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겠지#17
매미가 귀를 찌르듯이 울던 어느 여름날
한낮의 해살이 방안 가득 들어오던 어느 여름날
거실 한 귀퉁이에 앉아
멍하니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내가 보기에는
금방이라도 햇살과 함께 져버릴 것 같이 옅어 보였던 것 같아
덜컥 불안한 마음에
할머니에게 달려가 무릎을 베고 누워버렸었어.
손녀의 불안한 마음에 나온 어리광스러운 모습에
조용히 우리 강아지라 부르며
실컷 뛰어놀고 오느라 한껏 뒤엉킨 곱슬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참 다정해서
불안한 마음은 어디 갔는지
밀려오는 노곤함에 까무룩 잠이 들었지 뭐야.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어느새 방안 가득 들어오던 햇살은 옅은 붉은색으로 바뀌어 있었어.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돌려 올려다본 할머니의 얼굴에는 붉은 빛깔이 가득했는데
그 빛깔이 눈가에도 가득했었어.
나는 그때 처음으로 붉은색이 참 슬픈 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의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게 참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