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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rianne R Apr 18. 2024

모모가정과 느슨한 연대하기

엄마 둘, 남매 하나 <소원을 말해봐>

어린이집 방학의 고단함을 나눌 수 있는 한국 모모가정이 우리 집 근처에 하나 있다면 내가 확실히 전생에 덕을 많이 쌓은 거겠지. 없으면 없는 대로 소소히 소셜미디어에 기대어 살아보자.
2017. 2. 21

2017년 2월 21일의 기록이다.




첫째 딸 나나가 3세가 됐을 무렵에 적은 글이었다. 아이를 집에 오래 데리고 있다가 데이케어를 가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미국은 유대인 명절을 기념하는 일이 많아서 시도 때도 없이 쉬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데이케어에 내는 돈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어떤 한 주는 학교 내 휴일과 법정 공휴일이 이어져 일주일에 이틀만 원에 가기도 했다.  이름도 생소한 휴일이 이어지니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Yom kipper가 뭐야? Ash 뭐라고? 이렇게 많이 쉬는데 왜 돈을 다 내야 되는 거야? 으!”



적응이 필요한 시기였다. 미리 학교 달력을 보고 일 년 계획을 잘 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새로운 원에서의 첫 해는 이상한 휴일과 새로운 규칙들이 무작위로 연결된 기차 칸의 연속처럼 느껴졌다.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우왕좌왕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붙잡고 재차 확인하고 질문하면서 사소한 일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자연스럽게 네트워킹 할 수 있었다. 그런대로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버리지 못한 꿈이 있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모모가정을 이웃으로 두는 꿈이었다.


아이를 갖는 것이 대부분 학군 등을 고려해 장기적인 계획하에 이루어진다는 점과 이곳의 한인 커뮤니티가 매우 귀여운 사이즈라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가능성이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뉴욕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이곳의 한국 사람들은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학업이나 직장에서의 근무 기간 등 꼭 필요한 일이 끝나면 집, 세금, 물가, 학비 등이 더 저렴하고 안정된 직장을 찾아 이주하거나 고향의 원가족 곁으로 돌아가 둥지를 틀곤 했다. 혹시라도 잠시 이웃이 생긴다면 그걸 기적이라고 불러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2017년에 저 피드를 남겼을 때 정말로 sns에 아이 키우는 기록을 가족, 지인들과 한국어로 떠들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살 요량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연구실 같은 보호된 환경에서 지내는 멸종위기의 동물들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2017년 하고 싶운 말이 많았는지 길게 써놨다



2020년

딸은 여섯 살, 아들은 두 살이 됐다. 혼돈의 기차칸에도 적응이 될 무렵, 아기를 계획하고 있는 한 동성부부의 연락을 받았다. 미국에 사는 커플이었다. 대화중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걸 보니 꽤 진지한 것 같았다. 가끔씩 소셜 미디어로 정제된 사진들이 업데이트되는 걸 지켜봤다.


‘좋아요’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를 버튼을 눌러 대신하곤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쪽 가족에게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업데이트 됐다. 반갑고 걱정이 됐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덜 어려울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다. 차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 애써 시간을 내야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가족에게 무슨 말이 유용할지.


‘좋아요’


 새로 태어난 아기와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그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기억해요.라고, 하고 싶던 말을 좋아요 버튼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첫째 딸 나나가 태어났을 때 아스트리드가 내민 카드 속에 들어있던  이 말이 매우 유용했다. 막내가 대학생인 아스트리드는 네 명의 아이를 키워냈다. 아이는 자라고 언젠가 아이의 모습이 없어지겠지. 당연한 일 아닌가. 딸이 태어났을 때 그야말로 당연한 사실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을 모른 채로. 어느새 혼자 스쿨버스를 탈 줄 알게 된 아이를 버스에 태워 보내며 헛헛한 마음으로 거실 의자에 앉았을 때야 비로소 아스트리드의 말이 생각났었다. ‘순간이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 끝이 난다.’






2023년

시간은 흘러갔다.

커플의 사진 속 아이도 신생아에서 유아로 성장했다. 한 번쯤 집으로 초대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동안 맨해튼과 집 근처에서 게이 레즈비언 부부들과 가끔 만나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모가정을 만나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약속을 잡으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도 신선했다.


‘정말 아무것도 망치고 싶지 않다!’


몇 가지 요리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합심해 집을 치웠다. 어색해서 헛소리를 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아이들이 엄마가 둘인 가족을 목격하며 자연스럽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한국말도 조금 연습할 수 있다면 성공인 거라고 생각했다. 특별하지만 좀 진정하기로 했다.



현관에 발을 디딘 부부를 맞이하며 사진으로만 보던 작은 아기를 보니 만남이 실감됐다. 새털처럼 가벼운 안으니 우리 아이들의 과거가 현재가 된 듯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길게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흥분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느라 바빠졌다. 아이들은 수영장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이러려고 이 수영장을 열심히 치워놨지. 잡초를 제거하는 일과 처음 해보는 수질관리에 품이 많이 들어가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았지만 오늘은 모두 보람 있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아내와 나는 주말에 틈틈이 집을 보러 다녔다.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관리가 힘들어 보이거나 지나치게 그늘져있거나 이곳저곳 너무 많이 고쳐야 할 것 같다거나. 7년 동안 봐왔던 수많은 집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이 집은 달랐다. 사진만으로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집이다. 7년 만에 찾은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자주 이 말을 되뇌었다.


‘아무것도 망치고 싶지 않다!”





“풍덩”


소리를 내며 첫째와 둘째가 물속으로 앞다투어 들어가니 물보라가 일어났다.


세 아이들과 엄마들이 수영장 근처에서 물보라를 피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거 다 꿈인가.’

모두 집에 돌아간 한 여름의 오후, 어지러워진 집안을 치울 때까지도 부부와 아이의 방문이 믿기지가 않아 멍했다가 집에 두고 간 아기용 선블락을 발견했다. 손에 잡히는 물건 하나가 현재의 감각을 따라잡는 일을 도우려는 듯했다.



한국 모모가정을 이웃으로 두고 싶었던 내 소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기 버겁던 시간도 지나가 버렸으니 더 이상 유효한 소원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가끔씩 만나 소소한 저녁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싱겁지만 이게 내가 바라왔던 일의 전부였던 거였다. 이대로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그리고 다른 소원을 말해보고 싶어졌다. 바라는 일이 생기는걸 희망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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