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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DoG Oct 29. 2020

내 디자인이 팔렸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정말 행복했다. 다니고 싶었던 회사에,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디자이너 일을 한다는 사실이 그저 꿈만 같았다. 혹시나 짤릴까 봐 두렵기도 해서 항상 하루하루를 즐기며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커다란 행운이 나에게 온 것 같아서 막연하게 올 불행이 두려울 정도였다. 첫 출근을 하고, 그 주 금요일에는 퇴근 후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원하던 곳에 디자이너로 취업을 했다는 사실이 기뻤고, 퇴근 후 친구들과 술집에서 부담 없이 얘기를 나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마치 직장인이 되어 재대로 된 불금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게다가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나는 대부분 막힘없이 해냈고, 대리님은 내가 손이 빠르다며 작은 일을 하더라도 칭찬을 하거나 잘했다며 내 실력에 놀라움을 전하기도 했다. 특히 걱정했던 일러스트 도식화 따는 것은, 의외로 칭찬을 줄곧 받았고, 이미지 서칭이나 자료 정리도 속도가 빨라 만족스러워하셨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참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스타일리스트 일과 3일 만에 짤린 디자이너 일을 겪어보고 나니 이런 칭찬들이 내겐 ‘특급 칭찬’ 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일단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적기도 했고, 대리님을 제외하고는 다들 나와 취미가 같지는 않았지만, 나쁜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어차피 대부분의 일은 대리님과 하기 때문에 대리님과의 관계만 잘 유지하면 됐고, 그건 아주 쉬운 일이었기에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었다. 물론 이사님이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아무도 모른다는 직원들의 말을 듣고 나서는 달라졌지만 말이다. 


의뢰한 샘플이 하나 둘 사무실로 들어올 때쯤 우리는 Q브랜드 여성 라인 디자인을 시작했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대리님이 찾아둔 방향성과 시안을 토대로 디자인을 했고, 놀랍게도 내가 디자인한 옷 두벌이 샘플링에 들어가게 되었다. 디자인 회의는 전 직원(이라고 해봤자 다섯 명이지만)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디자인팀이 출력해온 도식 디자인과 컬러를 보고, 디자이너가 설명을 해주면 잘 팔릴 것 같은 디자인과, 괜찮을 것 같은 디자인을 골랐다. 내 디자인 작업지시서를 내가 쓴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첫 작업 지시서 작성이라 대리님께 물어 물어 했지만, 디테일이 많지 않고 쉬운 도식이라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샘플과 제작이었다. 딱 붙는 크롭 탑은 소재 선정부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적당히 잘 늘어나야 하고, 가을 제품이니 두께감도 있어야 했다. 다행히 작년에 진행한 원단이 있어서 샘플로 제시한 후 같은 퀄리티의 원단을 사용했다. 샘플이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팔 통이 넓거나 목둘레가 너무 좁아서 머리가 도저히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몇 가지 디테일은 공장의 한계로 삭제하게 되면서, 옷 한 벌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남자 옷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1차 샘플을 볼 때는 정말 말문이 막힐만한 옷들이 대거 배달되었다. 샘플을 볼 때는 원부자재를 시장 구입해서 우선 쓰고, 나중에 메인 생산 들어갈 때서야 제대로 된 원단을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정말 웃긴 샘플들이 많이 왔다. 한 바람막이 잠바는 도식으로 볼 때는 굉장히 유니크한 패치워크가 인상적이었는데, 샘플은 동묘 길거리에서 누가 10년 입던 옷을 주워온 것 같았다. 또 다른 양털 아우터는 입었더니 팔이 너무 두꺼워서 팔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그 외에도 트렌드 아이템인 타이다이(물 나염)를 볼 때는 매번 무늬가 달라져 와서 매번 컨펌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한 번에 잘 나온 아이템도 있어서 한큐에 제작까지 들어간 제품도 있었다.


샘플링이 끝나자 이젠 생산에 돌입했는데, 우린 가을이 시작되는 9월쯤에 첫 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제품의 생산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에 3차에 나눠 제품을 발매했고, 한발 늦은 발매 때문인지 판매는 고만고만하게 이루어졌다. 완샘플이 사무실에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할 때 우리는 룩북 촬영을 준비했다. 남자 룩북은 외주를 줬기 때문에 따로 찍을 필요가 없었는데 여자 룩북은 따로 찍었어야 했다. 대리님이 거의 다 기획하시고, 나는 그냥 현장에서 열일했다. 옷을 행거에 걸고, 스팀 다리미로 열심히 다리고 착별로 정리해 걸어두었는데, 대리님이 벌써 다 했냐며 놀라워했고 스타일리스트 경력이 이렇게 발휘된다는 점에서 조금 뿌듯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어느새 하나로 뭉쳐가고 있을 때, 내 과거에 대한 후회가 없는 것 같다. 촬영은 항상 그렇지만 정신없고 힘들었다. 전문 모델이 와서 촬영을 진행하자 눈빛부터 다른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촬영이 끝난 후에는 사진 이미지 작업의 시작이었다.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상세페이지에 들어갈 문구를 작성하고, 사진을 크기에 맞게 정렬하면서 매일같이 포토샵을 만졌다. 상세페이지 작업은 온전히 나에게 맡겨졌고, 다행히 그 일은 쉬웠지만 정말 어려웠던 건 홈페이지 배너 제작이었다. 직원이 적다 보니 나는 어느새 웹디자이너 일을 겸하게 되었는데, 보통 홈페이지에 배너 이미지를 바꾸거나, 세일 행사가 있을 때 팝업 배너 디자인을 했다. 사실 별거 아니긴 했다. 이미 보정된 사진을 자르고 글자를 넣으면 되는 작업이었지만, 처음부터 내가 구상하고 내가 디자인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나의 배너를 만들기 위해 최소 3가지 다른 버전을 만들어 이사님께 컨펌을 받았는데, 결국 대리님이 나서서 내 일을 도와주어야만 봐줄 만한 이미지가 완성되었다. 글자를 넣어도 어딘가 이상하다면 글자 배치와, 폰트 그리고 자간/행간을 조절하거나 글자 크기에서 통일성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대리님의 원 포인트 레슨이었다. 그러나 여러 번 가르쳐 주셔도 가장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칼퇴다. 대리님은 항상 칼같이 7시가 되면 퇴근을 하시면서 나도 퇴근시켜주셨다. 그래서 다니는 동안 거의 매일 칼퇴 할 수 있었고, 덕분에 퇴근 후의 일과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나는 퇴근 후에 주로 집에 와서 밥을 먹고 핸드폰을 보다가 잠을 잤는데, 회사에 점차 적응해 갈 때쯤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오케스트라 참여하기를 실행해 보기로 했다. 매주 금요일에 예술의전당 근처 연습실에서 하는 오케스트라가 있어서 들어갔는데, 직장인과 주부가 대부분이어서 내가 적응하기엔 힘들었다. 결국 한 달 정도 다닌 후에 그만하기로 결심했고, 중국어를 배워보겠다며 중국어 학원을 등록했다. 일요일 오전에 강남에서 수업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암울하고 다운된 분위기의 수업에 내가 다 지칠 정도였다. 게다가 두 번째 달에는 내가 신청한 반이 폐강되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배움이 끝났다. 그 뒤로는 대리님의 조언대로 운동을 해보겠다며 수영을 배웠지만 그마저도 귀찮다는 핑계로 한 달에 2~3번 나가다가 환불받는 수순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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