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인 듯 시골 아닌 시골 같은 그곳
현재 거주하는 곳은 결혼 후 두 번째 옮긴 도시이다. 도시는 달라졌으나, 이 도시의 이쪽 경계에서 저 도시의 저쪽 경계로 옮겨온 탓에 차량으로 이동하면 5분 남짓 걸릴까 싶은 가까운 거리다.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 뭔가 데자뷔 같은 느낌이 들었더랬는데, 잘 생각해보니 예전 동네에 살던 시절, 서울 마실 나갔다 돌아오는 빨간 경기버스 유리창에 기대어 버스 엔진 진동을 자장가 삼아 세상모르게 숙면을 취하다가 놀라서 눈을 떠보니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동네인 적이 있었더랬다. 부리나케 내리고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유유자적 태연하게 길을 건넌 다음, 내렸던 반대쪽 버스정류장에서 호다닥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돌아왔었는데... 그때 그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될 줄은 미처 몰랐지.
예전 동네는, 일단 명색만은 신도시였다. 하지만 내가 살던 아파트는 신도시의 비싼 아파트 정글과 행정구역 이름이 같을 뿐. 베란다 시야를 가리지 않고 탁 트인 광활한 농지, 드문드문 보이는 비닐하우스, 집 근처의 컨테이너 공장들로 이루어진 저렴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몹시 시골틱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미용실이나 문구점 같은 곳은 반경 몇 킬로 내로 구경도 할 수 없었고 마트나 은행도 버스 한 정거장 거리에 유일하게 한 곳뿐이었다. 연년생으로 어린 두 아이 소아과라도 데리고 갈라치면 버스 탈 엄두조차 나지 않아 무조건 콜택시를 불러야 하는 그런 곳. 그나마도 눈이 좀 쌓였다 싶으면 택시 아저씨들이 외면하는, 야트막한 동산에 위치한 외딴 아파트. 아이들 기저귀 갈면서 궁둥이 씻기려고 보일러 온수를 눌러놓고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채 물이 따뜻해지길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중앙난방식 보일러. 당시에는 나름 살만하다고 여겼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불편했던 일들이 한 다스 떠오른다. 인간 참 간사한지고.
현재 동네는 북한과 국경이 맞물려있는 도시. 서울보다 개성이 더 가까운, 전쟁이 나도 피난은커녕 북한군 밥해줘야 한다는, 통일되면 대박이지만 그 전까진 쪽박이라는 곳이다. 차로는 5분 거리라도 행정구역에 따른 이미지가 이렇게나 다르다. 이곳으로 이사 가자는 남편의 얘기에 처음에는 반감이 들었다.
“쌔가 빠지게 공부시켜 서울보내놨디만, 어데 이상한 촌 남자 만나가꼬 자꾸 북쪽으로 밀리 나노!!”
하실 어머니의 모습이 안 봐도 블루레이로 그려졌다. 몇몇 집을 구경하면서도 썩 내키지 않았던 마음이었으나, 때마침 신기하게도 예전 살던 집과 똑같은 동호수가 전세 매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한 번 구경하고서 홀리듯이 바로 계약을 해버렸다. 당시에는 대충 2년만 살아보고 나가지 뭐, 했던 집이 어쩌다 내 명의로 등록된 집이 되어 10년째 눌러앉아 살고 있다. 2년 전세로 살면서 몸으로 직접 겪은지라 집의 하자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나, 온갖 단점을 무릅쓰고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사 가기가 귀찮아서’였다. 물론 집 근처 각종 편의시설도 훌륭하고 아이들 학교도 가까운 편이긴 하지만, 당시 대형 책꽂이만 대여섯 개에 육박하는 수천 권의 책을 끌어안고 거처를 옮기기에 내 몸뚱이는 너무 낡고 지쳤던 것이다.
이 동네는 걸어서 5~10분 컷 거리 내로 거의 모든 은행이 다 있고 각종 병원과 마트도 선택의 여지가 여럿 있을 정도로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떡볶이 가게 개수도 한 손으로 꼽기 힘들 만큼 멘탈복지(?)도 잘 갖추어져 있다. 예전 집과 동호수가 같다는 이유로 얼떨결에 계약하고 살기 시작해서 이사 가기 귀찮다는 이유로 몇억짜리를 덥석 구매해버린, 요리보고 조리봐도 어이없는 동네 입성기지만 어쨌든 살아보니 나름 괜찮다. 마치 결혼할 때 남편을 대충 열심히(?) 골라서, 애 낳고 살아보니 그럭저럭 살만하네 싶은 거랑 닮은꼴이다. 참으로 나다운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나는 지금의 우리 동네가 좋다. 그럼 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