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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는 아빠를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하기 위한 기록
아빠의 증세는 심해졌다.
유전성 소뇌위축증이 아니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중에서도 아빠의 진행 속도는 더 빠른 편이다.) 이제 조금씩 눈에 보이는 증상이 늘어갔다. 이때 눈에 띄는 증상은 '자주 넘어지는 것'이었다. 운동신경이 둔해지고 있는 것. 게다가 심한 어지럼증까지 있으니 생겨난 증상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야말로 희망고문의 시작이였다.
소뇌위축증은 병에 대한 정보나 치료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다. 치료법이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현재 치료약은 없습니다" 라는 병원의 말이 팩트다. 하지만 이것을 아빠나 우리 가족이 처음부터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럼 이리 저리 찾아보고, 물어보고, 검색해보고… 이젠 웬 홍보 찌라시 글까지 집중해선 읽어보고 혹하는 지경까지 가게된다.
첫번째 희망고문
그렇게 처음 간 곳이 서울의 한 한의원이다.
엄마, 아빠가 서울에 올라왔고 오빠까지 온 가족이 함께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사는 지금부터 당장 한약을 복용해야한다고 했다. 약은 한 달분이 약 100만 원 가까이 했던 것 같다. 언제까지 먹어야하냐고? 계속.
한의사는 태연하게 말했다. "안 먹으면 5년 안에 휠체어 탑니다~" 공포스러운 진료였다. 한 달분의 약을 결제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는 말을 잃었다.
우리 가족은 여유롭지 못하다. 아빠는 두 세달 동안 그 약을 먹었고 더 이상 먹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아빠는 현재 걷지 못하고 휠체어로 생활한다. 그 한의사의 말이 원망스럽다. 비수가 되버렸다. 그 약을 먹지 않아 휠체어를 탄 것만 같다.(물론 절대 아니다) 내가 돈을 더 잘 벌지 못해 아빠의 증세를 앞당긴 것만 같다.
아빠가 아프고 늘어난 건 자책이다.
두번째 희망고문
두번째도 한의원이다.
이때쯤 나는 심한 우울감을 안고 있었고, 건강이 좋지 않아 찾은 한의원에서 아빠가 아프면서 우울감이 더 커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한의사는 아빠의 병에 대해 물었고, 비슷한 병을 치료해본 적이 있다며 아빠를 모셔오라 했다. 나는 내 진료를 받으러 갔던 것도 잊고 가슴이 뛰었다. 또 다른 희망고문이다.
아빠는 한동안 침 치료와 전기치료를 병행해서 받았다. 결과는? 또 다른 실망이다.
세번째 희망고문
어느날 아빠가 허리 수술을 받겠다고 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전신 마취 수술을 받겠다니. 아빠는 평생 허리 통증을 안고 살았고 수술을 받은 적도 있다. 왜 이렇게 쉽지도 않은 수술을 갑자기 받겠다 우기냐했더니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이 병이 허리 때문에 생긴 걸수도 있잖아'.
전에도 말했지만 이 병은 아주, 아-주 드물에 이차적 원인으로 발병할 수 있고, 아-주 드물게 그 원인을 제거하면 치료가 될 수도 있다. 아빠는 혼자 끝없이 병의 원인을 찾고, 생각하다 평소 좋지 않았던 허리까지 그 생각이 닿은 것이다. 아빠는 너무 낫고 싶은 거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큰 전신마취 수술을 진행했고, 아빠는 수술이 끝나고도 일주일 가량이나 정신이 온전치 못해보였다. 그리고 그 수술 또한 잠깐의 희망 고문이었다.
네번째 희망고문
아빠는 서울대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원인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병원에서 지냈다. 모두 알겠지만 병원에서의 시간은 검사는 잠깐, 기다림이 대부분이다. '여기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오네요.' '저기도 큰 원인은 보이지 않아요' '여기도…' 기대와 실망의 연속. 사람을 너덜너덜 지치게 만든다. 그런데 끝무렵 암 검사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암으로 의심되는 부분이 보이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자고. 만약 암이라면, 이게 소뇌위축증의 원인일 수도 있다고. 그렇다면 암 치료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우리 가족은 그날부터 정밀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암이기를 바랬다. 암일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희망을 얻고 아빠가 암이기를 바란다니. 이게 뭐지?… 실제 암투병 중이거나 가족 중 암환우가 있는 사람이 듣는다면 얼마나 화가 나고 어이가 없을까. 죄책감이 든다. 그런데 우린 이것만이 희망으로 보였다. 적어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생기는거니까.
하지만, 돌아온 건 또 실망이다. 암이 아닌 걸로 판정났고 결국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병원에서는 '길면 몇 년'을 언급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길거리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니 '몇 년 남았습니다' 이거 드라마에서만 하는거 아니었냐고…
이제 정말 방법이 없나보다.
인정을 해야하나 보다. 했다.
하지만 아빠는 요즘도 한번씩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으로 힘겹게 얘기한다.
빨리 약이 나와야한다고...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는 아빠 모습이 더 슬프다.
어쩔땐 다 포기한듯한 모습보다 이런 모습이 더 슬프다.
이젠 아빠의 희망이 나한텐 고문이 되버린다.
사실 이제 포기해버린 내 속마음이 들킬까 무섭다. 그리고 또 나를 자책한다.
말했지만 아빠가 아프고 나는 자책이 늘었다.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