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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DoG Oct 29. 2020

나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 잘할 줄 알았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말이 나오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이렇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현이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얼마가 걸릴지는 생각을 해 봐야겠지만. 이렇게 쓰고 나니 빼먹은 게 생각이 난다. 나는 미용 / 헤어 디자인도 하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내가 정작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고3이었다. 그해 초에 나를 잘 챙겨 주시던 수학 선생님이 어느 미용실 원장님을 소개해 주셨다. 내가 수학과 담을 쌓은 사람이지만 수학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도 희망을 놓지 않고 계속 당근을 주며 수학의 끈을 놓지 않게끔 잡아주신 분이셨다.  선생님은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가 수학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계셨고, 관심 있는 분야에서는 정말 열심히 한다는 것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미용에 관심이 있는 걸 알고, 선생님의 단골 미용실 원장님을 소개 시켜주신 것이다.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기르던 도중이라 덥수룩한 상태에서 미용실에 방문했다. 원장님은 참 좋은 분이셨고, 미용실에서 스텝으로 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다. 그게 내 첫 사회생활일지도 모르겠다. 그전까지 나는 학교와 집 외에 어딜 가본 적이 많이 없었고, 학교 밖의 사람들과는 대화를 많이 안 해본 그저 온실 속의 화초였다. 


그렇게 나는 수업이 끝나고 며칠 동안 샴푸를 배웠다. 항상 미용실에 가면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 누군가가 머리를 시원하게 감겨줄 때였는데, 정말 매일같이 이렇게 누군가가 머리를 감겨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샴푸는 어려웠다. 생각보다 힘 조절이 안 되고, 자꾸 머리를 쥐어뜯거나 아니면 손이 엇나갔다. 그렇게 몇 주 정도 연습을 한 후에 이제는 주말에 몇 시간씩 나와서 샴푸, 커트 보조, 파마보조, 염색보조와 그 외 스텝 일들을 도맡아 했다. 누가 보면 굉장히 궂은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달랐다. 나는 항상 미용실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 했고, 원장님과 처음 만났을 때도, “머리카락을 쓸어도 좋으니 여기서 배우게 해 주세요” 라고 말할 정도로 열정에 차 있었다. 그렇게 나는 머리카락을 쓸었다. 커트가 끝나면 샴푸도 해드리고, 파마가 끝나면 도구를 정리하고, 염색이 끝나면 도구를 세척했다. 주말 동안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유니폼도 입은 어엿한 스텝이 되어 있었다. 물론 일은 많이 서툴렀지만 미용실에서 일을 한다는 것에 설레던 때였다. 학기 말이 되면서 스케줄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게 될 때까지 미용실에서 일을 했다. 그때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미용실 일을 직접 해보고 나니 나는 자신감이 붙었다. 무조건 해봐야 아는 거구나 싶으면서 동시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기운이 솟았다. 나는 마지막 여름방학을 정말 무료하게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할지 정하지도 않았고, 미용실 일을 계속 할까 싶기도 했지만 좀 더 다른 일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날도 하염없이 핸드폰을 쥐고 누워서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유튜브에 스타일리스트 S 인터뷰 영상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재미있어 보여서 클릭한 게 내 진로를 결정했다. 2분 정도의 짧은 인터뷰는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나는 무료함에서 벗어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스타일리스트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정말 미쳤었다. 아마 고3이라는 그 나이와, 그동안 남아돌던 에너지가 합쳐서 엄청난 추진력을 얻은 것 같다. S 스타일리스트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꼭 그분의 아래로 들어가서 일을 배우고 함께 성장하고 싶었다. 겨우겨우 S의 인스타그램을 발견한 나는 그때 하지도 않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 S 스타일리스트에게 DM을 보냈다. 차마 공개하지는 못하겠지만 대략 ‘저를 뽑아주시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와 같은 내용이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기소개와 나를 어필하는 글로 빼곡히 DM을 보내고 내가 작업했던 옷 사진도 꼼꼼히 넣어 보냈다. 그 후 답장을 기다렸지만 답은 없었다. 답장이 있거나 없거나 별 타격은 없었다. 나는 계속 스타일리스트가 되는 방법을 알아보았고, 학원이라는 경로를 통해 스타일리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스타일리스트 학원에 상담을 진행하고, 결정하는데 까지 일주일도 안 걸렸다. 속전속결로 나는 여름방학 때부터 학원에 다니며 부푼 꿈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다닌 학원은 S 스타일리스트와 친목이 있는 선생님이 계시는 곳이었다. S 팀에 취업을 시켜준다는 말에 선뜻 학원을 결정했다. 그동안 고이고이 모아놓은 돈을 깔끔하게 학원비로 충당하며 의지를 다졌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스타일리스트를 그만두지 않을 거야. 나는 실장이 돼서 내 팀을 차리는 게 목표야’ 물론 이때는 잘 몰랐다. 실제로 해본다는 게, 몸소 경험 한다는 게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는지를. 가끔 의지만으로 다 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날들이 펼쳐졌다. 스타일리스트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머리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인터뷰에서도 언급되었고, 학원에서 처음 수업을 받은 날에도 이 일은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힘든 이유로는 박봉, 출퇴근 시간 불확실, 수면부족, 연예인 갑질, 팀 내 괴롭힘, 육체적 피로 등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일을 그만두는 이유가 되었다. 


처음 스타일리스트 학원 수업을 들을 때 월급에 대해서 알려 주셨다. 팀마다 상이하지만 경력 없는 신입의 경우 첫 달 50만원부터 시작하고, 추후에 일하는 것에 따라 임금이 달라질 수 있다고 얘기하셨다. 나는 당시 학교를 다니며 부모님이 재워주고 먹여주셨기 때문에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는 게 가장 행복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때는 아직 돈을 벌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욱이 일을 하며 얻는 댓가에 대한 개념이 잡혀있지 않았다. 오히려 50만원이면 내 한달 용돈의 다섯 배네? 하며 그러면 옷도 살 수 있겠다는 희망에 가득 찬 생각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한 달 동안 교통비, 택시비, 밥값을 내고 보니, 월급보다도 많이 써서 허탈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저 일에 필요한 것만 지출했는데도 50만원이 훌쩍 넘는걸 보며 생각했다. 이 일로 돈을 번다는 건 포기해야겠다. 학원 선생님은 수면 부족에 대해서 굉장히 강조하셨다. 밥도 제때 못 먹는 경우가 많고, 잠도 잘 못 자는 경우가 많다고, 특히 아이돌 스타일리스트는 더 그렇다고, 그래서 아마 제일 힘들 거라고. 


긍정적이었던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또다시 쓸데없는 다짐을 했다. ‘나는 밤에도 잠을 잘 못 자니까 어차피 별로 안 피곤할 것 같아. 그리고 밥은 먹을 때 많이 먹으면 되고, 한 끼 거르는 정도야 일하다 보면 당연한 거 아닐까? 나만 열심히 하면 돼’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나는 일을 시작하고 한 달 후에 생각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잠을 못 자서 아침에 지하철 열차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자고, 에스컬레이터 손잡이에 머리 박고 자고, 벽에 기대면 눈을 감고, 차에 타면 숙면을 취했다. 밥을 제때 못 먹어서 살이 많이 빠졌고, 외투 주머니에 편의점에서 산 젤리와 과자부스러기가 기본이었고, 걸어 다니면서 입에 풀칠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만에 생각을 바로잡았다. ‘나는 밤에 잠을 잘 못 자지만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었고, 밥은 하루에 네 끼까지 챙겨 먹는 사람이야’ 그렇게 일을 계속 해 나갔고, 나 자신을 계속해서 궁지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러나 앞의 이야기는 사실 지금부터 할 이야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문제였다. S 팀에 들어가고 싶어서 준비를 하던 나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이때까지는 그게 ‘좋은’ 소식인줄만 알았다. S 팀에 남자 팀장이 한 명 있는데 아이돌을 담당하고 있고, 남자 팀원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학원 선생님은 그 팀장을 아는데, 진짜 또라이라고 했다. 물론 이 바닥에 기세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 팀장은 정말 자기가 봐도 또라이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들어가면 진짜 일 잘해야 한다고, 아마 많이 힘들 거라며 측은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반해 나는 아주 반짝이는 눈으로 그 팀과 스타일리스트 일에 더욱 애정을 보이며 열심히 배워나갔다. 어차피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들은 있으니까, 그리고 정말 또라이 같은 사람 밑에서 일을 잘한다면 나는 어딜 가나 더욱 인정받고 일을 잘 해낼 거니까. 겁내지 말자 이정현, 일은 끝까지 하는 거야. 나는 이때 내가 가장 후회스럽다. 좀 더 나를 아낄걸, 내가 나를 좀 더 사랑해 줄걸, 자꾸 나를 벼랑으로 내몰지 말걸... 그때는 그게 좋을 줄만 알았다. 내가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학원 수업도 점차 마무리 지어져 갔다. 그렇게 졸업식을 하고 나서 나는 S 팀에 면접을 보러 갔고, 그때부터 고3이 아닌 열아홉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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