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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DoG Oct 29. 2020

첫 출근, 나는 사고를 쳤다

첫 출근 며칠 전에 머리를 노랗게 탈색했다. 이제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었고, 여기서는 평범한 것보다 특별한 게 오히려 더 좋아 보일 것 같아서였다. 모두에게 첫 출근은 떨렸을 것이기에 긴 말 하지 않겠다. 그냥 완전 떨렸다. 처음 며칠은 픽업해온 옷들을 이곳 저곳에 반납을 하러 다녔다. 다 다른 브랜드에서 픽업해온 옷들이었기에 양재, 목동, 노원, 마포, 성수, 홍대, 건대, 구로, 신사, 압구정 등 서울 곳곳을 혼자 돌아다니며 반납을 돌았다. 이게 스타일리스트의 일인가 싶어 가끔 회의감이 들었지만 맡은 짐을 혼자 돌아다니며 반납만 하면 되고, 또 짐이 무겁고 길이 어려운 것만 빼면 특별히 힘든 일도 아니었기에 할만한 일이었다. 


이틀 정도 후에 부장님이 나에게 여권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여권을 미리 준비를 해두었고, 중국도 가봤기 때문에 외국 나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며칠 후 나는 갑자기 정해진 비행기로 혼자 일본에 가게 되었다. 아이돌 M이 일본에서 콘서트를 하기 때문이었는데,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정해져 있던 스케줄이라 원래 나는 제외됐었는데, 갑자기 추가가 되었다. 팀장님과 선배들은 하루 전에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갔고, 나는 그 다음날에 추가적으로 챙길 옷들을 챙겨서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었다. 난생처음 갑자기 혼자 비행기를 타야 한다니 덜컥 겁이 났다. 팀장님이 없으니 다른 팀에서 나에게 이것저것 일을 시키는 것도 짜증 났다. 매일같이 늦게 퇴근해서 내 짐도 못 챙겼는데, 팀장님이 늦은 저녁 퇴근하려는 나에게 검은 양말을 사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길로 동대문에 가서 양말을 찾는데, 말하는 그 양말이 없었다. 대충 비슷한 걸로 두세 개 사진 찍어서 어떤 걸로 살지 여쭤봤지만 답이 없었다. 그 시각이 벌써 저녁 8시. 나는 양말을 사고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내 짐을 싸서 다시 사무실로 와서 사무실에서 자고 내일 새벽6시에 오는 차량에 짐을 싣고 공항으로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혼자 이 모든걸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에 겁이 나고 조급했던 나는 팀장님이 빨리 카톡 답장을 해주어 양말을 사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보낸 지 한 시간 만에 답장이 왔다. ‘이걸로 사’ 그 짧은 문장을 보내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묻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그렇지만 화가 나기보다도 눈물이 났다. ‘나 여기서 왜 이렇게 조급하지?’ 집에 돌아가서 겨우 짐만 챙겨서 바로 나오는데 눈물이 났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내내 펑펑 울었다. 한 주 동안 잠도 많이 못 자고 힘들었는데, 나 지금 너무 막중한 책임을 지고 내일 일본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 첫 해외 스케줄 전날에 그렇게 실컷 울었다. 그게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되는 때였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추가로 필요한 셔츠와 자켓 등을 챙겼다. 챙기면서 걱정되어 하나하나 다 사진 찍어서 이걸 챙겨야 하는지 팀장님께 물어보았다. 답을 잘 해주시다가 갑자기 답이 끊겼다. 확인은 하셨는데 답장이 없길래 안 챙겨도 되는 걸로 생각하고 새벽 1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새벽 6시에 번쩍 떠진 눈이 내가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잤는지 알려주었다. 벤에 짐을 싣고 공항으로 가면서 눈을 잠시 붙였다. 어디까지 왔나 확인을 하고, 카톡도 확인을 했는데...!! 아뿔싸... 그 자켓... 어젯밤에 안 챙겨도 되는 줄 알았던 그 자켓... 팀장님의 카톡은 이렇게 써져 있었다. ‘정현아 저거 다 챙긴 거 맞지? 챙겨야 됨’ 나는 그 순간 너무 당황해서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다. ‘내가 실수 했구나, 카톡을 아침에 바로 볼걸, 자지 말고 좀 더 일찍 볼 걸…’하는 생각에 다 내가 잘못한 것 같았다. 그때 나는 300mb의 작은 데이터를 사용했어서 잠잘 때나 핸드폰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데이터를 끄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데이터를 끄고 잔 다음날에 알림이 떠있지 않았던 것이다. ‘다 내 잘못이야... 하지만 억울해 내가 그때 보낸 카톡에 답만 바로 해줬어도 다 챙기는 거였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기사님께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인천공항에 거의 다 온 고속도로 위에는 유턴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거의 새하얗게 질린 채로 인천공항에 내려진 나는 생각의 회로가 멈춰있었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자켓을 가지고 비행기에 탈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은 못 했다. 아마 당황하지 않았더라면 퀵을 부르거나 다시 택시를 타서 가기라도 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죄를 어떻게 처벌받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 했다. 


일단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 이순간 모든 짐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가장 가능성 있고, 쉬우며, 이후 스타일리스트 일을 못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타격도 없는, 일말의 죄책감만 조금 가지면 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일을 1년 이상 오래 하기로 생각했던 나에게 일주일 만에 그만둔다는 건 나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행위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죽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지금 죽는다면 가족들이 날 바로 찾을 수 있겠고, 일본에 내려서 죽으면 그래도 다른 나라 땅 한번 밟아보고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죽어도 다른 나라 가보고 죽자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는 것은 한마디로 도살장에 끌려들어 가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로 오들오들 떨면서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어차피 콘서트 오프닝 자켓을 안 챙겨온 나는 팀장님에게 죽은 목숨이었다. 내가 일주일 동안 겪어본 바로는 팀장님은 사이코패스이고, 내가 이때껏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팀장님과 같은 방을 쓰는 나는 아마도 오늘 밤에 팀장님 벨트에 맞아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카톡에 ‘안 챙겼습니다 ㅜㅜ 죄송합니다’ 라는 글을 남겼다. 겁먹고 당황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답안이었다. 선배들이 마구마구 개인 톡을 보냈지만 나는 죄송하다는 말 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모든 게 다 원망스러웠다. 어제 하루 종일 일을 시킨 다른 팀 팀장님부터, 카톡을 안 읽은 팀장님, 그리고 아침에 핸드폰 데이터를 늦게 켠 나까지 주체할 수 없이 원망스러웠다. 모든걸 포기한 나는,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잤다. 어차피 비행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카톡 답장을 해줄 수도, 짐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일본에 내리면 죽으려고 했던 나이기에, 피곤했던 눈을 감았다. 


공항에 도착해서 나와보니 S 실장님이 나를 맞이해주셨다.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오늘 실장님도 오신다고 하셨지. 나와 다른 비행기로 오셨지만 공항에서 만나서 같이 공연장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실장님을 보니 너무 죄송했다. 나는 지금 오프님 자켓을 빼먹고 온 한낱 나부랭이인데, 이걸 빨리 말씀드리고 혼나는 게, 그냥 '죽여 주세요' 라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눈치를 보며 입술만 잘근거렸다. 하지만 실장님은 소속사 직원분과 밝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느라 내가 대화에 낄 틈이 없었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이 꽤나 길어서 나는 그동안 고개를 숙이고 눈치만 보았다. 공연장에 도착한 우리는 의상실로 들어갔다. 결국 바라지 않던 팀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팀장님은 생각보다 화가 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내가 인사를 했음에도 정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선배들은 팀장님 눈치를 보며 옷을 정리했고, 실장님이 나서서 내가 해야 될 일을 알려 주셨다. 나는 팀장님이 없는 틈을 타 실장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아마 거의 울먹이면서 말을 했던 것 같다. 제가 자켓을 두고 온 것 같다고, 제가 그러려고 한건 아닌데 일이 꼬여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실장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일단 수습했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콘서트 하기 몇 시간 전에 과장님이 자켓 두 개를 들고 일본으로 오셨다. 그렇게 나의 첫 해외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옷을 갈아입히는 건 정신만 바짝 차리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끔 팀장님이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얼른 다음 옷 준비하라고 한 것만 빼면 말이다. 


첫날 숙소로 돌아와서 팀장님과 같은 방에 짐을 두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한 선배가 나한테 속삭였다. “정현아 무조건 죄송하다고 말해” 그리고 다른 선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혹시 위험한 상황이면 우리한테 카톡하고... 알겠지?” 나는 돌아와서 팀장님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팀장님 죄송하..” “말하지 마 듣기 싫으니까” 팀장님은 그렇게 한동안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맞아 죽을 줄로만 알던 나는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그날도 피곤함과 긴장에 절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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