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겠지#15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이 노래와 딱 맞는 인물이 누구냐를 물었을 때
나는 단연코 우리 할머니라고 자신 있게 답 할 수 있다.
할머니는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절대 미루는 일이 없다.
김치를 담가야겠다고 이야기를 하면
다음날 바로 근처 시장에 가서 배추를 한 무더기를 사고는
쉬지 않고 배추를 절이고 양념장을 만들어
이윽고 저녁에 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새로 담근 김치의 맛이 어떤지 맛보라며 재촉을 한다.
새로 산 바지의 허리가 큰 탓에
바지를 입어보며 툴툴대면
한 시간 이내로 마치 세탁소에 맡긴 것처럼
감쪽같이 허리가 딱 맞아있고
깔고 자는 이불이 낡아 냄새가 난다는 말을 지나가듯 중얼거리면
어느새 시원한 세제 냄새가 가득한 이불로 바뀌어 있다.
이런 할머니의 홍길동 같은 행보와 개미와도 같이 절대 일을 미루지 않는 부지런함을 볼 때면
언니와 나는 할머니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이름을 날리는 누군가가 되었을 것이라 장담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런 할머니에게도 미루고 미뤘던 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운동화를 사는 일이다.
다른 일에서는 절대 무엇이든 미루는 법이 없는 할머니가
몇 달째 고민하다 최근에 구입한 운동화가 하나 있다.
걸을 때마다 지압판이 발바닥을 자극 해고 발의 굴곡에 맞게 변형되어
오래 걸어도 발이 너무나도 편안하다는 그 운동화는 20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으로
몇 달 동안 할머니에게 사러 갈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당장 사라며 카드를 주는 엄마와
같이 사러 가자고 재촉하는 언니와 나의 성화에도
장장 2개월이 넘는 고민 끝에 할머니는 그 운동화를 사고는
그날 집안에 들어오려 신발을 벗는 사람마다
붙잡아 놓고 할머니는 이야기했다.
“운동화 새로 샀는데 한번 신어봐라!! 어때? 편안할 것 같지? 내가 괜히 산거 아니지? 잘 샀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비싼 운동화를 사봤자 뭐하나라고 생각해도 그거 하나 사놓으면 시장 갈 때도 편하고, 요 앞 공원 돌아다닐 때도 편할 것 같아서 샀는데 어때?
잘 산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