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시인의 시를 시험 범위에 들어갈 작품으로 골랐다. 고등학교에서 시험 범위에 시를 넣는다는 건 많은 의미를 가진다. 수능에 나올 만한 시인의 시라는 게 가장 표면적인 이유이고, '배울 만하기 때문에 넣는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배울 만하다는 애매모호한 이유에는 나의 사심이 조금 들어가 있는데, 아이들이 시를 통해 삶이 그래도 따뜻하다는 것, 그 따뜻함에 대해 언어로 이리도 아름답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수능 공부를 하며 머리를 싸매던 시절, 신석정 시인의 시 중 <들길에 서서>라는 시가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왔던 경험이 있다. '푸른 산이 흰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라며 희망을 그리고,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라며 삶의 현실적인 고통과 희망에 대해 말하는 시 구절이 그 당시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일제 강점기 그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의 고통과 수험생의 고난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고통과 희망의 서사가 주는 감동의 크기는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각사각 노트 한 구석에 적어 놓았고 틈날 때마다 그 시구절을 들여다 보며 위로를 받곤 했다.
나에게 시를 배우는 학생들도 그런 마음을 느꼈으면 했다. 밑줄 친 구절과 해석을 달달 외우느라 시의 참맛을 지나치기보다는 시 속의 삶과 언어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의 끝에 고른 시가 나희덕 시인의 <땅끝>이다. 이 시는 희망에 가득찼던, 천진난만하게 이상을 그리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이 시기는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크로머라는 인물을 만나기 전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 성장해가던 빛의 세계에 가깝다. 그 시절 화자가 인식한 '땅끝'은 아름다움에 취해 나비를 따라가듯 순진무구한 이상의 세계이다. 하지만 화자는 그 시절의 이상이 좌절되며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을 정도의 좌절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인식한 '땅끝'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소설 <데미안>을 다시 떠올리면 세상이 마냥 선한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깨달음과 함께 도달한 막다른 공간이며, 더 이상 설 곳이 없이 내몰린 절망의 공간이다.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이며,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곳이다.
하지만 화자는 시 안에서 절망만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며 땅의 끝이 늘 '젖어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분명히 얘기한다. 절망인 줄로만 알았던 공간이 희망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과 위태로움 속에 스며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 시를 읽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도 나누어 보았다. 학생들이 저마다 느낀 불안과 절망에 대해 털어 놓았고, 시를 읽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시가 아이들의 마음 속에 닿은 것이 느껴졌다. "절망의 순간에 삶을 포기한 사람이 만약 이 시를 읽었다면 어떨까, 이 시는 절망의 순간에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도 있는 게 아닐까?"라는 말을 하며 수업을 마쳤다.
자란다는 것은 어쩌면 막다름의 순간에 유일한 존재로서 그 막다름을 직면하고, 그 경험에서 오는 불안과 절망을 스스로 이겨내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도 '빛'이 있다는 것을 알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곧 '성장'일 것이다.
이 시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 학생이 수업을 마치며 말한다.
"여태까지 중고등학교 통틀어 배운 시들 중 가장 좋았어요!"라고.
시, 그리고 언어의 힘을 이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다.
땅 끝
나희덕
산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렸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쫓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