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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rianne R Mar 13. 2024

아이 들기, 버거움의 의미

엄마 둘, 남매 하나 <독립만세>

풍덩

J는 아홉 살 아들 알렉스를 수영장에 힘껏 내던졌다. 아이가 물속 깊숙히 떨어져 사방이 잠시 고요해졌다.

“푸우”

물밖로 올라와 얼굴에 흐르는 물을 걷어내고 조잘대던 알렉스는 다시 J 쪽으로 다가갔다. 한번 더 자기를 던져달라는 뜻이었다. 또다시 "풍덩" 소리가 나고 물살이 넓게 번졌다. 알렉스가 꽤 멀리 던져진 것을 보고 사뭇 놀랐다.


우리 집 첫째도 매년 자기를 물속에 내동댕이 쳐달라(?)는 요구를 많이 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엄마! throw me out!”

“Oh well… 꼭 해야 돼?"


 부력이 작용하는 물속에서는 얼마든지 놀아줄 수 있지만 육지에서 물속으로 던지는 건 이제 곤란했다. 나와 발 사이즈가 같은 아홉 살 딸은 더 이상 내가 들고 나르던 시절의 아기가 아니었다. 그 시절의 흔적만 남은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모르는 행인들은 모두 나를 birth mom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 그렇게 기뻤었다.


“알았어. 해 줄게 이리와봐.  ... 합!"

"풍덩"


가까스로 아이를 들어 수영장으로 떨어뜨렸다. 던질 수 있을 만큼 반동을 크게 줄 수도 없었으니 그냥 안전히 떨어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옆집 아빠 J는 눈에 띄게 거대한 남자는 아니었다. 키가 아주 큰 편도 아니다. 어릴 때 스포츠팀에서 열심히 운동했던 전력이 있지만 지금은 거의 운동을 하지 않는 보통체격의 남자였다. 평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와 나의 다른 염색체가 아이들을 수영장에 던져 넣으며 느껴졌다.


‘이럴 때 좀 아쉽네.’

딸을 조금 더 멀리 던지고 싶었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 한번 더 던져줘!”

뭍으로 올라온 딸의 말에

“그래 한번 더 해줄게!”

자신 있게 대답하고 또 딸애를 던져, 아니 떨어뜨렸다.


“풍덩”

주변이 잠시 고요해졌다. 곧이어 딸이 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었다. 머리카락이 미역처럼 달라붙어 우스꽝스러워진 얼굴로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아내를 닮은 또렷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닮은 점을 읊어주던 행인 1, 행인 2 들은 어디 갔는지. 지금은 어떠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행인답게 찾을 수 없다. 온데간데없다.






풍덩


또 물속으로 떨어졌다. 이번이 백 여덟 번째인 것 같다. 나는 서핑보드 위에서 제대로 몸을 가눠보지도 못하고 플로리다의 파도 속으로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왜지? 분명히 강사가 보드에 손을 짚고 약간 뒤쪽으로 서라고 했는데.‘

오전에 한 시간 정도 강습을 받고 연습을 하다 보면 한번 정도는 물살을 가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오후 세시였다. 서핑보드로 본격적인 연습에 앞서 부기보드를 붙잡고 애썼던 시간이 무색해졌다. 서핑보드 위에서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자 강사가 던져준 짧은 애들용 보드였다. 부기보드에서 파도 타는 것이 익숙해져 자신감이 붙었지만 서핑보드로 옮겨가자 다시 모든 것이 처음인 듯 하염없이 물속으로 연거푸 빨려 들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아 너무 못 탄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딸애는 내가  얕은 물속으로 떨어져 나뒹구는 것을 애처롭게 바라보다가 내가 모래사장에 던져뒀던 부기보드를 들고 벌써 파도를 타며 놀고 있었다. 타기 전에 주의할 점을 일러두고 한 두 번 스스로 연습해 보더니 파도 위에서 유유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주의사항을 자세히 일러줬던 순간이 무색해졌다.


“엄마, can I try your surf board? I think i can do it”


새로운 운동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이지만 내 온갖 실수를 쳐다보고 있다가 호기심이 생긴 듯했다. 자기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좋아, 일단 보드 위에 누워 있다가 파도가 다가오면 얼른 일어나 중심을 잡는 거야. 이렇게. “


모래 위에서 잠깐 설명을 하고 따라 하도록 했다.

“Okay”


우리는 곧장 물속으로 들어갔다. 파도가 부서지기 전의 두터운 물결을 잡았다. 딸이 누워있는 보드를 뭍으로 힘껏 밀어내 파도의 힘을 받는 것을 도왔다. 한두 번 물로 떨어지더니 어느새 보드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 중심을 잡았다. 너무 쉽게 일어나 파도 위에 엉거주춤 서서 미끄러져 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와!!!!!! 일어났어!!!!”


이렇게 쉽게 일어나는 거라니. 이렇게 잘할 거면서 왜 하루 종일 안 한다고 했던 걸까. 황당함과 짜릿한 기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 너무 멋있어! 근데 엄마는 왜 안되지? 다시 해볼게.”

체면을 살리기 위해 자세를 조금 바꿔 보드 중간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드디어 보드가 앞으로 미끄러져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 you did it!!!”

“I finally caught my first wave!!”

우리의 함성은 쉴 새 없이 바닷바람에 묻혔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십이 개월이 지나 아이를 드는 일이 너무 무거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아이가 걷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를 번쩍 드는 것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쯤 스스로 서핑보드에 올라탄 것이 우연일까. 어른들의 신체적 한계에 맞춰 발달하고 독립을 준비해 나가는 듯한 절묘함을 신의 영역이라고 해야 할지 진화의 영역이라고 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J와 나의 멀리 던지기 시합에서 나는 어쩌면 아무것도 놓치지 않은게 아닐까.


우리는 함께 파도 속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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