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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는 아빠를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하기 위한 기록
이상하게 집에만 오면 머리가 어지러워
아빠는 대학 시설팀 교직원이셨다.
오랜시간 건축 설계를 하셨고, 그때쯤 직접 설계한 도면으로 우리 집을 짓고 계셨다. 짓고 있는 집 옆에 컨테이너를 세워두고 엄마, 아빠는 그 곳에서 생활하며 집을 지었다. 집 짓는데 아빠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고, 그만큼 신경 쓸 거리가 너무나 많았다.
아빠가 언젠가부터 이 집에만 오면 머리가 어지럽다고 했다.
아직까지도 그 때의 그 장면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우리집은 창문을 아주 크게 달았고, 아직 텅 비어 형태만 겨우 갖춘 집 창문 앞에서 그 창문을 붙잡고 아빠가 말했었다.
…"이상하게 집에만 오면 어지러워"
아빠의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집 짓는데 아빠가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것일거라고 했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해결이 될 때까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리는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아직까지 이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아빠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게 됐던건 내가 아닐까.
딸. 일 좀 도와줘
언젠가부터 아빠가 회사 일 처리를 어려워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내가 집에 내려갈때마다 아빠는 문서 작업같은 소소한 회사 일을 부탁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가 부탁하는 내용들이 일이라고 하기 뭣할 만큼 너무나 간단하고 허무한 일들이였어서. 그런데 아빠는 그 일을 붙잡고도 쩔쩔 메고 있었다. 뭘 어떻게 부탁해야하는지도 모르는것처럼.
그때쯤 엄마에게도 이야기 했었다. '아빠 회사에서 일은 잘하고 있는거야? 너무 간단한 것도 어려워하는데…'
차를 어디둔지 모르겠어
아빠가 회사에서 차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차해둔 차가 없어졌다고 했고, 어떨 때는 차를 어디다 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엄마가 가 캠퍼스를 돌아다니면 어느 한 곳에 아빠 차가 덩그러니 주차되어 있곤 했다. 그 때 아빠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 조절이 힘들어 최근 복용하게 됐다고.
그리고 아빠가 차를 잃어버리기 시작하면서 약을 끊었다. 다시 차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아빠는 왜 우울증 약을 먹고 이상 행동을 보였을까.
정밀검사 해보자
어지러움은 계속 심해졌고, 병원 검진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빠의 어딘가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병원에서 정밀 검사 후 알아냈다. 예상했듯 아빠는 문제가 있었고, 그 이름은 '소뇌위축증'이었다.
말그대로 소뇌가 위축, 쪼그라드는 병이라는 것.
치료법이 없는 희귀 불치병이라는 절망스러운 사실도 함께 알게됐다.
그 절망 속에서도 그땐 몰랐다.
내가 알던 아빠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아빠와 더 이상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거라는 것.
많은 눈물이 있을 거라는 것. 죄책감에 시달릴 거라는 것.
난 결국 깊은 우울감 속으로 침전될 거라는 것.
이전의 우리 가족의 모습은 다시 없을 거라는 것.
아빠는 희망 퇴직 후 회사를 그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