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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DoG Oct 29. 2020

하루만에 다니던 회사에서 잘렸다

분명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해 바빴어야 했던 11월 말, 이상하게도 너무 여유로운 스케줄 때문에 마음만 조급해져서 자꾸만 초조해져갔다. 그리고 11월의 마지막 평일 금요일에 내 초조함을 끝내줄 사건이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정시 5분 전에 출근을 했다. 하필이면 그날 이사님과 창고를 가기로 한 날이라 창고 룩으로 후줄근하게 출근을 했는데, 아무리 눈치를 봐도 이사님이 창고로 갈 생각이 없어 보이셨다. 대리님과 방에서 얘기를 나누고 계시길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는데, 이사님이 나오시더니 창고는 나중에 가자면서 일하라고 하셨다. 그리곤 대리님과 이사 갈 사무실을 보러 가셨는데, 나는 나만 이사 갈 사무실을 한 번도 못 가본 게 못내 아쉬웠다. 


창고를 가지 않아서 속으로 너무 기뻤지만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속으로 점심 메뉴를 고민했고, 손이 건조해 핸드크림을 찾다가 저번에 다 쓴 걸 기억해내곤, 메모장에 ‘사무실용 핸드크림 사기’ 라고 적었다. 그만큼 평범한 날이었다. 점심시간을 삼십분 남기고 이사님이 들어오셔서 나를 부르셨다. 이사님은 내가 막내이지만 가끔 나를 따로 부르셔서 현재 진행 상황이나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물으시곤 했기에 그날도 편하게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고 통지를 받았다. 정확히는 권고사직이다. 이사님은 직설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결론부터 말씀하셨다. “우리가 지금 다른 회사와 합병을 준비 중인데, 우리 회사 몸집을 줄여야 해서 정현이는 오늘부로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리고는 권고사직인 만큼 한 달 치 월급을 더 줄 거고, 오늘까지만 근무하고, 다음 달 내로 편한 대로 짐 정리를 하러 와도 된다고 말했다. 1년 동안 같이 하겠다고 계약서까지 써서, 함께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돼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는데 눈물이 날것 같았다. 눈칫밥 먹고 큰 나라서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도 했지만 막상 실제 상황이 되니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여기서 울면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만은 굳건했기에 눈물을 쏙 감추고 내 의견을 전달했다. 상황이 그런 거라면 제가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권고사직인 만큼 한달치 월급은 꼭 챙겨 주셨으면 좋겠다고. 


그 후 이사님 방을 나와서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가서 펑펑 울었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당황했고, 그게 현실이라는 것에 슬펐고, 회사가 나 빼고 흘러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라 비참했다. 내가 쓸모없는게 맞았어, 그리고 나는 또다시 실패한 거야. 세컨드 라인을 함께 준비하고, 회사가 커질 것 같은 느낌에 혼자 들떠서 이사 갈 생각에 설렜던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마치 끝인 줄 모르고 신나게 달리다가 벼랑에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추락할 거라는 것도 모르고 설렜던 나에게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회사도 미웠다. 당일 해고가 이렇게 쉬운 거였다니... 말 한마디에 내 직장이 사라졌다. 그냥 그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움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고,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내 딴에는 혼자 있는 공간에서 소리 없이 울려고 화장실에 들어간 것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화장실에서 물도 안 틀어 놓고 울어서 사무실까지 다 들렸을 게 뻔한데 나만 그걸 몰랐었다. 그러곤 마치 하나도 울지 않은 척 자리에 돌아와 점심 먹으러 가자고 행복한 미소를 띠며 애써 태연하게 밥을 먹으러 갔다. 대리님은 안 드시겠다고 하여 나와 나를 잘 챙겨준 직원분 둘이서 밥을 먹었고, 정말 담담하게 짤렸다고 말을 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돌아보면 그 주에 뭔가 낌새가 이상하긴 했다. 회의도 없었고, 대리님은 자주 안 나오시거나 나오셔도 나와 둘이 있는 시간이 없었고, 이사님은 여러 미팅과 사무실 이사 때문에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셨고, 가끔 나를 제외한 직원들과 함께 가셨다. 그리고 그냥 분위기가 조금 싸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스타일리스트 일을 하면서 눈치만큼은 정말 많이 늘었는데, 뭔가 내가 끼면 안 될 것 같은 눈치였다. 소외되는 느낌이 강했지만 이건 곧 지나갈 거고, 난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잘리고 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사님께 좀 더 아부를 잘할 걸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시종일관 이사님을 상사/대표로 대했고, 이사님은 그런 나를 조금 불편하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눈치 안 보고 매일같이 칼퇴를 했고, 이사님은 내가 칼퇴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물론 회사가 전체적으로 야근이 없긴 했다. 이사님도 일찍 가시는 날이 많았고, 늦게 가시게 되면 우리를 꼭 먼저 보내곤 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내가 이 회사에 놀아났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내가 뽑힐 때부터 6개월 일하고 자를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든 생각은 ... 하지만 어떤 생각을 했던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나는 6개월간 일한 회사에서 잘렸고, 정규직이었지만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정리되었다. 11월의 마지막 금요일. 한 해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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