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학의 역사 그리고 시장미시구조 #2.

by 퀀트대디

# 블랙-숄즈 옵션 공식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블랙-숄즈 논문은 1973년에 발표되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연구는 매우 시의가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아다리가 맞아도 이렇게 맞을 수 있었는지 아마 그들도 굉장히 놀랐을 것이다. 그들의 연구가 왜 시의적절했는가를 이야기하자면 결국 우리는 1970년대의 새로운 경제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1970년대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새로운 금융 상품과 새로운 경제 체제의 출현으로 인해 새로운 리스크 관리 도구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기였다. 특히나 블랙-숄즈 논문 발표 2년 전인 1971년, 미국의 37대 대통령인 닉슨 대통령은 달러의 금 태환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그 유명한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촉발시켰다. 이러한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이제 모든 통화들은 각자 서로의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고정 환율 체제에서 변동 환율 체제로 글로벌 경제의 시스템이 바뀌게 된 것이다.


변동은 결국 리스크를 의미한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리스크의 발생은 자연스럽게 사람들로 하여금 적절한 리스크 관리 도구를 찾도록 만들었다. 블랙-숄즈 논문이 발표된 해인 1973년에 시카고옵션거래소가 창설되었고, 이 거래소가 역사상 장내 옵션을 거래하는 최초의 거래소가 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블랙-숄즈 공식을 비롯한 여러 이론적 도구들이 실제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널리 사용되기 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지만, 사람들은 이미 그러한 도구들을 사용해 굉장히 편리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옵션 장부를 관리할 준비를 때마침 마친 참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파생상품 프라이싱을 통해 미래 상태에 대한 베팅 자체를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되었고, 동적 헤징(Dynamic Hedging)을 통해 대규모의 옵션 장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또한 복제에 기반한 자산 가격 프라이싱을 통해 이제 금융 기관들은 고객들에게 점점 더 복잡한 금융 계약을 제안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파생상품 계약을 통해 기업과 금융 기관은 외환에 대한 익스포저를 헤지하거나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고객들은 이러한 파생상품을 활용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위험을 헤지하거나 분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반대로 미래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위험 중립적 확률 간의 차이에 대한 베팅을 하여 쉽게 이익을 얻기도 하였다. 이렇듯 블랙과 숄즈, 그리고 머튼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사람들로 하여금 금융 위험과 관련된 생각의 틀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학계와 실무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파생상품 프라이싱에 흠뻑 빠져들었다.



# 수학에서 경제학, 다시 경제학에서 수학으로

오늘날 우리가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 혹은 계량금융(Quantitative Finance)이라고 부르는 학문은 본래 고전적인 금융경제학(Financial Economics)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도 블랙-숄즈 옵션 공식의 장본인인 블랙과 숄즈, 그리고 머튼은 이토 미적분(Ito Calculus) 같은 복잡한 수학적 도구를 사용했다 뿐이었지, 사실 원래 그들은 경제학자들이었다. 머튼의 경우에도 폴 새뮤얼슨 교수의 문하에서 박사 과정을 했고, 숄즈 또한 MIT 경제학과에 적을 두었었다. 블랙 또한 그의 연구를 CAPM에서 출발했으며, 이 CAPM 이론이라는 것도 1952년 해리 마코위츠(Harry Markowitz)의 포트폴리오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블랙-숄즈 이후에도 90년대 전까지 주요 금융공학 모델을 만들어냈던 주인공들은 아직 경제학자들이었다. 콕스, 로스, 루빈스타인의 CRR(Cox-Ross-Rubinstein) 모형은 이토 미적분 없이도 단순한 트리 모형을 통해 옵션의 복제를 설명해냈으며, 이는 금융산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1977년의 바시첵(Vasicek) 모형과 1985년의 CIR(Cox-Ingersoll-Ross) 모형이 금리의 역학을 설명하기 위해 탄생하기도 하였다.


순수 금융공학 영역 외에도 금융 경제학에서의 연구들은 이론적 모델이 아닌 실제 시장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그들의 관심 주제는 시장의 마찰, 불완전 시장, 정보의 비대칭, 그리고 시장 미시구조 등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장 미시구조에 대한 연구의 계보는 이때부터 그 본류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시장 미시구조 모형의 대표적인 예는 1985년에 만들어진 카일(Kyle) 모형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아닌 수학자들이 확률 이론의 응용 분야 중 하나로써 금융수학(Financial Mathematics) 혹은 계량금융의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던 건 비로소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부터이다. 이때부터 수학자들은 본격적으로 편미분 방정식 및 최적화 이론, 최적 제어 이론 등과 같은 응용 수학 도구들을 금융의 영역으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수학에서 경제학으로의 여정은 엽서 몇 장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지만, 다시 경제학에서 수학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려 3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몇몇 수학자들은 은행에 고용되기도 하고 혹은 학술적 고문으로써 업계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의 복잡도가 점점 증가함에 따라 기존에 다루던 실무적 이슈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학문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론적인 질문과 명제들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금융의 영역에서 수학자들의 나와바리가 점차 넓어지게 된 계기가 된다.



# 금융공학, 수학자들의 세상이 되다

1990년대 초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전까지, 금융공학은 전방위적으로 그 영향력을 펼쳐나갔다. 이제 피셔 블랙의 이름은 블랙-숄즈 옵션 공식, 블랙-더만-토이(Black-Derman-Toy) 모형, 블랙-카라신스키(Black-Karasinski) 모형, 블랙-리터만(Black-Litterman) 모형 등 금융권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다른 경제학자들과 수학자들 또한 이러한 금융 모델 개발의 최전선에서 이름을 떨쳤다.


주식 파생상품 측면에서는 블랙-숄즈 모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변동성 곡면(Volatility Surface)과 그 다이나믹스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모형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듀피어(Dupire)와 더만(Derman), 카니(Kani)에 의해 로컬 변동성(Local Volatility) 모델이 탄생했으며, 헤스턴(Heston)에 의한 확률 변동성(Stochastic Volatility) 모델 또한 등장했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는 이 둘을 결합한 로컬 확률 변동성(Local Stochastic Volatility) 모델이 등장하게 된다. 한편 채권 영역에서는 히스(Heath), 자로우(Jarrow), 모튼(Morton)이 제안한 HJM 모델이 만들어졌고, 라이보 시장 모형(LMM, Libor Market Model) 또한 금리 모델링이 발전하는데 일조하였다. 이후 SABR 모델이 나왔는데, 특히 이 모델은 이것이 가지고 있는 점근적 방식에 의해 각광을 받기도 했다.


밀레니엄 시대에 접어들면서 금융공학은 이제 전 세계 금융에서 안 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주식 파생상품, 금리 파생상품, 외환 파생상품, 신용 파생상품, 원자재 파생상품 등 모든 자산군들에 여러 종류와 형태의 파생상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그 가운데 퀀트들은 자신들의 수학적 역량을 마음껏 뽐내며 그 위상을 높여갔다. 이러한 파생상품과 구조화상품들은 대규모 파생상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데 사용되었다. 바야흐로 수학자들의 세상이 된 것이었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카루스의 날개를 꺾다

하지만 문제는 신용 파생상품이었다. 신용 파생상품 북은 단순히 주식 파생상품 북이나 금리 파생상품 북처럼 그리 간단하게 관리할 수 있는 성질의 포트폴리오가 아니었다. 특히, 그 유명한 데이빗 리(David Li)의 코풀라 모형(Copula Model)은 부채담보부증권의 위험을 실제보다 훨씬 더 과소평가했다. 하지만 신용 파생상품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수익성은 투자은행들의 눈을 멀게 했고 그들은 맹목적으로 그러한 모형을 사용하여 상품을 평가하고 그저 돈을 주워 담기에 바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수익을 위해 쉬쉬하고 있었던 이러한 신용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기고만장하여 더 높은 곳을 추구하다 태양에 날개가 타버려 추락한 이카루스처럼 순수 모델의 세계는 현실의 철퇴를 맞고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혹독하게 겪은 퀀트들은 하나둘씩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이후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모델 리스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들은 그들 자신이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현실 세계의 존재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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