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drianne R May 14. 2024

부모님은 정말 괜찮으세요? 2

엄마 둘, 남매 하나 <미국의 정자은행 이용기>

우리가 애초에 구입해 둔 정자의 양은 8 바일(vile)이었다. 8번의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양이다. 첫 IUI 시도로 첫 아이가 아내의 몸속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을 때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충분한 양이 남아있다는 점에서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첫 아이를 가질 때 너무 많이 사용해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덜 수 있어 감사했다.


미국 내 여러 정자은행이 있지만 우리는 그중에서도 페어팩스를 이용했다.  https://fairfaxcryobank.com/ 오랜만에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조악하던 웹사이트가 근사하게 변해있었다. 회원가입도 필요 없는 이곳에서 돋보기 표시를 누르니 수많은 기증자 리스트가 나타났다. 10년 전에는 가장 선택지가 많은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체적인 리스트가 적었다. 다양한 기증자의 자세한 정보를 살펴볼 수 있는 현재와 달리 당시에는 서치 탭에서 몇 번의 필터링을 거치면 남아있는 사람이 두 명뿐이었다. 동양인은 한 명. 우리의 조건이 까다로운 것도 아니었다. 키가 크고 수학을 전공한 사람 정도. 동양 문화권에서 정자기증의 희소함, 동시에 부정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내 수많은 동양인들의 리스트가 확보되어 있다. 동양인을 검색하니 수없이 많은 검색 결과가 나온다. 교포 한국인도 다수 보인다. 아내의 권유로 남편이 정자를 기증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미국 내의 인식처럼 동양문화권에서도 정자은행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웹사이트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돋보기 탭을 눌러 기증자를 살펴볼 수 있다. 한국과 가까운 베트남과 일본까지는 배송이 가능하다.)


간단한 기준이지만 몇 기증자가 물망에 올랐다. 누구를 선택할까. 결론적으로는 기증자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보며 고민하다가도 기증자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결정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도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됐다. 영국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의 패밀리 히스토리가 섞인 기증자의 어릴 적 사진을 한마디로 묘사할 수는 없지만 얼굴의 윤곽이 그리 뚜렷하지 않고 아주 귀여운 얼굴이었다. 8개의 바일을 모두 구입하고 나니 최소한 갖춰야 할 것들을 겨우 갖추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가정이라면 이미 2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아낀 셈이었다.


첫 아이가 3살이 되던 해, 나는 첫 번째 IUI에 실패했다. 엄마가 지어주시는 한약을 먹은 후라 주기도 정확하고 혈도 선명했다. 식단도 건강하게 유지했는데 왜인지. 커피를 마셨다는 점 외에는 특별하게 떠올릴만한 실패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IUI는 IVF 보다 간단한 시술 방법이다. 한 달씩 호르몬 주사를 놓고 마취 시술 날짜를 예약해야 하는 등의 복잡한 시술이 생략되지만 IVF 보다는 확률이 떨어진다. IVF는 이미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안정된 상태의 수정란을 몸에 집어넣는 시술이기 때문이다. 영화 The Wall 2에서 바일을 가정으로 배달받아 직접 주입하는 커플이 나오는데 (디테일은 차치하고) IUI는 이걸 병원에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IVF보다 자연임신에 가까운 방법이다.


첫 번째 실패 후 두 번째 IUI에도 실패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남은 바일이 몇 개 없다.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까지 끊었는데.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나
작가의 이전글 부모님은 정말 괜찮으세요?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