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남지 않은 살아남은 자
영화든 음식이든 쉽게 '인생'을 써붙이는 거창한 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인생작품을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신 자주 써먹는 조건이 있다. 죽기 전에 먹거나, 볼 수 있다면? 적어도 앞으로의 남은 나날을 거는 것보다 죽기 직전의 시간을 거는 것이라 부담은 덜하다.
그래서 나만의 조건을 핑계로 당당하게 말해본다. 나는 죽기 전에 영화를 볼 수 있다면 <헝거게임> 시리즈를 정주행할 것이다.
판타지 대작을 꼽아보라 한다면 누군가는 <해리포터>를, 누군가는 <반지의 제왕>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누가 뭐래도 <헝거게임> 시리즈가 최고의 판타지다. 사실 '캐피톨'에 의해 12구역으로 통제되는 국가라는 배경과 최후의 생존자 1인을 꼽는 '헝거게임'이 존재한다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현실과 맞닿아있다. 서바이벌 게임은 혁명의 시작일 뿐, 영화는 명백히 계급사회와 독재사회에 대한 반란을 다룬다.
간단하게 <헝거게임>에 대해 말해보자.
헝거게임의 배경
헝거게임 세계관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후 스노우 대통령이 독재하는 국가 '판엠'을 배경으로 하며, 판엠은 수도 '캐피톨' 아래 12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있다. 각 구역 사람들은 캐피톨에서 배치된 헌병들의 통제 하에 채굴, 벌목, 수산 등의 노동을 해야한다.
헝거게임
헝거게임 1편 '판엠의 불꽃'을 기준으로 74년 전, 캐피톨의 독재에 불만을 품었던 13개의 구역은 반란을 시도했다. 하지만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고, 캐피톨은 반란의 대가로 13구역을 없애버린다. 이후 12개의 구역에서 10대 남녀 한 쌍을 뽑아, 총 24명이 참여하는 '헝거게임'을 매년 주최하며 반란의 불씨를 짓밟는다. 이때 참여자들은 '조공인'으로 불린다. 헝거게임은 으레 서바이벌 게임이 그렇듯, 오직 최후의 1인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끝나지 않으며 상황이 24시간 내내 방송으로 중계된다.
74주년 헝거게임
그렇게 시작된 헝거게임은 어느새 74주년을 맞이한다. 영화는 헝거게임 참여자 추첨날 아침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긴장감이 맴도는 12구역,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의 동생, 프림로즈 에버딘(윌로우 쉴즈)은 자신이 헝거게임 참여자가 될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을 받는다. 캣니스는 프림을 달래주지만, 우려하던 일은 현실이 되어 프림은 이름이 불리게 된다.
그때 캣니스는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프림 대신 자원하게 된다. 캣니스는 애써 덤덤한 척하지만, 떨리는 모습을 감출 수 없다.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길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12구역의 남자 조공인은 피타 멜라크(조시 허처슨)로, 예전에 지쳐쓰러진 캣니스에게 몰래 빵을 던져준 적 있다. 어색함과 긴장감이 도는 채로, 캣니스와 피타는 헝거게임을 시작한다.
시리즈별 요약 (스포일러 O)
<헝거게임> 시리즈는 2012년 1편 '판엠의 불꽃'을 시작으로 2013년 2편 '캣칭 파이어', 2014년 3편 '모킹제이'를 지나 2015년 4편 '더 파이널(모킹제이 파트2)'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① 판엠의 불꽃: 74주년 헝거게임에 참여하게 된 캣니스와 피타. 둘은 게임에서 단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룰을 깨고자 둘 다 독딸기를 먹는 척한다. 무조건 우승자가 나와야 하는 헝거게임의 특성상, 둘을 모두 죽게 놔둘 수 없었던 게임메이커는 결국 최초로 공동 우승을 결정한다.
② 캣칭 파이어: 견고했던 헝거게임의 룰을 깨버리며 의도치않게 혁명의 불씨가 되어버린 캣니스. 스노우 대통령은 이런 캣니스를 탐탁치 않아하고, 결국 캣니스를 죽이기 위해 75주년 헝거게임의 참여자를 역대 우승자들로 정한다. 12구역에 살아남은 여자 조공인은 캣니스 밖에 없었기에, 캣니스는 또 다시 목숨을 건 두 번째 헝거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③ 모킹제이: 두 번째 헝거게임에서 돔 구장을 파괴해버린 캣니스는 그 덕분에 혁명을 준비하던 13구역 사람들에 의해 구출된다. 하지만 피타와 다른 조공인들은 여전히 캐피톨에 붙잡혀 있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캣니스는 혁명의 상징, 모킹제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④ 더 파이널: 캣니스는 선전 영상을 찍기 위해 (사실은 스노우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캐피톨로 잡입을 시도한다. 그때 캣니스의 일행에 피타가 합류하지만, 피타는 캐피톨의 세뇌 때문에 캣니스를 적으로 인식해버린 상태다. 캣니스는 온갖 위협을 뚫고 캐피톨에 잡입하는데 성공하지만, 13구역과의 대치를 준비하는 캐피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과연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혁명은 성공한다.
<헝거게임>은 활을 쏴 가족들을 먹여살리던 평범한 소녀, 캣니스 에버딘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혁명이고, 그건 곧 주인공의 승리를 의미한다. 하지만 고작 한 소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혁명은 곧 캣니스가 원하지 않아도 그를 흔드는 일들이 생겨난다는 의미와도 같다. 나는 감히 이 작품을 캣니스의 성장 서사라고 칭하고 싶지 않다.
무릇 성장 서사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난 주인공의 내적•외적 성장을 동반하는, 다소 희망이 가득찬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우리는 과연 원치 않게 혁명의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잃은 캣니스의 인생을 성장이라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가끔 우리는 혁명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만 해도 벅차오르고, 가슴이 뛰고, 앞으로 정진하는 것? 혁명은 언뜻 타오르는 불길 때문에 멋져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잿더미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혁명의 과정은 지난하고, 수많은 죽음으로 점철된다. 혁명의 결과는 남은 사람들과 남지 못한 사람들로 나뉜다. 그리고 그 '남다'의 앞에는 무조건 '살다'라는 전제 조건이 따른다. 중간이 없는 선택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혁명의 좋은 결과만을 맞이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혁명의 과정을 직면해야 한다.
남은 자, 캣니스와 피타는 살아남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동생을 위해 헝거게임에 자원했던 캣니스는 결국 동생을 잃었고, 피타는 가족 모두를 잃고 자신마저도 잃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둘에게 오직 서로만 남았다. 그들이 12구역에서 서로의 가족이 되어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헝거게임>의 엔딩이 캣니스의 독백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가 칭얼대자 캣니스는 나도 가끔 악몽을 꾼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들려준다고도 덧붙인다. 기나긴 악몽에서 어떻게 깨어났는지. 악몽은 결국 언젠가는 끝이 난다고도. 캣니스의 인생이 희망적이진 않았으나, 그의 자식에게는 마냥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미약한 희망이 담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메시지 자체가 큰 위로가 된다.
정리하자면, '캣니스 에버딘'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내적으로 말하자면 혁명의 상징, 영화 외적으로 말하자면 원치않게 메시아가 되어버린 자다. 특히 13구역으로 구출된 후 모킹제이로서 선전 영상을 찍어야 하는 캣니스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시리즈 내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캐피톨의 독재를 위해 12구역 조공인들의 피로 세운 헝거게임에 나서게 되었을 때도, 그 헝거게임의 룰을 깨버렸을 때도, 모두 캣니스의 의지였으나 사실은 등 떠밀어진 상황에서 살고자 한 본능에 가깝다. 사람을 죽이는 환영을 보고, 그의 곁을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죽일 뻔하고, 밤새 악몽을 꾸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영화 내에서 꾸준히 보여주는 것 역시 이를 나타낸다. 그러나 캣니스가 헝거게임에서 살아남고자 한 행동은 견고하던 캐피톨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불꽃이 되었다는 이유로, 끝없는 고통을 겪는다.
한 소녀의 어깨에 짊어진 활의 무게가, 혁명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상상해본다. 그래서인지 더욱 결말이 오래 남는다. 아무도 캣니스를 흔들어 놓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