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꽃 Aug 28. 2023

마흔여섯, 딸을 낳고 싶다

딸이 너무 좋아


9월 1일 개강을 앞두고 있는 딸은 오전 10시가 되어도 자고 있다. 밤새 드라마 정주행을 하고 새벽시간에 잠들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 후 맞이하는 첫 방학 동안 딸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실컷 누리며 늦잠을 자는 게으른 방학을 보냈다. 게으른 방학을 제시한 건 바로 나다.


딸은 고등학교 3학년 1년 내내 일주일에 3일씩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입학 준비를 했다. 노트북을 제외한 대학입학 물품을 모두 자기가 번 돈으로 준비했다. 아이패드, 옷, 신발, 가방, 생활용품, 이불 등등은 물론 본인과 한 살 차이의 연년생 오빠의 용돈까지...

부지런하게 살아온 딸의 첫 방학은 휴식이 되길 원했다.


"엄마, 나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해볼까? 거기 시급 괜찮다는데."

친구와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진지하게 이야기해 봤다는 딸에게 나는 'NO'를 외쳤다. 

"아니, 하지 마. 그냥 이번 방학엔 아르바이트하지 마."

"왜?"

"그냥 쉬라고. 푹 쉬고 2학기 공부 열심히 하고 겨울방학때 하면 되잖아."

"그래? 그럼... 그럴까?"

내심 싫지 않은 듯 배시시 웃는 딸이 마냥 귀여웠다.


딸은 자신은 어차피 공부를 못하니, 못하는 공부 붙들고 있는 것보다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싶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엄마를 돕고 싶다면서 '돈 벌기'를 선택했었다. 통장에 찍히는 급여를 보면서 좋아하던 딸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이제 엄마에게 용돈을 줄 수 있다면서 한 달에 10만 원씩 입금하고 당시 대학 1학년이던 오빠에게 백수학생이라 불쌍하다면서 옷이며 신발, 몇 만 원씩의 용돈을 쥐어주던 딸.


돈 앞에 장사 없다고...

1살 어린 연년생 동생 앞에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어 현금을 받으며 "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외치던 아들. (사실 학기 중 기숙사에 있던 오빠에게 가끔 거금(?)을 보내주기도 했다는 걸 나중에 알기도 했다) 그 모습에 온 가족이 배꼽이 빠져라 눈물이 날 만큼 웃기도 했다.


이렇게 부지런하고 알차게 살아온 딸에게 대학 입학 후 첫 방학은 세상 누구보다 게으르게 보낼 수 있는 방학이 되길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아들을 두고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소리를 들었던 날, 그날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예상치 못한 두 번째 임신이 괴로워 미칠 것 같았다. 나쁜 마음을 먹고 병원을 두 번 정도 찾아가기도 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의사 앞에 우물쭈물거리다 돌아오기도 했던 그런 나에게 딸은 최고의 친구이자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항상 내가 '쿵'을 외치면 '짝'을 답하는 소중한 딸. 나의 기분과 생각을 어찌 그리 잘 알고 나를 보듬어 주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이래서 엄마에겐 딸이 필요하다는 걸까?


군입대한 아들이 일병을 달고 첫 휴가를 나왔다.

12일이라는 긴 휴가 후 복귀하면 바로 이틀 후가 본인의 생일이라고 아쉬워했다. 군대 보다 집에서 생일을 맞고 싶었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 딸이 쓱 본인의 농협카드를 오빠에게 내밀었다.

"까까머리 가리고 친구 만나야 되니까 모자 하나 사서 써. 생일 선물 겸 사줄게."

동생의 카드를 받고 아들은 연신 굽실거린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혹시... 저 노래방도 가야 하는데 모자랑, 노래방까지 어떻게 안될까요?"

"아이참, 손 많이 가네. 알았어. 그럼 노래방까지만 허락한다."

"네~ 감사합니다 동생님!"


군인 월급을 털어 PX에서 자신의 선물을 사 왔다면서 이제 오빠가 철이 드는 것 같다고 했던 딸아이. 만담을 하듯 주고받는 녀석들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날 밤, 기분 좋게 친구를 만나고 온 아들이 잠들기 전 나에게 말했다.

"엄마, 저 전역해서 군적금 정리하면 예주 돈 주려고요. 용돈!"

"오~ 그래?"

"용돈 챙겨줘야죠. 내가 받은 게 있는데. 저도 양심 있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글쎄요... 한 오십? 너무 적나? 에이, 오십이 면 좀 그렇다. 백만 원!"

순간,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오십이라고 하면 서운할뻔했다. 백만 원은 줘야지. 내가 오빠를 어떻게 키웠는데~"


어느새 자다가 깬 딸아이가 머리를 산발한 채로 우뚝 서있었다. 아들은 백만 원 줄 테니 머리를 다시 묶던지 다시 잠을 자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동생을 놀린다.

손이 많이 가는 오빠가 너무 귀찮다고 하면서 늘 챙기는 딸아이와, 그런 동생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들 모두 사랑스럽다.


언제부터인가, 딸을 낳고 싶다. 

내 나이 마흔여섯, 100% 딸이라는 보장만 있다면 딸을 낳고 싶다. 내 나이가 5살만 젊었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아들은 군대로 복귀하기 전, 아빠와 진지하게 잘해보시라는 능청스러운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자기가 봐도 아들보다는 딸이 좋은 것 같다나...


어쩌면 딸을 낳고 싶다는 생각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성인이 되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딸이 언제나 지금처럼 나와 함께 있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 기분을 모두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감싸주는 딸에게 많은 의지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편이 있어도, 남편과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마흔여섯 이 나이에 주책맞고 이기적인 생각일지라도 딸을 낳는다는 상상을 하면 웃음이 난다. 딸은 나에게 정말 큰 의미인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