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DoG Oct 29. 2020

패션디자이너가 되었다

짤린 당일 날 나는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나보다도 그 사건에 대해 분노했고, 사무실에 똥을 싸고 오자는 우스겟 소리부터 노동청에 신고하자는 다소 진지한 얘기까지 나왔다. 취업을 해본 나로서는 둘 다 소용없고, 나만 지치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듣고 넘겼지만, 마음만은 친구들과 같았다. 그렇게 취업에 대한 열정을 잃고, 친구들과 노는 게 한참 좋아질 무렵, 나는 언제 지원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Q라는 브랜드에서 면접제의를 받았다. 이제까지 내가 봤던 면접 중에 가장 절실하게 들어가고 싶은 브랜드였고, 꼼꼼하게 내 이력서를 조회했다는 느낌을 받고는 기대에 가득 차서 면접을 보러 갔다. 


때는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하는 6월 중순이었는데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방에 들어가자 땀이 마구 흘렀다. 하지만 행거에 걸려있는 Q브랜드 옷들이, 이곳이 정말 의류 디자인 회사임을 확신하게 했고, 여기서 일을 하면 굉장히 즐거울 것 같다는 김칫국을 마시게 했다. 면접을 보시는 분은 디자이너라고 소개를 했는데, 여리여리하고 어딘가 지쳐 보이지만 면접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우선 내 이력서를 토대로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학원에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Q는 어떤 브랜드라고 생각 하는지? 대학을 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나 최근에 사고 싶은 브랜드는 무엇인지. 그리고 작업지시서에 대한 질문도 하셨는데 나는 그런 질문들에 꽤나 괜찮은 답변을 했다. 나중에 친해지고 들은 얘기지만, 그때 어떤 브랜드의 옷을 사고 싶은지에 대해 물어봤을 때 ‘Z브랜드’ 라고 대답을 하고, 이유에 대해 “요새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데, 그 옷이 왜 유명한지 궁금해서 직접 입어보고 싶다” 고 대답한 게 내가 뽑힌 이유라고 했다. 그동안의 면접 경험이 쌓여서 그랬는지, 이번 면접자분이 특히 긍정적인 질문들을 많이 주셔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면접을 보고 나오는데 왠지 붙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2차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2차 면접은 이사님과 진행되었는데, 생각보다 젊은 이사님이 들어오셔서 면접을 진행했고, 그분은 내가 대안학교 출신이라는 점에서 궁금한 점이 많으셨다. 두 번째 면접은 사실 그간의 확신이 희미해질 정도로 아리송하게 끝났지만 며칠 후에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는 뛸 듯이 기뻤다. 


주 5일 출근, 10시부터 7시까지가 근무 시간이었고, 식비는 개인지출이었다. 월급으로는 최저시급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을 받았다. 수습 기간 삼 개월이 지나고 나서 급여 협상을 하기 했고, 이번 회사는 저번과 다르게 계약서를 쓰면서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근로계약서에 조항이 너무 많고, 어려운 용어가 가득해서 읽는 데 한참이 걸렸지만 결국 사인과 도장까지 찍으면서 나는 정말 회사원이 된 것 같았다. 첫날에는 디자이너 대리님이 회사 사람들 인사를 시켜주셨다. 그 작은 사무실에는 서로 다른 브랜드가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내가 일하는 Q브랜드와 다른 브랜드가 있었다. Q브랜드 직원은 총 5명으로 나, 디자이너(대리님/사수), 실장님, MD, 그리고 이사님이 전부였다. 나는 Q 정도 규모의 브랜드라면 당연히 직원이 10명 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4명으로 운영을 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중 대리님만 여자분이셨고 다들 남자분이셨다. 첫날 나는 내 자리를 안내받았고, 내 책상과 컴퓨터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써본 모니터 중에 가장 큰 모니터가 책상 앞에 떡하니 놓여 있었는데, 내가 쓰는 15인치 노트북의 6배가 넘는 큰 화면이었다. 


내가 들어온 시점이 가을, 겨울옷을 준비하느라 쉴 틈 없이 바쁠 시기였는데, 일의 강도는 그동안의 걱정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쉬운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주로 샘플로 들어온 제품 QC를 재거나, 작업지시서 도식을 수정하는 일을 했다. 우리 회사는 제작 프로모션 업체를 끼고 일을 했는데,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디자인이 결정되어 있는 상태였고, 샘플 지시서를 업체에 넘겨서 샘플을 받아보는 중이었다. 업체와 소통하는 방법과, 업체 미팅, 그리고 도식화 수정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대리님은 허리 디스크가 있으셔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재택근무를 하셨다. 그래서 대리님이 안 계시는 사무실에서는 내가 대부분의 상황 정리를 해야 했다. 나는 처음에 그게 너무 부담스럽고, 내가 혼자 업체 미팅을 하거나, 작업지시서 문의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입사한지 2주 만에 대리님이 일주일 정도 병가를 내시면서 어깨가 굉장히 무거워졌다. 대리님이 알려준 대로 일들을 처리하고, 밀린 도식화를 수정하고, 옛날 도식화 파일들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업체 미팅도 덜덜 떨면서 처음으로 혼자 해보게 되었다. 


사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위의 설명이 끝이다. 물류창고가 바쁠 때는 회사 남직원들은 모두 남양주에 가서 물류 일을 도왔다는 것 빼고는 특별히 힘들거나 어려운 일도 없었다. 그러나 물류 일은 정말 힘들었다. 처음 창고에서 일을 해보고 나서 나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한 번만 더 창고 데려오면 사표를 확 써버릴까 싶었을 정도였다. 온라인에서 프로모션 행사를 할 때마다 물류 창고는 엄청나게 바빠졌다. 우리 브랜드가 세일할 때만 잘 팔린다는 뜻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어쨌든, 세일할 때는 정말 날개 달린 듯이 팔렸다. 이사님과 MD님 그리고 실장님은 주문서를 보고 물건을 챙겨 오셨고, 나는 주문서를 확인하면서 박스나 포장 비닐에 포장했다. 아침 10시쯤 창고에 도착해서 그날 해야 할 일을 보고 우선 한번 놀란 후에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머리를 쓸 필요는 없다. 공장에 온 것처럼 손과 발만 재빠르고 반복적으로 움직이면 된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일은 계속된다. 네 다섯시쯤 되면 이제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같은 자세로 계속 서 있으니 잠깐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모두가 쉴 때도 가장 마지막까지 일을 하다가 쉬고, 모두가 안 볼 때 잠깐 주저앉아 쉬는 게 세상 모든 막내 직원의 자세가 아닐까. 


평소 퇴근은 7시지만 여기서는 이사님이 힘들어져야 퇴근이다. 주로 8~9시쯤 되어야 퇴근을 하게 되고, 남양주에서 출발하다 보니 집에 도착하면 10시가 훌쩍 넘는다. 보통 물류 작업은 하루로 끝나는 일이 없어서 당연히 그 다음날도 창고로 출근한다. 원래 운동도 하고 난 다음날이 가장 아프듯이 물류도 다음날엔 시작하자마자 죽을 맛이다. 패션 회사라서 나름 신경 써서 입다가도, 창고 가는 날에는 무조건 편한 바지와 버릴 옷을 입고 캡 모자를 눌러쓴다. 하루 종일 일만 하겠다는 다짐이 들어간 착장이다. 버릴 옷을 입는 이유는 또 있다. 창고에서 하는 일중에 들어오는 짐들을 팔레트 위에 쌓아야 하는데 그러면서 옷을 많이 버리기도 하고, 여름이든 겨울이든 땀이 나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으면 창고 불량 정리를 하거나 제품 재포장을 하기도 하는데, 이건 정말 일이 끝이 없다. 창고를 가기 싫었던 이유는 이 정도로 충분한 것 같다.


하지만 창고는 한 달에 한두 번 갔었기 때문에 그 며칠만 버티면 일은 할만했다. 아니, 할만한 정도가 아니라 생각보다 일이 없어서 놀라는 날도 있었다. 대리님이 시킨 일을 다하고 나서 우선 눈치를 보는데, 혹시 시키지 않았어도 해야 할 일이 있는가, 혹은 내가 저번에 시간 남으면 하겠다고 해놓고 아직 못한 일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시키신 일 다 했다고 대리님께 말씀을 드려도 가끔은 나에게 일을 주시는 걸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유연해지기로 했다. 일이 없으면 자료 조사를 하거나, 다음 시즌 디자인을 미리 구상해 놓기도 했고, 가끔은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가 사고 싶은 옷을 구경하기도 했다. 물론 굉장히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허리 디스크를 얻으신 대리님은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오래 앉아 있는 건 허리 디스크에 좋지 않아서 일하다가 시간이 나면 카페에 가서 음료 한 잔씩 마시는 일이 종종 있었다. 처음에는 막내가 이렇게 일을 안 해도 되나 싶어서 눈치를 봤지만, 어느새 익숙해져서 나중엔 ‘언제 카페가지?’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대리님은 카페든, 식사든, 둘만 가는 곳에서는 내 것까지 모두 계산하셨다. 너무 얻어먹기만 하는 것 같으면 가끔 내가 사기도 했는데, 내가 사는 걸 부담스러워하셨기에 그것조차 자주 하지는 못했다. 나는 대리님과 매우 빠르게 친해졌다. 둘 다 카페를 좋아했고, 잔잔하게 대화 코드가 잘 맞아서 일할 때도 가끔 수다를 떨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일 한 지 며칠 안되었을 때 대리님이 나에게 “너는 자존감이 높은 편이야?” 라고 물어보셨다. 일하다가 카페에 와서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혹시 나랑 있는 게 어색해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건가 싶어서 당황했지만, 나도 관심 있는 주제라 아주 장황하게 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자존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그걸 계기로 여러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여름날에 또다시 나를 당황하게 한 질문이 있었다. “남자친구가 시간을 좀 갖자고 했는데, 연락이 안 와... 이거 헤어진 걸까?” 나는 사실 연애 초짜다. 연애는 살면서 딱 한 번 해보았는데, 그마저도 중학생 때였으니 더 이상의 구질구질한 설명은 생략한다. 연인 간에 달달한 사랑이나 헤어진 후 남녀의 심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나는 “아마도 헤어지자는 말 아닐까요?” 라고 대답했다. 대리님은 헤어지게 된 상황들을 설명했고, 역시 사랑은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대리님은 가끔 나에게 연애 상담을 했다. 거창한 말로 상담이지 실제로는 푸념 정도로 마무리되었는데 왜냐하면 나는 상담을 해줄 만한 경험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 22화 흔한 취준생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