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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Aug 29. 2023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보였던 그 시절

귀신이면 썩 꺼지고 사람이면...

1990년대 중후반 고등학교 시절, 우리가 이름보다 '고구미' 또는 '꼬미' 등의 별명으로 불렀던 C가 결석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는 아니었어도 이유 없이 결석할 만큼 배포가 크지 않았던 친구라 결석이유가 참 궁금했다. 나를 포함해 C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모두 그녀를 걱정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C는 피곤에 찌든 얼굴로 멍한 표정으로 평소와 다르게 말이 없었다. 우리는 학교 수업이 끝날 때까지 결석이유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고 그렇게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밤 11시쯤 집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서 30분.

캄캄한 밤에 걸어가기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기에 같은 동네에 사는 우리는 옹기종기 붙어서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큰 대로변으로 나가기 직전 개인주택 골목에서 C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위쪽을 바라보았다. 우리 머리 위로는 전봇대 위를 잇는 전선줄만이 있을 뿐이었다.


"야! 뭐 해? 빨리 가자."

C의 바로 이웃집에 사는 J가 재촉했다.

C는 J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그저께 봤어."

"뭘? 뭘 봐?"

"나 그저께 그거 봐서... 그래서 어제 학교에 못 온 거야."


C의 행동에 오싹해진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C를 거의 떠밀듯이 밀고 대로변으로 나왔다.

가로등이 밝게 비추는 길로 나오자 C는 정신을 차린 듯 '그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저께 우리들이 집에 갈 때, 그 전선줄에서 내가 분명히 봤어."

"야! 뭘 봤다는 거야? 무섭게..."

"그날, 느낌이 이상해서 위쪽을 쳐다보니까..."

꿀꺽! 긴장한 우리들의 목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쳐다보니까... 전선 위에 화장이 진한 무당이 춤추고 있었어."

순간 우리는 얼음이 되었다. 전선 위에 무당이라니...


C가 보니까 빨간 구슬이 달린 검은색 옛날 모자에 화려한 색동 한복을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한 무당이 부채를 들고 전선 위에서 콩닥~ 콩닥~ 발랄하게 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보인 순간, 너무 무서워서 우리에게 말도 못 하고 집으로 가서 밤새 끙끙 앓다가 결석을 한 C.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모두 무섭다고 몸서리를 쳤지만 나는 잠깐 놀랐다가 이내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전선 위의 무당을 보지는 못했어도, 그동안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것들을 섭섭지 않게 봤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학교 가는 길에 위치한 18층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지던 검은 덩어리. (분명 사람은 아니었다 투신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기에...)


가위눌릴 때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아줌마, 아저씨 어린아이 다 만나봤지만 그중 긴 생머리 아가씨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다가 잠깐 잠들었을 때였는데, 삐걱! 삐걱!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아빠가 주워오신 오래된 학생의자 위에 하얀 반팔에 옅은 색 청바지를 입은 날씬한 아가씨가 의자에 앉아 몸을 이리저리 양 옆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나를 보며 생긋 미소를 띠면서 움직일 때마다 의자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뭐야~' 속으로 말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고 하는데 그때 여자가 말했다.

"가만히 있어. 힘들어~"

상냥하긴 왜 그렇게 상냥한지...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잠깐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여자가 갑자기 "어! 아빠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여자의 아빠까지 오다니...


그때 문이 큰 소리를 내면서 벌컥 열리면서 나도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여자가 말한 아빠는 바로 우리 아빠였다. 라면 먹으라는 말을 하러 오신 아빠는 나에게 또 자냐는 핀잔을 주면서 문을 닫았다.


나는 내가 특별히 알 수 없는 존재를 보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저 피곤하거나 기가 약해져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사춘기의 호르몬이 널뛰기를 해서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는 너무 스트레스가 쌓여 나의 내면이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세상엔 평소에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간혹 그것들을 볼 수 있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사실, 귀신이 뭐가 무섭나 싶다.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들'이 날마다 잔인함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뉴스를 장식하는 세상인데...

전선 위의 춤추는 무당을 보고, 가위에 눌리며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존재를 보던 그때가 지금 보다 더 순수했던 것 같다.

귀신은 귀신이니까 무서운 건데, 사람이 귀신보다 무서운 건 정말, 극한의 공포다.



지금 비가 내린다.

이렇게 어둡고 축축한 날 골목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사람 보다 그냥 귀신이 더 나을 것 같다.

귀신이면 썩 꺼지고!

사람이면....

생각 좀 해봐야겠다.

서글프지만 요즘 세상이 귀신보다 무섭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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