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되고 싶지는 않지만.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똑같이 하는 대답이 있다. 우주의 먼지가 되고 싶다고. 특히 시댁에 가면 이 생각은 몹시 매우 무척 정말 진짜 강력해진다.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으며 나 역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 그러니까 같은 먼지라도 지구의 먼지(특히 미세먼지)는 안 된다. 우주의 먼지라야만 한다. 먼지는 물건이라기보단 물질에 가깝겠지만......
다른 무언가 되고 싶은 물건이 있을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물건 하면 누군가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다가도 사용 빈도가 줄어들거나 쓸모가 없어지면 언젠가는 버려지거나, 아니면 아예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존재하게 된 시점부터 선택받지 못하고 폐기되는 그런 선택지밖에 떠오르질 않아서. 내가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한때 저장강박에 가까운 수집벽을 자랑하던 사람이라 그건 아닌 것 같다.
꼭 누군가에게 소중한 의미가 되어 평생 곱게 보관되어야만 존재 의의가 있는 건 아닐 테니, 우주의 먼지 말고 굳이 꼭 하나 고르라면 손톱깎이가 되고 싶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집에 손톱깎이는 있겠지. 제아무리 돈이 많고 부자인 사람이라도 손톱은 깎으면서 살겠지(온 식구가 네일샵을 다니며 관리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지만). 손톱깎이를 애지중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도, 한두 번 쓰고 버리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평소에는 관심밖에 있다가, 꼭 필요할 때 메인으로 등장해 요긴하게 쓰임 받는 존재. 나름 괜찮지 않은가?
손톱깎이의 시점이 되어 잠시 상상해 보았다. 손톱깎이가 되고 싶다는 말은 취소한다. 손톱 밑은 온갖 세균의 온상이다. 손톱을 깎기 전에 정갈하게 손을 씻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전용 발톱깎이를 따로 쓰지 않고 손톱깎이로 발톱을 깎는 사람도 의외로 많을 것이다. 그럼 그 발톱의 때를 매번 마주해야...... 아, 절대 손톱깎이가 되고 싶지 않다.
역시, 우주의 먼지밖에 없다. 우주를 떠다니는 아주 작은 먼지가 되어 무중력 상태의 까맣고 조용한 우주를 부유하며 그 여유와 고요를 즐기고 싶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기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