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김장은 늘 엄마가 계획하시고 준비하셔서, 올해는 엄마도 요양병원에 계시고 다른 가족들도 김치를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김장을 하지 않았다.
연휴를 맞아 엄마가 외박을 나오게 되셨고, 물김치와 열무김치를 먹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는 바쁜 직장생활을 하는 나를 배려하셔서 이모에게 김치 부탁을 하신다 하셨지만, 김치를 만들어 택배로 부쳐야 하는 이모의 수고를 생각하니 내가 직접 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직접 해보기로 했다.
퇴근 후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치우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 온 재료를 씻고 절였다.
김치 만들기는 단순히 배추나 열무 구입을 넘어서, 다양한 재료의 세심한 준비를 요한다. 부재료와 양념을 선택하고 조합하는 일은 각각의 재료가 김치 맛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이 과정은 깊은 주의와 정성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작업이 김치의 깊은 맛을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노력의 증거이자 디테일의 힘이 숨 쉬는 작업이었다.
피곤함이 몰려오면서 김치 작업을 그만두고 내일이면 배달되는 쿠*, 마켓**로 주문할까? 라는 유혹이 스물스물 올라왔지만 이미 주방이 김치공장으로 변해버린후라 이것도 늦었다.
우리나라 음식 중에는 만들어서 바로 먹는 음식도 있지만 재우고, 절여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꽤 있다.
김치를 만든 후에도 그 김치를 보관할 김치통을 미리 씻고 말리고 건조해 놓아야 했다.
이 과정을 정기적으로 몇 십 년을 해오신 어머니들 정말 대단하시다. 그간 먹었던 김치는 갑자기 마법처럼 짠하고 나온 음식이 아닌 이렇게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기다림을 요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절이면서도 한 번씩 뒤집어 주고 절임 작업이 끝나고 밤 10시가 넘어 본격적으로 준비한 양념의 향연이 시작되자 그제야 김치는 완성된 자태를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익숙한 자태를 보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엄마는 퇴근하고 이걸 언제했냐면 내가 만든 김치를 기쁘고 맛있게 드셔주셨다. 그러나, 엄마는다음에도 김치를 또 해달라는 주문은 '아직은' 하지 않으셨다. 다음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내가 먼저 엄마께 말씀 드려야겠다.
김치의 완성된 자태와 바꾼 주방의 뒷정리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싶었지만 오늘의 나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고 내일 아침 깔끔한 주방의 모습을 보면서 출근하는 것으로 타협하였다.
꽤 난도가 높았던 2023년이 이제 정말 몇 시간 남지 않았다. 그 난이도만큼 내 나이테도 한 뼘 도톰해졌리라 믿고 2024년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