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일기 / 어떻게 살아가는게 나에게 맞는 방법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히려 어렸을 때 과거의
내가 더 명확하게 살아간 것 같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진 못해도 버텨낼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몰라서 가능했다.
아무것도 몰라서 가능했던 3년의 계약직을 끝으로
소진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스펙을 키우기 위해 1년 반개월을
편한 백수생활로 지냈다.
오랜 백수생활 덕분에,
사회에서 말하는 마지막 취업 나이라는 생각에,
아무거나 주워먹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싶던 나는
일주일 근무 후 퇴사를 하는 상황이 2번이나 이어졌다.
이 역시 마음의 조급함때문이었겠지.
2021년 5월부터 회사에 최종합격을 했지만,
생각보다 조건이 안맞아 입사를 포기했고
6월에는 생각보다 빨리 다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번의 기회를 잃었다 생각해서 급해진 마음에 직무와 맞지 않는다는 삘이 들었지만,
'들어가도 될까?'라고 생각한 몇몇의 애매한 감각을
건들이는 조건을 무시하고
들어간 회사는 신입의 배려를
장착하지 못한 곳이었고,
첫날에는 깨끗했던 의자가 둘쨋날에 쑥쑥한 의자로
바뀐걸 깨달으면서 정이 떨어졌다.
그래도 '내가 버텨야할까?
내가 이곳에서 버텨야 한다.'
두 가지 생각이 딱지뒤집듯
하루에도 몇번이나 고민을 했다.
이런 생각을 3일-4일쯤 지난 뒤에는
왼쪽 가슴이 아팠다.
가슴앓이라는 단어를 겪어본 적이 없었는데.
'직장인들은 평생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사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러다간 우울증이 오겠다 싶어,
무색하게도 일주일만에 퇴사를 진행했다.
그때 아, 나는 사무직이 안맞는 사람이구나.
이전의 계약직 경험이,
사무직의 인간관계가 생각보다 고되서 힘들었구나.
그럼 서비스직으로 해보자.
두번째는 8월 첫 주, 대형카페로 첫출근을 했다.
또래의 직원들과 일하는 에너지가 밝고 좋았다.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와 배려있는 인간관계가 느껴져 마음이 참 따듯했다.
3층짜리 대형카페는 체력전이었다.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빌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일을 했다.
3층을 뛰어다니며 쟁반과 컵을 들고 날라다녔다.
그러다보니 예전부터 성치않은 무릎이
기름칠을 하지 않은 문틀 경첩처럼 삐걱거렸다.
발바닥이 욱씬거리고,
다리 종아리가 뻐근하고,
무릎이 아프고.
퇴근한 후 집에서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픈 나를 보면서
엄마는 안타까워서 동동거리며
모든 부탁을 들어주었고,
아빠는 파스를 3가지 종류나 사와서는
'파스값도 안나오겠다고'걱정을 했다.
체형도 좋지 않은 나는 몸도 잘 못쓰면서
서비스직으로 잘못 선택했나 의심을 했다.
항상 엄마, 아빠는 우리를 키우면서 이런말을 했다.
'엄마, 아빠처럼 살지 마라'
즉, 고생하며 살지 말라는 뜻이다.
거의 자영업을 하며 서서 우리를 키웠다.
너희는 이런 고생하지 말고 더운 날씨에는 시원하게,
추운 날씨에는 따듯한 곳이서 일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를 말렸구나.
지금 내가 잘 쌓아둔 사무직 스펙을 버리고 서비스직으로 전환하기에는 그 시간들이 아까웠다.
나의 회피성향이 충동적인 선택을 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기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릴 때 말려져야겠다.
28살인 아직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버티고
살아갈지 모르겠다.
인생 참 어렵다. 어려워~
모르겠다. 모르겠어~
마냥 어리지 만도 않은데
그렇다고 강단있는 나이도 아닌 나이.
10년이 지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이런 상황도 다 지나가고 안정화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