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을 만나 아이의 교육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었다. 내 아이보다 세 살 많은 아이를 학군지에서 키우고 있는 지인은 퇴근길에도 교육 관련 유튜브를 경청하고, 교육 관련 카페를 들여다보며, 나름 최선을 다해 아이에 맞는 학원 스케쥴을 짜서 관리해 주며, 집에서 학원 숙제를 도와주는.....대한민국의 (교육열 있는) 엄마다. 3월이면 5학년이 되어 하루에 세 시간씩 수학 공부를 하는 학원이 9시에 끝난다는 그 아이는 집에 와서 정리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11시가 되는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한다. 주말이면 학원 숙제를 봐주느라 몇 시간은 훌쩍 가버리며, 학원 스케쥴 때문에 더 이상 긴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겠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마치 다른 세상의 것 같다.
초등 아이의 첫 겨울방학을 맞이해서 늘어지게 많은 시간 중 한 시간 정도를 할애해서 기초 공부를 봐 주고 있다. 이 시기에는 욕심부리지 말고 공부 습관 정도만 잡아주자고 생각해서 과제 완료 후 내가 만든 표에 청소검사하듯 동그라미만 치면 끝이다. 하지만 아이와 나의 입장이 다른지, 아이는 공부하느라 못 놀았다며 입이 삐죽 나와 있고 자기는 앞으로 절대 공부는 하지 않을 거라고 선포한다. 나에게 일상 속에서 다른 이를 위해 사는 시간과 나를 위해 사는 시간의 밸런스가 무척 소중하듯, 아이에겐 공부한 시간만큼 노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그만큼 중요한가 보다. 이런 아이에게 세 시간씩 수학 공부만 하는 학원 수업을 언젠가는 듣게 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그래야만 하는 건지”.
그 지인이 알려줘 “분당강쌤”을 알게 되었는데, 밀리의 서재에 책이 있기에 호기심이 생겨 읽어 보았다. “스카이 버스 - 명문 대학으로 직행하는 초등 공부 전략서”라는, 아주 매력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어 더욱 흥미가 생겼다. 나는 2년 동안 고3 전담을 맡아 입시의 최전선의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막상 고등도 아닌 초등 공부 전략서가 ‘대한민국 입시는 전쟁이다’로 시작하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책이 왠지 아이를 체계적으로 혹사시켜 명문대의 문턱까지 끌어올리는 방법을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나의 교육관, 교육방식과 유사한 점이 많아 거부감보다는 그래도 나 스스로가 잘하고 있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학원 강사가 쓴 책이라 ‘선행’의 필요성을 강조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부적절한 선행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었다. 선행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며 실제로 도움을 받는 아이들도 있지만, 내 아이에게 그것이 맞는 방식인지를 고려해야 하며 “현행에 대한 이해가 충분할 때 선행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학창시절, 중학교 3학년 말 학원에서 고1 과정 수학을 한번 훑고 자신있게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첫 중간고사를 망친 기억이 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학원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수업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고, 수업 내용을 스스로 이해하고 복습하는 걸 소홀히했다. 시험을 망친 충격을 통해 내 상태를 직시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공부했고 다시 수학을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의 입시와는 물론 매우 다른 옛날의 이야기이지만, 그때 내가 했던 선행이 독이 되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현행이 제대로 쌓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선행은 아이에게 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행을 하기 전 아이가 현행 진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부모의 판단이 필요합니다.”(56p)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중3 수업 내용을 다시 한번 복습해서 고등 학습의 밑거름으로 삼거나, 선행을 하되 충분히 스스로 소화하면서 학습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요즘 학군지에서는 2년 선행은 기본이라고 한다고 들었다. 받아올림 없는 두 자리 덧셈뺄셈에 머리를 쥐어뜯는 아이를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일단 우리아이에게는 반드시 현행을 충분히 하는 걸로!
다음으로 ‘국어 입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독서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영어가 오히려 절대평가로 바뀌고 국어가 입시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해진 상황. 저자는 독서와 입시가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교과서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초등학생들에게는 필독서 리스트를 주고 읽히기보다는 즐거운 독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야 하며, 교과서를 읽는 방법을 익히게 해야 된다고 한다.
고등학생임에도 기본적인 문해력을 갖추진 못한 학생들, 혹은 글 읽기 속도가 너무 느린 학생들을 자주 본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독서가 입시와 일대일로 대응되는 인과관계는 없다 하더라도 어릴 때로 돌아가 보다 많은 독서 경험을 쌓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국어는 학습해야 하는 과목임은 분명하지만, 직간접 경험을 통한 많은 배경 지식이 학습의 빈 공간을 메워주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초등 아이들에게 필독서 리스트를 주고 꼭 읽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방식은 지양해야겠지만 여러 분야의 좋은 책을 권하고 그것을 통해 즐거운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내 아이에게도 ‘물밑작업’, ‘넛지’의 방식으로 슬쩍슬쩍 좋은 책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지금의 경험이 아이에게는 저자가 말하는 ‘상관관계’가 될 것이며, 아이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읽어내는 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교과서를 읽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온다. 사실 공부의 기본 중의 기본에 대한 설명이다. 각 과목의 전문가가 구조적으로 배열한 목차, 고심해서 선정한 내용으로 구성된 교과서를 많은 이들이 등한시하고 있지 않은가. 교과서를 단락별로 요약하고 핵심 개념을 찾는 방법은 공부 깨나 하는 이라면 누구나 해왔던 방법일 것이다. 언젠가 이과라서, 사회계열 과목 수업에는 잠이나 보충하겠다는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에게 수능 과목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과목 교과서에 실린 것들이 수능 국어의 비문학 제재이며 지문이라고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많은 학문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 학생은 정말 몰랐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초등 교과서를 열심히 학습하라는 저자의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모에서 학부모가 된 나. 초등 아이의 학령기를 시작하며 쏟아지는 조언과 정보 속에서 고민이 많지만, 스스로의 교육관과 방향이 확실하다면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가능성을 펼칠 수 있도록 충분한 능력을 갖추게 해 주는 것, 기회는 주되 설령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 아이를 믿어 주고 궁극적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 추구하고 있는 가치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