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DoG Oct 29. 2020

브랜드 매출과 차기 시즌 디자인

가을, 겨울옷이 한창 팔려나가기 시작하자 매주 판매분석 회의를 했다. 재고와 팔린 수량, 그리고 가장 잘 나간 제품과 안 팔린 제품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밀던 주력 아이템은 미지근한 반응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양털 후드에서 반응이 와서 새로운 색상을 추가하여 라인을 넓히기도 했다. 회사의 수익률과 판매율을 표로 볼 수 있어서 신기했는데, 이사님은 항상 만족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판매가 부진할 때마다 새로운 세일이나 이벤트를 열어서 매출을 올리곤 했는데, 이렇게 반짝 매출이 오르는 그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창고로 출동했다. 내가 디자인하고 준비한 옷들이 잘 팔리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또 너무 많이 팔려서 물량이 밀리는 것은 싫었다. 물류 아르바이트를 꼭 썼으면 좋겠는데, 이사님이 나서서 열심히 하시는데 내가 안 할 수는 없었다. 


가을, 겨울옷들이 차곡차곡 입고되는 9월이 지나자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할 일이 없어졌다기 보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에 앞서 조금 붕 뜬 시간이었달까. 대리님은 나름대로 계속 할 일이 있으셨고, 나에게 다음 시즌 자료 조사를 해보라고 하셨다. 먼저 대리님이 모아놓은 이미지들을 같이 살펴보면서 어떤 느낌의 이미지를 찾아보면 좋겠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그때 나는 내가 이해한 줄 알았다. 그래서 열심히 내년 봄 여름 컬렉션들을 뒤적이면서 보는 눈을 키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건 이래서 별로고, 저건 저래서 별로고, 이 컬렉션엔 볼만한 게 없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뒤져서 나온 이미지가 열댓 장이 전부였다. 그날 찾은 자료를 대리님께 보여드리는데, 내가 이것밖에 못한다는 느낌에 부끄럽고 초라했다. 대리님도 “겨우 이거?” 라고 농담을 하셨는데, 나한텐 농담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약 보름 가까이 이미지 시안만 찾았다. 그 일을 하면서 내가 패션에 관심이 없고, 재능도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으며 ‘이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는 끝까지 감을 잡지 못하고 그냥 이것저것 자료를 모아 대리님의 자료와 합쳤다. 그리고 그중에서 우리 브랜드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이템들을 선정해서 도식을 따기 시작했다. 이제야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하게 된 것 같아서 나는 너무 기뻤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도식을 땄다. 나는 바람막이 세트와 트레이닝 세트, 그리고 라인절개가 들어간 반팔 티셔츠 등을 디자인 했는데, 백 퍼센트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런 디자인이라면 구매욕이 일어날 것 같은 디자인이었다. 


그 후 디자인 회의할 때 대리님이 다음 시즌 콘셉트에 대해 설명을 했고, 우리가 디자인한 도식들을 늘어놓으며 하나하나 디테일을 설명했다. 회사 직원분들은 살짝 황당한 표정이었다. 마치 ‘우리가 이런 옷을 한다고?’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우리가 제안한 방향은 컬렉션스러운 디테일과 기존의 브랜드와는 완전히 틀어진 방향성, 그리고 이제껏 해왔던 영 캐주얼을 벗어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대리님과 나는 그런 컬렉션들을 보면서 브랜드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충분히 얘기한 상태였고,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같았는데, 이사님과 MD 님, 그리고 실장님은 이것이 판매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고민하는 듯 보였다. 물론 내가 봐도 이건 도전이었다. 그동안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을 타깃으로 컬러와 과감한 프린트로 사랑받던 브랜드가 갑자기 노선을 틀어서 20대가 입는 포멀하면서 힙한 옷들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려될만했다. 결국 이사님이 브랜드 세컨드 라인을 제안하셨다. 이사님도 우리 브랜드가 놓치고 있는 미니멀하고 힙한 브랜드들이 요즘 실적이 좋다는 것쯤은 알고 계셨는데, 디자인 팀에서 먼저 이렇게 디자인을 보여주면서 말을 하니까 이번엔 확실히 세컨드 라인을 내서 브랜드 라인을 재정비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일이 조금 커졌다. 내가 봐도 세컨드 라인은 좋은 의견인 것 같았다. 기존 Q브랜드는 베스트셀러 품목만 추려서 베이직 라인으로 크기와 색상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디자인적인 제품을 한두 가지로 밀면서 더 이상 몸집을 키우지 않고, 새로운 세컨드 라인(모던 라인)을 출시해서 요즘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계획이었다.


그래서인지 회사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서 일은 없는데, 자꾸 세컨드라인에 대한 회의는 계속되고, 디자인팀은 우선 Q브랜드 베이직라인을 제작하기 위해 컬러와 사이즈를 확정 지으며 들어오는 샘플을 체크했다. 결국 도식까지 다 따놓은 디자인 제품은 시작도 못하고 서랍 속에 봉인되었고, 하필이면 사무실 이사 문제까지 겹쳐서 나를 뺀 직원 모두가 바빴다. 나는 그저 할 일없이 세컨라인이 하루빨리 정리되어 디자인한 옷들이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Q브랜드 일과, 세컨라인 일이 한 번에 몰릴까 봐 내심 조급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나는 자꾸만 회사일에서 배제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사님은 대리님과 MD님을 따로 불러내어 이야기하거나 새로 구할 사무실을 같이 가보는 경우가 잦아졌고, 나는 시키는 일도, 할 일도 없어서 매번 일하는 척을 해야 했다. 그때 나는 내가 스스로 회사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어느새 나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설명해 버렸고, 너무나도 앞뒤가 맞는 설명에 나는 쓸모없는 자신에 대해서 후회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내 인생에서 떼어낼 수 없는 우울감이 나를 덮쳤다. 마치 내가 힘이 빠지길 기다리고 있다가 발목을 늘어잡고 나를 넘어트리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도 멍하게 자주 있었다. 그냥 다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도 어차피 없는데, 열심히 일하는 척도 그만두었다. 일이 없으면 그냥 책상에 앉아서 쇼핑몰을 들락날락하며 화면만 바꿨다. 일이라도 많았으면 우울감을 조금 떨쳐냈을 것 같은데, 하필이면 일도 없었다. 대리님도 정신이 없어서 나를 잘 챙겨주지 못했고, 나는 회사에서 나만 다른 배를 타고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 24화 내 디자인이 팔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