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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rianne R Feb 07. 2024

네 아이가 동성애자라면 1

엄마 둘, 남매 하나 <비나이다 비나이다. 내 아이의 정체성>


친구의 아이들


 결혼해 아이를 낳고 무슨 일인지 갑자기 사라진 친구들이 기억난다. 한때 아주 가까웠던 친구들. 결혼과 육아로부터  무관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접점을 찾을 수 없었고 결혼한 친구들의 일상이 궁금하지가 않았다. 마침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간간히 묻던 안부도 끊긴 척할 수 있게 됐다. 이미 물리적 거리가 멀 기 때문에 서로의 다른 점을 애써 곱씹으며 심리적 거리까지 넓힐 필요가 없었는데. 나는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낳은 아이는 지금 몇 살쯤 됐을까. 한 친구는 딸이라고 했고 다른 두 친구는 아들이라고 했었다. 지금쯤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진로는 결정했을지. 요즘은 무슨 만화책이나 게임이 유행하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가까워서가 아니라 친구들은 모두 귀엽고 유쾌해서 어딜 가나 인기가 많은 편이었고 그 애들을 닮은 아이들이라면 아주 깜찍할게 뻔한데. 연락을 멈춘 주제에 기약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 언제 어디선가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라와 청년


딸을 데리러 가기 전 급하게 스타벅스 drive-thu에 들러 사과주스와 터키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했다. 입맛이 까다로운 딸애가 늘 먹는 샌드위치를 제시간에 픽업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토스트 하기 전에 안에 있는 빨간 파프리카는 빼주세요. 그리고 반으로 잘라줄 수 있겠어요?” “Okay.. let me check if I can do.” 스피커 너머로 확인해 보겠다는 청년의 목소리는 망설이는 듯했지만 밝고 경쾌했다. 집 근처에 위치한 이곳을  이용한 지 7년, 직원의 얼굴은 수시로 달라졌다. 가장 오래 본 사람은 ‘로라’라는 사람이었고 삼 년 정도 인사를 나눈 후에 사라졌다. 미국사람들의 나이는 가늠하기가 힘들다. 로라도 그랬다. 그래도 다 큰 아이가 있을 듯한 나이라는 것쯤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 주문하면 음식이 항상 빠르게 준비 됐다. 기본적으로 들어있는 파프리카를 빼고 반으로 잘라 달라는 요청을 한 뒤 따듯한 샌드위치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된 이후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속재료는 변경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샌드위치를 자를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그냥 그렇게 되어 있어요.” 같은 대답을 듣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 몇 년 동안 계속 그래왔거든요.”라는 대답을 하면서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내 뒤로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그래요 그냥 줘요. 플라스틱 칼과 함께.”로 내 대답이 바뀌었다. 차 안에서 조심스럽게 팔의 각도를 조정하면서 샌드위치 속 파프리카를 골라내 버리고 다시 닫은 후 반으로 잘랐다. 치아바타 빵 겉에 붙어 있던 가루가 차 안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아무리 조심해도 이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생김새였다. 내가 해도 되지만 누가 해주면 더 좋을 일을 로라가 삼 년 동안 해줬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린이용 애플주스나 애플소스 같은 것도 함께 주문했었으니 로라는 다 알고 있었을 거다.



‘너는 사과주스박스의 날개를 열고 빨대를 꽂아 뒷좌석의 아이에게 전해줄 거야. 그러면 사과주스의 일부가 차 안이나 아이의 옷 위로 울컥 쏟아질 테고. 터키 샌드위치 반개는 아이의 작은 입속으로 들어가겠지. 아이가 샌드위치를 놓치기라도 하면 차 바닥에 샌드위치 속이 이리저리 흩어질걸 알고 있어. 운이 좋다면 순조롭게 식사를 마친 아이가 낮잠에 들지도 몰라. 이 정도는 내가 맡아주지.‘



로라가 했을지 안 했을지 모르는 생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비슷한 시간을 보냈던 사람뿐 아닐까. 나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어쩌면 여자라는 존재가 더 좋아질지도 모른다. 본 적 없는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 영어가 서툰 이웃집 어르신까지. 모두 아이를 키워봤으니 나를 잘 알 것 같다. 어쩌면 로라는 매장 안의 사소한 규칙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두는 날 팁이라도 좀 많이 내놓을걸. 나 같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인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후회하면서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정말 별로다.


 배려를 깨닫는 순간도 잠시, 앞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곧 샌드위치 쪽으로 의식이 돌아왔다. ‘이 청년도 안된다고 하려나.’ 다행히 뒤로 늘어선 차가 없다. 확인해봐야 한다는 말은 그가 새로운 직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다는 뜻이었다. 조금 더 오래 일한 동료나 매니저에게 그곳의 규칙을 물어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 샌드위치의 모양도 알 길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곧이어 사라졌던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렇게 해 드릴게요. “ 오늘은 완벽한 샌드위치를 받을 수 있는 운수 좋은 날인가 보다. 계산대에 이르자 닫힌 창문 안쪽으로 분주한 매장이 보였다. 여섯 평 남짓한 공간에서 두 명은 빠르게 움직이고 두 명은 비스듬히 기대어 농담을 하고 있었다. “Here is your sandwich and apple juice.” 주문을 받았던 청년이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준비된 샌드위치를 건넸다. 손가락 끝에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그의 얼굴에 반짝반짝 어린 청년 특유의 윤기가 흘렀다. 부드럽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들었던 것처럼 똑같이 활기를 띄었다. 갓 20대에 들어선 듯 한 이 게이청년은 희망전도사처럼 모두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빨간 파프리카는 샌드위치 속에서 깨끗이 빠져있었다. 그러나 반으로 잘려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반으로 잘라보려 치아바아 샌드위치를 봉투 속에서 꺼내 들자 가루가 차 속으로 슬슬 떨어졌다. “그러면 그렇지. f…..”


미국사람들의 나이는 가늠하기 힘들다. 이 청년도 그랬다. 이곳 남자들에게 자주 목격되는 능청스러움이 없고 왜소한 편이라는 점 때문에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될 뿐이다. 내 친구들이 20대 중반에 낳은 아이들이 컸다면 지금쯤 이 청년의 나이와 비슷할 텐데. 이 청년은 언제 성정체성을 깨달았을까. 이 청년의 엄마는 아들의 빛나는 얼굴을 보면서 슬퍼할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 친구들도 얼굴에 반짝반짝 윤이 났었는데. 친구들의 엄마가 슬퍼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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