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겠지.
집은 내가 돌아보지 않으면 순식간에 엉망이 되곤 했다. 그곳에는 항상 내 손길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높은 확률로 많이 존재했다. 나는 그 일들을 열심히 하거나 혹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처럼 방치했다. 하기 싫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을 얼른 끝내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과, 하기 싫은 일은 영원히 끝나지 않고 되풀이되는 부질없는 현실에 손을 놓아버리고픈 마음이 반복되는 나날들이었다. 무척이나 외롭고 허무한 날들. 내 인생은 마치 세탁기 속에서 휩쓸려 잃어버린 양말 짝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에 불과한 것만 같았다.
내일을 위해 살뜰히 식재료를 정리하고 부엌을 정갈하게 유지하는 것이 옳은 일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어차피 먹고 나면 똥으로 나올 것인데 왜 반복해서 밥을 먹냐는 질문이 바보 같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안다. 하지만 내가 원해서 먹는 밥과, 남이 시켜서 억지로 먹는 밥은 맛도 느낌도 기분도 다르다. 끝없는 집안일의 반복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을 위해 맛있는 밥을 준비하고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참 좋다. 다 좋은 얘기이다. 가족도 사회도,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때 별 탈 없이 굴러간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균형 잡힌 도형의 모습이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심하게 튀어나와서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는 꼴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이 든다. 물론 그런 생각은 나만 하는 거겠지. 잘 굴러가지 않으면, 경사를 높이면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더라도 일단은 구르든지 추락하든지 앞으로 나아가기는 하니까. 과연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가장 합리적인 방향이라 판단되어 보편적으로 확립되었을 제도렸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지속적이고 일방적인 희생으로 인해 다른 쪽이 편안함과 이득을 얻는다면 그것은 지배와 피지배 계급 사이의 간극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싶은 것이다.
괴로운 오늘이었을지라도 해가 저물고 어둠이 찾아와 눈을 감았다 뜨면 지나가기 마련이다. 인류의 축복받은 망각 능력 덕분에 어제의 고통은 희미해지고, 새로운 날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가 나를 미래로 이끌어준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비추는 한줄기 햇살로도 충분히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니까. 괜찮다. 다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야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