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마을아파트 Mar 08. 2024

30화 (2) 그리움이 짙어지면 무슨 색일까?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아요."


쏘피가 떠난 후, 

딸은 슬픔을 꾹 누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18살인 딸은 14년이라는 시간을 녀석과 늘 함께 있었다. 14년너무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딸의 말은 나에게도 해당되었지만, 죽음을 처음 겪게 된 딸이 더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딸은 솔직하게 매 순간 표현하였다.

슬픔도 그리움도 참지 않고 했다.

"아!~ 쏘피 보고 싶다"

"얘 보세요. 쏘피랑 똑같이 생겼죠?"

"어? 이건 쏘피 털 색깔이랑 잘 어울리겠는걸..."


그리고 딸은 그동안 찍어 두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봤다. 딸의 핸드폰 속에는 1700장이 넘는 녀석의 사진과 동영상이 가득 들어있다.


"하루에 한 개씩만 봐도 몇 년은 괜찮겠어요."

딸은 이렇게 말하며 씨익 웃는다.



녀석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에서 도망치고 회피하는 나보다 솔직히 표현하는 딸이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딸은 잘 이겨낼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또 그렇게 우리는 일상을 살았고,

시간은 흘렀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고딩 딸내미와 둘이서 바다를 보러 갔다.

시원한? 아니 아직 차가운 바람이 매서웠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바다냄새가 참 다.

그리고 친절한 수평선은 어디서부터 하늘인지, 바다인지 헷갈려하는 나에게 여기까지 바다라며 다정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신나게 춤추는 갈매기들은 한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그때 딸이 말한다.


"엄마,

갈매기가 있어서 바다가 더 예뻐 보여요."


딸의 말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나도 밝게 대답한다.


"와아! 정말 그렇네.

바다에 거친 파도만 있었으면 더 추워 보였을 텐데, 갈매기들이 함께 있으니 행복해 보이네.

갈매기들의 이야기가 가득해서

바다가 따뜻하게 보이나 봐." 





그래, 그런 거다.

저 차디찬 바다도, 파도

갈매기들의 이야기가 함께 있기에 완벽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런 거겠지?

기쁨, 행복, 분노, 슬픔, 아픔, 그리고 그리움...

이 모든 추억이 함께 있기에 완벽해지는 거겠지?







녀석이 떠난 지 한 달이 되었다.


길고 긴 시간.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 


가족 중에 누가 더 힘든지는 모르겠다.

다 똑같은 마음이겠지.

그리움의 크기는 다 같겠지.


그리움의 크기만큼 길고 깊은 이 시간을,

우리는 일상을 유지하며

감정의 저울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게

아슬아슬 수평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녀석을 보내고 한동안은 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앞에만 나가도 녀석이 킁킁 열심히 냄새를 맡았던 자리가 있다. 그리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걷던 길이 있다.

바로 앞 작은 공원에는 흙냄새를 신나게 맡고,

낙엽을 온통 털에 붙이고 빙구같이 쳐다보던 동그란 눈의 녀석이 있다.

온통 녀석이 가득 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 길을 지나면

여전히 녀석이 다.


하지만 어둠이 가득한 그리움의 아픔이 아닌,

행복했던 너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덧입혀져

그리움 그라데이션으로 변하고 있다.


냄새쟁이 녀석이 코를 흙속에 딱 붙이고

무슨 큰 보물이라도 찾겠다는 듯이 열심히 무언가를 찾고, 난 녀석의 옆에서 노심초사하며 혹시 죽은 쥐나 쓰레기를 먹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그리고 녀석과 나란히 발맞춰 걷다가 

내가 갑자기 우뚝 서면,

녀석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왜? 무슨 일이야?' 하며 묻는다.


함께 걸었던 그 길에서 행복했던 그 시간이 다시 느껴진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것 같다.

상실의 어둠만이 가득한 시간지나

기억그라데이션 마지막에는 

사랑스러운 녀석의 아이보리색만이 남길...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일상을 살고,

시간은 흐른다.




밤하늘을 쳐다보던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가의 이전글 29화 (1) 그리움이 짙어지면 무슨 색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