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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된 Dec 14. 2020

난 아주 젊고 멋진 청년, 대포통장 사건에 연루됐지.

그렇게 살지 마세요.

회사에서 근무를 하던 중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혹시나 업무적인 연락일까 싶어 받은 전화는 서울 경찰 어쩌고에서 온 전화였다. 30대 중반의 남성에 사울 말투로 목소리는 꽤나 형사 같은 무거움이 느껴졌다.

"여기 서울XXX경찰청 누구누구 입니다."

나는 바로 보이스피싱이라 의심했고, 적당히 듣다 끊으려고 했던 안일한 생각은 마치 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가격한 것처럼 멍해졌다.

사건은 이러했다. 어떤 김00씨 아시냐고? 모릅니다라고 답했더니 신분증을 잃어버린 적 있냐, 지갑을 잃어버린 적 있냐, 통장을 누구에게 빌려준 적 있냐 등등의 질문 테러를 받았다.


나는 항상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주위가 조금 산만한 편이다. 마침 주민등록증이 일주일째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이 집에서 없어진 게 아니라 길가에 흘렀나? 모든 답에 정신없이 대답하고 나니 내가 대포통장에 연루됐단다.

'이게 무슨 소리지?'

개인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는 점이 의심이 돼서, "이거 보이스피싱 아니에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변은 "요즘 사무실 번호로 하면 사람들이 안 받아서 개인번호로 사용한다" 꽤나 신빙성 있는 대답인 것 같았다. 여기서 살짝 신뢰감을 올라갔다.

다시 생각해보면 같은 회사원으로서 사무실 번호로 쓰는 게 당연한데, 형사님은 급하고 큰 일인 것처럼 사건을 설명했다. 이때까지도 내가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있다는 의심과 함께 이 사건이 진짜이면 난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눈 앞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정신없는 틈 사이에서 머리를 굴려가며 성심성의껏 답했다. 그 와중에 아이패드를 갓 구매했던 시기라 항상 소지하고 있었는데, 전화하는 와중에 소심했던 나는 사건에 연루돼서 내가 범죄자가 된 사실이 충격적이어서 가족 단톡에 "내가 대포통장으로 연루돼서 경찰서에서 연락왔어ㅠ"라고 이야기까지 했다.


근데 웬걸 형사님이 다른 사람에게 절대 이야기하면 안 되는 극비수사라 말씀한다. 그 순간 아, 망했다 말해버렸는데. 그리고 급하게 아빠가 걸려오는 전화를 전부 무시했다. 메시지도 카톡도 전부.

이미 말한 건 수습할 수 없고, 일단 형사님이 시키는 데로 해야 했다. 형사님은 길어질 이야기를 대비해서 조용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옮겨달라 부탁했다. 사무실에 있단 나는 오만 머리를 다 굴리며, 옆 직원에게 설명도 못한 채 잠깐 자리를 봐달라 부탁하고 조용한 곳으로 옮겼다.

그래도 나는 의심을 걷을 수 없었다. 나는 형사님에 신뢰가 약간 생겼지만 '혹시나' 호구같이 당하는 내 성격을 알기에 신중을 기했다.

"이게 진짜 보이스피싱 아니에요?"

또 물었다. 그러니 형사님은 답답하듯이 짜증 내는 목소리로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라고 큰 사건에 연루된 거라고" 그 상황에서도 나는 형사님 목소리에 친절함이 없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기분이 나빴다. 나는 의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가. 형사든 검사든 전문인이라면 나를 안심시켜서 협조를 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화가 살짝 치밀었다. 안 그래도 내 일도 바쁜데, 내가 연루된 현실이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을 내려줬을까. 원망스러운 감정이 교차했다.

이렇게 계속 의심을 하니, 전자공문을 보여준다고 불러준 아이피로 접속했다. 숫자로 된 아이피로 접속하니 정말 공문이 있었다. 이 사건 진짜구나.

"형사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질문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서울XXX경찰서로 조사받으러 서울까지 가야 한다. 지방에서 사는 나도 서울로 올라와 수사를 받아야 한다. 두 번째는 차명계좌에 돈을 넣어야 한다. 그러더니 전문용어를 쓰면서 내 통장에 있는 금액을 조사했다.

그러고 "차명계좌에 돈을 넣어야 지금 가지고 있는 돈들이 보호된다. 차명계좌 알려주는 이름은 내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이름이다. 그건 다 돈을 보호하기 위해 해 놓은 장치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 법에 대해 무지한 나는 차명계좌가 뭔지도 모르고, 전문용어 조금 나열했을 뿐인데, 약간의 신뢰감이 돈을 넣어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형사님은 조사방법을 나보고 빠른 시간 내에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절대 전화를 끊지 못하게 했다. 전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아빠의 카톡이 쉴 틈 없이 계속 왔다.

"큰딸, 전화 끊어라"
"제발 끊어라"
"아빠가 경찰서에 전화해보니까 개인전화번호로 절대 연락 안 온단다 제발"

우리 아빠가 이렇게 간절했던 적이 드문데라는 생각과 마지막 연락을 받자마자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아니, 전문인이었으면 나를 구슬려 협조를 구했을 텐데!' 겁이나 주는 상황이 처음에나 겁먹었지. 나중에는 화가 나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그냥 방문 조사할게요. "했더니 형사의 가면을 쓴 보이스피싱은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서울에서 뵐게요." 하고 끊어 버렸다. 그 보이스피싱에게 마지막으로 사이다를  맥이진 못했지만, 다행히 돈을 넣기 직전에 아빠의 마지막 문자로 큰돈을 잃지 않았다.

다행히 돈을 잃지 않아 에피소드로 끝이 났고, 집에 와서 나는 완전히 놀림거리가 됐다. 나는 20대 중반에 보이스피싱에 당할'뻔'했다. 돈 넣기 직전에 내가 소심해서 당하지 않았던 이 이야기,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었던 소재를 드디어 글로 적을 수 있을 만큼 창피함이 사라졌다.

2년이 된 이야기로 보이스피싱 수법이 많이 발전할 수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수법 2가지는 사라지지 않겠지.

1. 전화를 끊으면 큰일 난다는 식과 혼자 있을 조용한 공간으로 이끈다.
2. 아주 급한 어투로 질문 세례가 펼쳐진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개인전화번호! 경찰서에서는 정대 개인전화번호로 쓰지 않는다.

누구나 자칫 잘못하면 뭐에 홀린 듯 후루룩 당할 수 있으니 의심된다 하면 무조건 끊고, 경찰서에 다시 전화해서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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