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꽃 Feb 27. 2023

잠들지 않는 병원(2)- 처음에 올바른 선택을 했더라면


남자는 반갑게 인사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렇잖아도 지금 803호에 갔다가 나왔는데. 어디 다녀오는 거야?"


남편의 물음에 그는 씨익 웃으며 중요한 일이 있어서 누굴 좀 만났다는 대답을 했다. 그도 같은 방의 19살 소년처럼 한쪽 손의 손가락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그는 병실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조금 더 이야길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남편은 피곤함이 가득한 나를 보고 먼저 병실에 들어가 있으라고 한 후 그와 함께 휴게실로 갔다. 보호자 침대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나는 남편의 인기척에 깼다. 나는 남편이 그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했던 터라 남편의 더 자라는 말을 못 들은 체했다.

남들이 들을까 소곤소곤 들려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드라마 같았다.


40대의 그는 수배자였다.

2004년에 시작된 '바다이야기'라는 불법 도박 사건에 연루된 수배자이자 도망자였던 것이다. 그는 아는 형님들이 함께 일 하자고 해서 함께 한 것일 뿐 처음엔 나쁜 일인 줄 몰랐고, 나중에 알았을 때는 돈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다고 했다. 가족이 없어 고아나 마찬가지인 그가 기댈 수 있는 건 오직 그 형님들이었다고 한다.


경찰에 쫓기던 시간 동안 도망자로 살며 여기저기 전전하던 그가 먹고살기 위해 고향에서 함께 자랐던 동네 형님을 찾아가 목재소에서 일하게 된 지 몇 달 후, 전기톱에 자신의 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사고가 일어났고, 그는 떨어져 나간 손가락들을 보면서도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멍했다고 한다.


큰 사고로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하니 당연히 그의 행적이 드러났고 형사들이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형사들은 그에게 "자수하자!"라고 했단다. 큰 장애를 입었으니 자수하면 법원에서도 선처해 줄 거라고...

그는 병원치료가 끝나면 정식으로 자수하고 벌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형님! 그냥 마음이 편해졌어요. 손가락이 없어져서 막막한데 그래도 재판받고 벌 받으면 편할 거 같아요."


그는 치료 끝나고 퇴원하면 감옥에 가겠지만 꼭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이씨... 그냥 처음부터 도망가지 않았으면 손가락은 남았을 건데...'라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끌썽였다면서 남편은 한없이 안타까워했다.


이후 남편은 가끔씩 그를 찾아오는 형사들이 다녀가고 나면 꼭 803호에 들렀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수배자인 그가 내심 안쓰러웠던 것 같은데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주범이 아닌 주범 밑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했던 그였기에 자수하면 큰 벌은 면할 것 같다는 말로 다행을 표현할 뿐이었다. 


각자의 사정과 안타까움을 가진 환자들이 모인 D병원의 밤은 여전히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있고, 그 신음소리에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고통의 밤이 또 하루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을 때 803호 30대 청년의 간병인 아주머니가 간호사를 붙잡고 스트레스가 쌓인 듯 하소연하고 있었다.


"나 이제 진짜 못하겠어요. 병원에서 다른 간병인 좀 소개해봐요."


볼멘 간병인의 소리에 간호사가 달래듯 말했다.


"아이, 우리 여사님 또 왜 이러실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네? 조금만요."


아무래도 30대 총각이 또 소리를 질렀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들지 않는 병원(1)- 고통의 밤을 견디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