와 먹기도 했다. 일본이 처음인 나는 선배들과 함께 다니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어색하지만 어떻게든 껴서 다녀야 했다. 왜냐하면 팀장님이 내가 혼자 다니는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적응을 좀 더 빨리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다.
하루는 일본에서 촬영이 있어서 팀장님만 스케줄을 하러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선배들은 놀러 나간다고 했고, 나는 선배들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눈치 보면서 끼기에 애매해서 혼자 호텔에 남아 있었다. 팀장님이 스케줄을 끝내고 오셨을 때 나는 마침 누워서 자고 있었다. 문 여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팀장님이 들어와 계셨다. 그때 얼른 일어나서 짐이라도 정리를 해 드렸어야 하는데, 사회 생활에 하나도 때묻지 않은 나는, 그저 팀장님이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에 잠깐 산책 다녀오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팀장님은 그 후로 내 욕을 엄청 했다. 개념 없다, 눈치 없다 등등. 팀장님 입장에선 그럴만했다. 자기는 힘들게 촬영 다녀왔는데 막내가 누워서 자고 있다가 자기 들어오니까 팔자 좋게 산책이나 나가고. 그래서 그 며칠은 또 불편하게 지냈다.
이제부터 팀장님과 있을 때 불편하다, 혹은 긴장했다 등의 부정적인 표현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4개월 동안 나는 한 번도 팀장님이 편하고 좋았던 적이 없었다. 그는 나에게 공포, 긴장,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최고로 두려운 사람. 나의 자존감의 바닥을 드러낸 사람이다. 그렇게 저렇게 별다른 탈 없이 2주간의 일본 출장이 끝이 났다. 팀장님과 한 선배는 추가 리얼리티 촬영이 있어서 일본에 남았고, 나와 한 선배는 한국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했다. 팀장님이 없는 일주일은 평화롭고 행복했다. 팀장님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선배들은 너라서 이정도 챙겨주는 거라고 말하곤 했다.
사실 우리는 매일같이 저녁에 팀장님한테 혼나는 게 일상이었다. 오히려 저녁에 안 혼나고 지나가면 이상할 정도였다. 그렇게 매일같이 혼나다 보니까 점점 지쳤다. 처음엔 혼나는 게 너무 두렵고 몸이 막 떨렸는데, 매일 비슷한 시간에 혼나다 보니 이제는 그냥 또 ‘한소리 듣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시간도 언젠가 지나가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버티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실장이 되어야지’ 라는 다짐으로 답을 하거나, ‘그래도 나는 강남으로 출근하는 남자야~’ 라는 허황된 말로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또 옷을 픽업하거나 반납할 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매일같이 바닥을 빌빌 기어 다니면서 팀장님한테 혼나는 나는, 이 옷보다 과연 가치가 있을까? 어쩌면 지금 사고가 나면 나보다도 이 옷을 먼저 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일을 하면서 칭찬은 한 번도 듣지 못했고 매일같이 야단만 맞으면서 내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다. 내가 지금 들고 있는 옷보다도 못한 인생, 그냥 지금 바로 사고나 나서 죽거나 아니면 한 달 동안 입원해서 쉬고 싶다. 매일같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죽은 듯이 살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